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수산나야

[이수호의 잠행詩간](84)

중학교 1학년 때 음악 시간
‘오-수-산나야 노래부르자 멀고먼 알라바마 나의 고향은 그곳’
젊은 여 선생님께 이 노래를 배우며
‘오수산나야’와 ‘알라바마’를 몰라
어떤 놈이 용감하게 물었더니
선생님 얼굴이 벌게지며
그것도 모르냐? 그러니까 촌놈이지!
나는 지금도 그 때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는 정말 몰랐는데 선생님은 왜 화를 냈을까?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 하다가 끌려오며
그놈의 미란다를 수없이 들었다
‘당신은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참 좋은 말인 것 같았다
경찰서로 끌려오니
조사관이 조사를 시작하며
또 중얼중얼 확인한다
그 놈의 미란다 원칙
그래서 우리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다

이틀밤이 지나 구금 만기인 48시간을 두 시간 남겨놓고
조사관이 다시 조사를 받으란다
강수산나 검사의 지시로 조사를 받으면
석방해 주겠단다
우린 조사가 끝났는데
또 무슨 조사란 말인가

그랬더니 조사관들이 안타까워 한다
검사지시니 그렇게 하시죠?
구금 만기 시간을 기다리며
강수산나와 미란다를 생각한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시 철창 안에서 읽던 소설을 마저 읽으며
이탈리아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인
오리아나 팔라치를 만났다
‘인터뷰는 하나의 사랑이자 섹스’라며
‘상대방을 완전히 발가 벗기고
자신도 전 인격을 던지는 싸움‘이라 했던 여성
열 여섯에 인류의 반복된 전쟁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짓인가를
증명하기 위해
베트남 취재에 나섰던 기자
그리스의 레지스탕스 알렉산드로스 파다코리우스와의 인터뷰 끝에
사랑에 빠진 여자
일본을 ‘맥아더 따위에게 진 나라’ 로 조롱하고
중공 시절 ‘여성 인민복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라고 비아냥거리고
미 국무장관 키신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보며
‘불쌍한 노벨이여, 불쌍한 평화에’라고 한탄했던 전투적 지성인

그 잘난 집시법으로 아무나 잡아다 놓고
알 수 없는 미란다로 갇힌 사람 자존심이나 건들이며
공휴일을 즐기고 있는 강수산나 검사에게
팔라치를 만나보기를 권하는 것은
나도 이제 나이를 많이 먹은 탓인가

*이틀 만에 또 끌려왔다. 체포적부심 재판에 갔으나 강수산나 검사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아쉬웠다. 결국 구금 만기 48시간을 넘겨 나는 도봉경찰서 유치장에서 소설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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