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해방 스타일은 어디에 있는가?

[양규헌 칼럼] 최초의 여성 대통령? 그녀는 명예남성 독재자 스타일

유행병과 같은 스타일 정치

세계를 강타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유튜브 조회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각종 패러디 동영상으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롬니는 말춤을 추는 재밌는 동영상으로 후보 수락 연설장에서 환호를 유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정치행위 뒤에 '○○ 스타일'이라는 말이 붙어 연일 주류 언론을 시끄럽게 장식하고 있다. 스펙터클한 미디어 속성상 그것은 마치 강호를 떠들썩하게 하는 무협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 실체적 진실과는 상관없이 누군가는 '노동자가 현대 정치의 주인'이라고 말한다. 정치인과 그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는 자만이 무대에 올라가고, 노동자는 오로지 구경꾼의 위치에 있어 주객이 전도됨에 대한 표현이다. 현실정치는 인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연예인처럼 표를 얻을 수 없는 정치인은 역량과 상관없이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뭔가를 보여주는 ‘뻘짓’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우선 광폭 스타일 공주의 군단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게임의 룰이 남아있어 낮고 긴 구릉을 더 누비며, ‘오뎅’을 더 먹으며, 민생탐방 쇼를 더해야 함에도 왕에게 붙어있던 호위무사들이 알아서 붙어버리는 바람에 이미 강호의 왕이 되었다. 최강자가 된 것이다. 집안 단속이 끝났다고 생각했는지, 꿈이 이루어지는, 국민대통합이라는 추악한 슬로건 아래 다른 문하에 조문정치를 하러 가기 시작한다. 언론을 이끌고 통제하여 생중계하고 다니면서 그걸 국민대통합이라고 외치니까 처음엔 정말 어리둥절했다. 한국, 동방예의지국이니까 그냥 예의로 한번 봐줄 수 있는 문제지만 그것이 국민대통합은 아니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비약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설령 그들이 말하듯 다른 진영에 손을 내미는 화해의 제스처라고 해도 우리는 그런 걸 너무 숱하게 봐왔다. 그냥 표를 더 얻기 위한 술수이고 선거가 끝나면 모든 게 자기 생긴 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광폭스타일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잠깐은 저지당하는 걸로 보인다. 영원히 저지당해 자연인 공주로 돌아가 품위 있는 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기엔 권력에 대한 욕망이 너무 강해 보인다. '유구냉무'(말은 하나 철학이 없음)한 리더십이 환관정치를 불러 올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권력에 대한 욕망이 강한 강폭 스타일 공주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무협영화에서는 비운에 죽은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반평생을 수련하여 득도하고 기를 얻어 거룩한 자기 사명을 실현하게 된다. 그런데 공주의 아버지는 그런 게 아니었다.

'광폭스타일'에 담긴 의미

자기 생명을 자기가 죽인 독재자인데 누구에게 복수하려고? 제2의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가. 혹시 무덤에서나마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을 장준하나 전태일과 김경숙의 영령에게 마지막 복수를 완성하려 한다는 아버지 유령의 명령을 받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피해자는 또다시 살아있는 전태일이 되어 숱한 열사정국의 연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비극과 비극으로 종횡하는 역사의 진행을 희극으로 제대로 되돌려 놓는 게 유신의 진정한 종말이 될 수 있으며, 이런 과정이 역사의 정의이고 노동자 죽음의 행렬을 멈추는 길이다.

보수언론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거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공주가 '여성' 대통령으로 보이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이 ‘명예 남성’이라고 비아냥 받았듯이 공주는 철저하게 '독재자 남성'의 리더십 스타일을 보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보이는 미소 속에 숨겨진 냉정한 권력은 그림자 투쟁을 일 년 넘게 벌이는 영남대 의료원 여성노동자의 항거를 철저히 외면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로 일해 온 그녀들의 문제는 이 땅의 많은 여성의 문제이고 불안정 노동과 마주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공주의 집 앞에 일인시위 팻말을 들고 매일같이 부당해고를 하소연하는 그들에게 행인들이 따스한 음료수를 전해주긴 하지만, 공주는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다. 오죽하면 어쩌다 눈길 한번 마주친 그녀들은 감격하는 마음마저 들어 '우리가 친구가 되어 드리겠다'고 외쳤을까.

삶의 벼랑 끝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그 차가운 태도에는 여성 지도자다운 모습이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어찌 그가 여성 대통령이란 말인가! 노동자가 행복하게 일하는 나라 만든다고 말은 하면서 자기 코앞에서 벌어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비정규직, 불안정노동 문제는 안중에도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를 모아 권력을 쟁취하려고 뱉어내는 주장에 작은 실천의지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은 '정치사기'일 뿐이다. 그는 계급적 성격이 분명해 투쟁하는 노동자는 자기 나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에 대한 슬로건의 진실이 바로 '지배계급의 경계에 속한 자들의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분명하다.

노동자 정치가 보이지 않는 스타일

'내가 해 봐서 잘 아는데'의 명박스타일과 맥을 같이하는 공주의 광폭스타일의 종횡무진 속에 철수왕자 잠행스타일은 계급적 성격을 담진 않았지만, 광폭스타일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그가 잠행하는 이유가 언론의 조명을 받기 위함이거나 자기 말을 하러 간 게 아니라 들으러 간 것이라고 일부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잠행스타일에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기대할 수는 없는 게 자명한 사실이다. '덤덤한 스타일'인 민주당은 부분적 진보와 자유주의를 읊어대며 경선을 통한 제1야당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역력하지만, 그들 세력의 스타일은 이도저도 아닌 '덤덤한 스타일'로 지탱하며 향후 정치구도에 복잡한 계산으로 중심이 잡히지 않는 걸로 보인다.

나아가 '진보스타일'도 예외는 아니다. 객관적 사실과 상식마저도 자신의 주장과 자기정파의 이익과 부합하지 않으면 절대 수용불가론으로 몰아가는 그들의 진보는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십수 년 간 진보의 중심을 자처했던 그들은 의회주의에 경도되어 노동자계급을 정치의 구경꾼으로 전락시킴으로써 민주, 진보(대중·정치조직)의 총체적 위기를 진단하는 현시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도 노동자 직접정치 방안이나 광란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조차도 강령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계급정치 전망을 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형식적인 이합집산으로 판단되는 진보의 재구성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노동자와 함께 노동하는 대통령

'노동자의 대통령 스타일'로 내 생각에 잠깐 스쳐 간 '바보 이반'은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민속동화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바보 이반은 농장주 아버지의 세 형제 중 막내아들이다. 첫째나 둘째 형이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재산을 분배받아 도시로 떠났고, 이반은 농사를 짓지 않으면 사람이 먹고살 수 없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땅을 갈고 곡식을 거둔다. 이반에겐 돈이나, 권력을 상징하는 병정 등은 장난감이거나 남에게 주는 선물밖에 되지 않는다. 형들은 결국 망해서 이반에게 붙어살러 오고 어찌어찌해서 이반은 공주의 병을 낫게 해주는 일에 도움을 주어 황제가 된다. 그러나 황제가 된 이반은 일을 하러 들에 나간다. 그러자 대신들이 "폐하는 황제이십니다"라고 말린다. 이반은 "그래서? 황제도 먹고살아야 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한다.

그래서 황제가 바보라는 걸 알고 엘리트와 기득권 상당수는 이웃나라로 떠났다고 한다. 이웃나라 사람들은 전쟁을 선언하거나 물건을 팔러 오면서 이반의 나라를 무너뜨리려고 했지만, 이반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자유롭게 일하고, 평등하게 먹고 살았기에 필요 이상의 돈이나 전쟁이 필요 없었다. 바보스러울 정도로 뚝심 있는 황제와 뚝심 있는 백성들의 대응엔 아무도 대적할 자들이 없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잔머리 굴리는 자들은 머리로 일해 머리에 혹이 생겨 빨리 죽었고, 이반 나라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머리로 일해서 죽기보다는 손에 물집이 생기는 게 더 좋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매사에 이런 패러다임으로 움직이면서 이반 나라는 조금씩 성장했고, 누구나 정신적인 풍요를 누리며 문명국을 열었다고 한다. 이후 이반 황제는 황제 옷을 벗어놓고 긴 여행을 떠났다.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곳곳에 홍익인간의 세상을 전파하러 다녔다.

홍익인간이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념으로 거기엔 인간 차별이 없이 사람이 사람다운 세상을 살고 자유와 평등이 넘실대는 나라를 만드는 일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런 사상이 실크로드를 타고 서양으로 전해져 그들은 유토피아를 일찍부터 꿈꾸었고 과학적 사회주의의가 그 대안이라고 확신하며 혁명적 정세를 발전시켰다는 이야기이다.

대통합의 주장에 가린 계급구도

자본가 나라가 아닌 노동자, 민중의 나라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현실이 가혹하다는 증거이다. 다원화되고 하늘에 지펴있는 별들만큼이나 숱한 사람들의 고통도 읽을 줄 모르면서 올바른 정치를 운운하는 자들은 자신들만의 리그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절망의 손을 잡지 않고, 국민통합을 이야기하고 진보의 가치를 읊어대는 것은 너무나 낡은 정치며 허접한 리더십이다. 지금의 국민대통합은 크게는 두 개의 리그로 구축되어 있다. 바로 영남과 호남이 갖는 각각의 통합이다.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정치에 활용되어 온, 이런 통합은 마땅히 해체되어야 하며 정치적으로 구분되려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노동자와 자본가로 갈라치는 것이 올바른 통합인 동시에 바람직한 정치구도다.

노동자계급의 스타일 복원하자

강남스타일, 명박스타일, 광폭스타일, 잠행스타일, 무덤덤한 스타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상에 가려진 가식의 정치는 한계점이 분명하다. 유효와 효과와 절반의 성과를 축적해도 한판으로 결과를 한 번에 뒤바꿀 수 있는 게 노동자정치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이 땅의 다수인 노동자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진리의 반영이고, 그 진리는 노동자계급의 희망이기 때문에 절망과 고통을 극복하며 미래를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은 그 신념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노동자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고, 노동자 가슴에 면면히 전해져오는 머리띠 두른 '노동해방 스타일'이 노동자계급 스타일이다. 이것은 강남스타일이나 광폭스타일 잠행스타일보다 훨씬 가슴에 불을 지펴왔던 전 인류의 청춘의 스타일이다. 언제든지 요원의 들불처럼 퍼질 수 있는 노동해방 스타일은 자본과 나쁜 권력의 심장에 화살을 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강남스타일이 롬니의 몸을 흔들어댔다면 노동해방 스타일은 자본주의 심장을 강타하게 될 것이다. 노동해방 스타일은 다수가 권력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닌 진리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 곁에 올 수 있다는 확신으로 노동해방 스타일을 복원하여 정치일정을 돌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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