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진, ‘노동자의 사회, 노동자의 나라’

[양규헌 칼럼]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더니..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의 로고는 자신의 이름이니셜을 넣어서 방실거리고 웃고 있는 빨간 동그라미 모습이 생뚱맞다. 레드컴프렉스를 자극하여 정치적 헤게모니를 앞세워 숱한 노동자, 민중을 때려잡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왔던 그 경멸의 빨강색을 이미지화 해 가는 그들의 지향을 보며, 권력을 잡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정체성은 헌신짝 버리듯 하고, 역사적 과정에 대한 변명 한마디 없이 수단과 방법은 목표를 향한 의미 없는 과정으로 치부하는 뻔뻔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니... 장난기 가득하고 햇살 가득한 유치원 모집공고 벽보를 보는 기분이다. 실제로 박 후보는 대통령 출마선언에서 국민이 어느 곳에 있든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게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런 중차대한 선언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선언하는 것을 보고 저것은 유치원생을 어르는 원장님의 능청스런 눈빛과도 닮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는 유치원이 아니라 이 나라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주어가 어떤 주체를 상정하는지 애매모호할 때 우리는 그걸 집단적 ‘우리’로 받아들인다.

2002년 월드컵 때 나온 ‘꿈은 이루어 진다’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꿈이었다. 그러나 이번 슬로건의 꿈에 우리는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적인 저항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대다수 국민인 노동자를 배제시키고 ‘내 꿈’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는 유치원생들의 정체가 들어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떼기’ 한나라당은 ‘루이뷔똥’ 새누리당으로 바뀌었고, 최근에 불거진 새누리당 공천뇌물사건과 강정마을과 만도, SJM 용역깡패 폭행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우선적으로 ‘내 꿈’ 유치원에 입학허가를 받은 탁월한 원생들로 보인다.

새누리당이 화룡정점이라며 당 쇄신의 최 일성으로 부르짖은 공천이 돈 공천으로 드러났다.
공천 전략에서 뭇매를 맞았던 야당 입장에서 보자면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우리는 놀라지도 않는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본질은 ‘내 돈이 힘쓰는 나라’였고 그것이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모습을 드러낸 의도가 무엇인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동안 선관위나 정치검찰의 행태를 봐온 우리는 늘 그들이 외치는 정의나 공정성에 신뢰를 갖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돈 공천이 드러난 것은 구체적 정황과 증거를 완벽히 갖춘 내부의 제보에 밀려 선관위가 실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언론에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따라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의 권력 암투가 어디까지 갈지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직은 잘 모른다. 기득권 권력내의 엿 배틀이 정권교체의 신호탄이 되어 새로운 시대의 전야가 될지 어둠이 더욱 짙어지는 마지막 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안철수의 혜성 같은 등장과 혹시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떨까라는 설레는 기대감에 차 있다. 도덕성 제로에 뻔뻔함의 이데아가 하늘을 찌르는 사건도 많고 탈도 많아 보이는 이명박과 박근혜가 아닌, 욕망의 산물이 안철수라는 인물로 구현된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좀 위험한 기대일 수도 있다. 우리는 노동자를 위한 나라가 없는 곳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그걸 목도하고 있다. 안철수의 강력한 개성과 단호한 개혁의지가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해도 여전히 그것은 부르주아 권력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노동자를 위한 정부가 아니더라도 균형 잡힌 강력한 정부가 차선책이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십 수 년 간 차선책과 비판적지지의 결과로서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지연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한다.

새로운 계급정당의 밑그림을 그려야 할 때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에 시작된 노동자들의 정치논쟁은 비판적지지와 독자적 정치세력화였으나 결과는 비판적지지의 연장으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10년을 경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칭 민주주의 세력이 권력을 잡은 시기에 노동자계급의 삶의 질은 불안정노동이라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미래에 대한 절망을 경험하는 시기였다. 신자유주의의 무차별도입으로 노동자계급에게 법적, 제도적 억압의 굴레가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되었고 여기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무차별 구속되었으며 비정규노동자들의 절망은 열사정국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시기였다.

노동자계급의 희망을 일구기 위한 민주노동당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통합진보당으로 진보정치의 맹주를 자처했으나 총선을 경과하며 진보의 정체성은 모조리 쓰레기 더미에 가려졌다. 통진당 주류는 오만과 독선의 전형을 창출하며 진보정치의 전망보다는 오로지 정파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해 상식의 가치마저도 짓밟아버린 행태와 본질에서 진보의 가치는 짓뭉개지고 말았다. 그 결과 십 수년 운동정치의 성과는 물거품이 되는 동시에 걸레짝이 되어 버렸다.

투쟁현장에서도 통진당 국회의원의 발언요청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모습에서 일반 대중들은 진보정치를 어떻게 이해할까. 그럼에도 중요한 지점은 노동자 나라 건설의 꿈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나라건설을 향한 진보정치의 역사적 과정들을 평가하고 그 바탕에서 새로운 노동자계급정당의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출처: 뉴스셀]

이번에 터진 SJM 폭행 사건 내막을 들여다보면, 민주당의 정치신인들과 언론이 주목하고 있어 컨택터스라는 경비업체의 악행이 속속 들어나고 공권력의 암묵적 비호가 보이지만 이것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어찌 보면 80년대 노동현장에 이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도 있었던 일이고 이명박정부 들어 더 악랄하고 교묘해졌을 뿐이다. 드러난 것은 컨택터스라는 용역업체이지만 이러한 용역업체는 이미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용역깡패가 자본의 사병이 되었으니 거대한 용병으로 진화한 것이며 용병 앞에 법과 질서를 외치는 노동자의 목소리는 메아리 없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민주노조 파괴를 위한 전략적 시나리오에 따라 자본들이 움직이며 그걸 권력이 비호하고 있는 형국이 뻔한 사실인데도 늘 의례적인 조치만 할 뿐이고, 다시 이름을 바꾸어 영업을 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자본가들이 용병에게 지급하는 돈만으로도 구조조정이나 임금삭감 같은 것은 안 해도 될 텐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깡패집단을 동원하여 노동자를 때려잡는 행위의 본질은 더 엄청난 이윤배가와 미래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자본의 전략일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본가 나라’의 영원한 지속을 꿈꾸는 꼼수일 뿐이다.

‘노동자의 나라’...출발점은 대선

그간의 경험으로 봤을 때, 새누리당이 권력을 잡는다면 용병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눈물짓는 국민이 없게 한다면서 최저임금도 모르는 박근혜의 유치원에, 용병에게 맞아 입술이 찢어지고 머리가 터져서 아파하는 노동자는 입학할 수 없는 제외된 원생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지도부 출신이 민주당에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권력을 잡는다고 용병제도에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안철수가 권력을 잡는다고 본질이 바뀐다는 희망을 갖기 어렵다. 나아가 통진당의 대권후보를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더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정치세력을 여,야 구분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근거에는 이들에겐 노동자 나라를 향한 밑그림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나라’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며 그 세상은 노동자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다. “활동가는 자신과 사회를 끊임없이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웅이나 정당 등 대타자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하고 직접 참여하는 자만이, 노동하는 자만이 자기 삶과 정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활동가나 노동자계급정당은 대타자의 범주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독재자나 대통령은 나를 대의 할 수는 없지만 활동가는 나를 대의할 수 있다. 나 스스로가 활동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온 정당정치엔 나를 대의 할 수 있는 정당이 없지만 노동자 정당은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나를 대의 할 수 있다. 내가 곧 정당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길이고 해방의 길로 가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요동치고 있는 대선 정국이니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나도 달콤하게 꿈꿔 본다. 그것은 노동자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노동자를 위한 나라이다. 따라서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의회주의와 대리정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나라’를 꿈꾸는 노동자들의 계급정당조직화와 더불어 올해 대선 전략에서 노동자계급 중심의 후보전술이 구체적으로 모색되어야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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