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밝은 모습으로 투쟁하던 노동자의 ‘아내’들은 가족대책위 천막에서 웃다 울었다 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며 “오늘 우리가 정신줄을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매일 평택 시내를 돌며 ‘쌍용차 정리해고가 철회되어야 한다’고 가두방송을 하던 가족들은 이날 오후 4시30분경 천막에 둘러앉았다. 가두방송을 위해 빌려 쓰던 방송차를 오늘은 빌리지 못했던 것. 방송을 나가지 못해 조금은 한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몰려오는 언론의 취재와 자체 일정으로 22일도 바쁘기 그지없었다.
“뭐랄까. 기가 막히고. 어이없고. 눈물 나고. 속상하고. 황당하고…”
천막에 둘러앉았지만 몸도 마음도 바쁜 가족들이다. 음료수를 쏟은 아이의 바지를 하루 동안 3번이나 갈아입히는 손길, 힘들어하는 동료, 남편에게 전화하는 손길, 매 끼 아이들의 밥과 간식을 떠먹이는 손길… 이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휘청거리는 천막을 붙잡느라 더 바쁜 움직임이다.
[출처: 미디어충청] |
그 와중에 누가 “내일쯤이면 집으로 해고 통보 올 텐데 받으러 가야 하나?”고 묻자 권지영씨는 “뭐 좋은 거라고. 연애편지도 아닌데. 우체국 가서도 안 찾아와야지. 통보 오기 전에 아침 일찍 집에서 나올 거야”고 말하자 천막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음도 잠시. 정리해고 통보 강행에 대한 생각을 묻자 다들 입을 모아 “예상했던 일이지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답답해서 잠도 못 잤다.”고 말했다.
권씨는 답답한 마음상태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뭐랄까. 기가 막히고. 어이없고. 눈물 나고. 속상하고. 황당하고…”
▲ 웃음 많은 권씨가 눈물을 흘린다. [출처: 미디어충청] |
▲ 권씨가 눈물을 흘리자 함께 우는 동료 [출처: 미디어충청] |
박미희 씨는 “월급이 안 나오면서 마이너스 대출이 500~600만원이다. 세금하고 급한 것들만 내고 있다. 큰 아이 학원도 못 보내고 있다”며 한 숨을 쉬었다. 이어 다들 생활고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월급 못 받는데 생활이 제대로 되겠냐. 요즘은 10만원짜리 하나 들고 나가면 살게 없다” “아이가 3명이다. 이제 우리 어떻게 살라고. 국민들 다 해고해서 죽이고 나서 경제를 살린다고?” “남편이 짤리고 내가 취업한다고 해도 요즘 세상에 다 비정규직인데. 여자는 임금도 훨씬 적은데… 피도 눈물도 없다” “대출 안 받고 신용불량자 아닌 사람이 어딨냐”…
해고되면… 투쟁도 해야 하고, 생계도 걱정이고
내일이면 받을지 모르는 해고 통보에 아내와 남편들은 이런 저런 대화들을 나눈 모양이다. 박씨는 “남편이 해고되면 생계가 걱정인데 가족대책위 활동을 계속 해야 할지 걱정 된다. 남편은 복직 투쟁에 전념한다고 했다. 남편이 투쟁에 전념할 수 있게 내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권씨 역시 “남편은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흔들리지 않고 같이 투쟁하는 것을 원한다고 했다. 남편은 해고되면 복직투쟁에 전념할 사람이다. 정리해고 철회 싸움은 길고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럼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데, 제가 벌든 둘이 나눠서 알바를 하든. 어떻게 되지 않겠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바람에 펄럭이는 천막을 잡으며 혼잣말로 “마음도 안 좋은데 바람이 왜 이렇게”라고 덧붙였다.
공권력은 안 돼, 정부는 대화에 나서야
가족들에게 해고 통보만큼 걱정되는 게 또 한 가지 있다. 그들은 입을 모아 “공권력은 투입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씨는 “경찰들이 들어오면 남편들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짤리는 거니까… 서로 부딪힐까봐 조마조마 하다. 다칠까봐. 회사와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해 싹 쓸어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은 “우린 잘못한 거 없다. 우리 짜르려면 경영진, 정부를 다 짤라라. 다 같이 죽어야 한다.”며 분노를 토하기도 했다. 상하이차와 경영진, 정부를 비판하는 이보다 더한 말이 또 있을까. (정재은 기자)
▲ 아이를 돌보고 재우는 손길이 바쁘다 [출처: 미디어충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