경찰의 원천봉쇄 입장에도 불구하고 31일 청계광장은 열린다. 촛불이 그렇다. 하나둘 모이면 공간은 열리게 되어 있다.
‘용산 철거민 희생자 2차 범국민 추모대회’를 하루 앞두고 순천향병원에서 만난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의 말이다.
1월 31일 추모대회, 2월 1일 국민대회, 2월 2일 천주교 시국미사 일정이 줄줄이 잡혀 있다. 박래군 집행위원장은 이후 전개될 상황을 예측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우선 청계광장을 여는 데 힘을 모으고 보겠다는 생각이다.
2월 5일 경으로 예정된 겸찰 수사 발표, 진상조사단의 2차(최종) 진상 조사 발표가 변수일 수 있다. 범대위의 4대 요구와 주장은 타협할 성질이 아닌듯해 보인다. 정부가 획기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 한 사태는 장기전이 될 공산이 크다. 아래는 일문일답.
이명박 대통령이 범대위가 요구하는 김석기, 원세훈 내정자의 경질을 저울질하고 있다. 단지 인사 문제라고만 보기에는 탐탁치 않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특징을 어떻게 보나.
신권위주의라고 할까. 권위주의 하면 군부독재가 떠오르는데, 군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권위주의 스타일을 보여준다. 소통을 거부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제왕 대통령으로서의 모습, 자기가 결정하면 모두가 따라야 하는 식의... 여론이 어떻든 간에 자기 사람 자기가 끌고 간다. 김석기 내정자의 경우도 그런 케이스다.
정권은 외형상 건재하다. 바꾸지 않고도 버틴다. 그만한 힘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작년 촛불 때도 그렇고, 연말에 악법 추진하는 것도 그렇다. 이번 상황을 좀 들여다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이 심어놓은 사람을 집요할 정도로 고집하는데, 한편 내부도 많이 불안해하는 듯 하다. 여론 지지가 조금씩 떨어지면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세력이 온전하게 유지될 지 모르겠다. 고정 지지층만 보고 가는 것도 임계점이 있지 않겠는가.
민주당이 자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 검찰 수사가 공정하지 않다는 의견이 53.8%,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은 33.3%로 나왔다. MBC 100분토론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60%가 경찰의 강경진압이 철거민의 폭력시위보다 더 큰 문제라고 응답했다. 수치 상으로는 수사 불공정, 강경진압 쪽 여론이 높지만,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는 참사를 고려할 때 분위기가 차가워 보인다.
중요한 부분인데, 이명박 식 통치전략이 먹혀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보수층 지지층의 결집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것이고, 그 힘이 이번에도 작용하고 있다. 조중동은 여전히 충성을 다하는 분위기다. 조갑제의 말대로 좌파에게 권력을 넘겨준다는 식으로 보수층을 결집하고 있다. 그런 수준에서는 탄탄하다. 25-35%는 유지되고 있으니까. 여론조사 결과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도 반영되어 보인다. 시민들이 정권이 무너진다든지 흔들리면 자기의 이해를 대변하는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민주당이나 야당을 해답으로 찾지 않고 있다.
범대위는 어제 대표자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촛불로 광화문 공간을 열고, 전국적인 제2의 촛불 저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 촛불 이후 검찰과 경찰의 강경한 대응, 그리고 그 연장에서 추모대회 원천봉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어쨌든 1월 31일, 1일, 2일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군중집회를 하는 것이고, 이게 성사된다면 제2의 촛불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제2의 촛불을 이야기하는 건 성급할 수 있다. 시민의 열기가 응집되는 계기가 될 지 단정하기 어렵다. 아직 예열이 덜 된 것 같기도 하다. 사안 자체가 사람이 죽은 살인정권의 문제이다. 작년 촛불은 미국산 쇠고기 교역 문제였지만 이번 건은 살인정권의 문제이다. 광우병과 출발부터 다르다. 범대위는 비타협적인 투쟁을 걸 수밖에 없다. 두고 볼 일이다.
검찰이 전철연 의장 검거, 전철연 조직 수사 확대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오늘 남경남 의장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어떻게 지켜봤나.
전철연에 대한 마구잡이 공세를 고려하면 대응이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오늘 남경남 의장이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언론이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을 받아쓴 걸 부인하고, 전철연의 실천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와 언론 보도를 통해 철거민은 테러리스트라는 이미지를 덧씌웠는데, 그런 걸 벗겨내는 계기가 된듯 하다. 문제의 본질을 다가가는 기자회견이었다. 사람이 6명이 죽었다. 배경에 청와대가 있는 문제다. 살인정권 규탄 투쟁으로 프레임을 바꿔야 할 때다.
범대위는 △이명박 정권 퇴진 △공정한 수사와 진상규명, 원세훈.김석기 및 책임자 처벌 △뉴타운, 재개발 정책 근본적 대책 마련 △사망자, 부상자, 연행자 및 철거민 대책 마련 등 네 가지 요구와 주장을 내걸었다. 현실적인 목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첫 번째는 정치적인 구호의 성격이 강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매우 구체적이고 절박한 요구다. 사태의 성격상 타협하기 어려운 요구와 주장들이다. 김석기, 원세훈 내정자 구속 수사 정도는 가야 납득할 수 있을 거다. 김석기 내정자조차 처벌 없이 물타기 하고, 진상을 은폐한다면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재개발 문제가 중요한데 불도저식 재개발의 문제점이 이번 기회에 많이 알려지고 있다. 연대하기 꺼렸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다. 생존권 투쟁의 연장에서 경제위기에서의 저항의 흐름도 만들어질 거라고 본다.
31일 추모대회를 말 그대로 범국민적인 추모의 시간이 되도록 한다는 입장인데,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도 그렇고, 추모대회의 동력을 어떻게 보는지
이 문제는 계속 논의하고 있는데, 범대위는 어쨌든 청계광장을 연다. 국민과 함께 추모를 한다. 확고한 입장이다. 잘 준비하고 있다. 경찰 원천봉쇄 하더라도 추모대회 공간을 열 것이다. 촛불이 그렇다. 하나둘 모이면 공간은 열리게 되어 있다. 경찰이 물리력을 행사한다면 기름을 붓는 것인지라 현명한 판단을 할 거라 본다. 추모의 힘으로 상황을 주도할 것이다. 이후 예단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악법 저지, 비정규직과 실업자 문제까지 함께 하며 거대한 민중운동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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