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가 비정규직 19명을 복직시키기로 했던 8.6합의를 이행하지 않자 비정규직지회는 곧바로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평택공장 앞에서 복직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2010년 8월에는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노사합의서 이행을 강제하기 위해 수원 지방법원 평택지원에 ‘확약서 이행 가처분신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해 겨울에는 쌍용자동차 이유일·박영태 공동관리인의 서울 집 앞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당시, 베일에 쌓여있던 공동관리인의 집을 찾아냈던 이들이 바로 쌍용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었다.
“그때 해결 못하고 4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괴로워요. 슬픈 현실이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내려왔는데도 아무 해결이 안 돼 있고. 비정규직 단 한명도 못 들어가 있고, 길거리에서 계속 싸움을 만들어가야 하니...”
▲ 2010년 12월 쌍용자동차 박영태 공동관리인 집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서맹섭 지회장 [출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
비정규직지회는 인도 마힌드라&마힌드라 그룹이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이후에는 인도대사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한다. 2011년 말에는 4.11 총선을 앞두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8.6 노사합의 과정에 참여했던 평택지역 국회의원인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과 민주통합당 정장선 의원 사무실 앞에서 6개월 동안 텐트농성을 진행했다. 그 결과 쌍용차 평택공장 본관에서 쌍용차 사측과 교섭이 진행되었으나 사측은 “명분상 1~2명 정도 검토해볼 수 있다”,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만들어지는 자리가 맞지 않다.”, “지금의 만남 형태가 적절하지하지 않다”는 등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태도를 보여 성과 없이 종료되었다. 쌍용자동차는 비정규직 신규채용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노사합의에서 약속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복직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쌍용차는 분사를 진행하여 기존에 희망퇴직한 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켰다. 쌍용차는 분사업체에 들어온 노동자들에게 2013년까지 연봉 3,500만원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으나 연봉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싫으면 나가라’는 태도에 분사업체 노동자들은 불만을 억누르고 근무를 하고 있다. 현재 쌍용자동차 안에는 8백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기존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가 약 420명이고, 분사업체 소속 노동자가 약 360명이다.
비정규직지회는 현재 불법파견 집단소송 중이다. 2011년 4월 29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및 체불임금 지급 소송’을 신청하여 2년에 가까운 심리를 진행하고 있는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곧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미 회사가 복직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8.6합의는 실효성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비정규직으로 들어갈 수 없어요. 우리는 정규직으로 공장에 돌아갈 겁니다. 2006년도 쌍용자동차의 파견법 위반으로 인해 우리는 이미 정규직이 됐어야할 사람들인데, 비정규직으로 강제로 쫓겨난 거잖아요. 다들 2년이 경과했기 때문에 자동 정규직이 돼야 될 사람들인데, 또다시 비정규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입니다.”
현재 비정규직지회는 정규직으로 복직하는 목표를 갖고 투쟁하고 있다. 이 결정을 하기까지 쌍용자동차지부의 권유와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현재, 지부에서도 이 요구안을 안고 함께 투쟁하고 있다. 서지회장은 재판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비정규직 투쟁을 넘어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으로
2010년 2월 쌍용자동차 정규직-비정규직 노조 1사 1조직이 투표 조합원 97%의 찬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 이전에도 같은 금속노조 소속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을 했지만, 비정규직지회는 금속노조 직가입으로 되어있었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해 총선까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독자적인 투쟁을 전개하였다.
대한문 분향소 설치 즈음인 지난해 봄, 비정규직 문제를 안고 함께 투쟁하겠다는 현 4기 집행부(김정우 지부장)의 제안과 설득이 있었다. 이에 공감한 비정규직지회는 그 후 해고자 복직과 살인진압 책임자 처벌, 회계조작 진상규명 등 5대요구안을 바탕으로 하는 지부 투쟁의 큰 틀 속에서 평택역·대한문·평택 송전탑에서 정규직과 공동투쟁을 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서로 떨어져있기 때문에 회의 한번 하는 게 쉽지 않은 단점은 있다. 그나마 서로 눈빛만 봐도 알 정도의 관계가 있어 소통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는 게 다행이다.
▲ 2009년 6월 6일 쌍용자동차 옥쇄파업 당시, 평택공장 안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총파업 투쟁 승리 문화제’ 상징의식 장면 |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 하나 된 노동자의 힘으로 함께 투쟁하는 것이 소중하다”며 서맹섭 지회장이 쌍용자동차 1사 1조직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쌍용차 정규직-비정규직 공동투쟁의 의미를 설명한다. 서지회장은 각자 맡은 자리와 역할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 얘기가 기대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도 한다. 또, 비정규직 요구 달성을 위한 투쟁의 길이 많이 열려져 있지 않은 점도 안타깝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형님, 고생 많으시죠. 잠깐 통화 돼요? 범대위 선전물 나오잖아요. 아까 내가 메일 들어가서 퍼갔는데요. 내일 아침 평택역에서 쓸려고. 앞면에 타이틀로‘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라는 글이 있어요. 이것은 약간 안 맞는 것 같애요. ‘쌍용차 해고자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복직’으로 쓰던지, 아니면 ‘정규직화’를 빼버리든지.”
인터뷰가 진행되던 1월 20일, 서맹섭 지회장이 지역 범대위(‘살인정권규탄! 정리해고철폐! 쌍용차 희생자 추모와 해고자 복직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에서 전화를 한다. 새로 나온 범대위 선전물 헤드라인에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규직화’ 라는 문구가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거니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싸우는 쌍용차지부의 경우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복직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있는지도 잘 몰라요. 비정규직이 집회 사회를 보고, 발언하고,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데도 몰라요. 그런 게 답답한 거죠. 국회의원들이 여기 철탑에 왔는데도 쌍용차에 비정규직이 있는지도 모르고, 철탑에 비정규직이 올라갔는지도 몰라요.”
“느그 걸 왜 느그가 거냐?”: 비정규직이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을 건 사연
쌍용자동차지부 철탑 고공농성 40일이 되어갈 즈음인 지난해 말, ‘비정규직 정규직화’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농성 초기에 걸린 ‘해고자 복직’과 ‘쌍용차 국정조사’ 현수막 사이에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을 건 사람이 바로 서맹섭 지회장이다.
“비정규직 동지가 저 철탑에 있는 한 비정규직의 요구안인 ‘비정규직 정규직화’ 플랭카드는 걸어줘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비정규직 목소리만 내겠다는 게 아니라 지부 큰 울타리에서 같이 하면서 우리 목소리를 내겠다는 거였죠. 그래서 그 플랭카드를 거는 문제로 논의를 해달라고 지부 임원들한테 요청을 했어요. 몇 번을 얘기 했는데도 곳곳에서 투쟁을 하느라 논의할 여건이 안 되었는지 지부에서는 기다려달라는 말만 했어요. ‘해고자 복직’ 플랭카드가 있는데, 굳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걸어야 되냐? 우리 내부는 다 정규직화 투쟁을 알고 있다’고 하길래 또 한 번 설명을 해주면서 복기성 비정규직 동지가 있는 한 걸어야겠다고 했어요.”
몇 차례에 걸쳐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 거는 것과 관련해 지부 내 논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지역 단체에도 얘기를 했는데, 얘기해보겠다는 대답만 들었다. 결국 서맹섭 지회장은 직접 현수막 제작을 하고, 단체 활동가 한명과 같이 송전탑에 가서 현수막을 걸었다.
▲ 1월 20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송전탑 고공농성장. 가운데 있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수막을 서맹섭 지회장이 걸었다. |
비정규직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을 직접 걸면서 서지회장은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송전탑 주변에 있던 경찰은 “느그 걸 왜 느그가 거냐?”고 했단다. 심지어는 경찰이 지부 조합원에게 “정규직 비정규직 함께 싸운다더니 비정규직 건 다 빼버리고 당신들만 살라고 하냐? 이건 너무 잘못된 거 아니냐? 이건 당연히 걸어야 되는 건데, 정규직이 걸어야 되는 거 아니냐? 여기서도 차별 하냐?”고 했다고 한다. 경찰은 앞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이 걸고, 같이 얘기하라는 훈계까지 했다고 한다.
쌍용차 정규직-비정규직 아름다운 투쟁을 조금만 더 알아줬으면
범대위에서 마련한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5대 요구안에도 쌍용차 비정규직 문제는 들어 있지 않다. 다섯 번째 항목에 ‘정리해고-비정규직 철폐’가 들어있긴 하지만, 이는 쌍용차 비정규직 문제라기보다는 전체 노동자 문제에 관한 요구안에 가깝다. 범대위에서 만든 선전물에는 비정규직 얘기가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다가 최근에 와서야 들어갔는데, 비정규직 350명이 해고되었다는 내용 정도에 불과하다. 범대위 서명용지에 들어가 있던 ‘비정규직 350명 해고’ 내용이 최근에는 빠지는 일도 있었다. 이 서명용지에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3천 명이 아니라)‘2,646명의 노동자들이 쫓겨나서’라는 문구가 들어있다. ‘무신경이 야기한 고의’로 보여진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부와 범대위에 들어가는 비정규직 관련 단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부와 범대위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해주려고 하고 선전물에도 관련 내용을 넣으려는 노력은 하고 있기 때문에 점점 나아지고 있단다.
▲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5대 요구안 관련 최근 범대위 서명용지. 첫 번째 줄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를 포함한 3천명이 아니라 ‘2,646명의 노동자들이 쫓겨나서’라는 문구가 있다. |
“저는 국회의원들 만나면 얘기해요. ‘내가 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이고, 2009년 굴뚝에 86일 동안 있었다. 그렇게 싸웠는데도 우리 비정규직 동지가 또다시 철탑에 올라갔다. 제일 먼저 해결될 수 있는 게 비정규직 문제였는데,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쌍용차 투쟁에는 정규직만 있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이 함께 있다. 모든 게 다 정규직 중심으로만 부각되고 있는데, 이 안에도 약한 사람이 있다. 약자를 한 번 더 고민해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쌍용차 투쟁에 오는 국회의원들도 쌍용차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이 6년째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서지회장은 그 이유가 각종 보고용 문서자료나 선전물에 쌍용차 비정규직 이야기가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쌍용차 안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있다는 걸 정확하게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서울 대한문에서, 철탑 위아래에서, 평택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공동의 목소리로 쌍용차 아름다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걸 조금만 더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될 거다 될 거다’ 긍정적인 주문을 걸고 있는 날들
서맹섭 씨는 11살, 7살, 3살, 20개월 된 네 아이의 아빠다. 그나마 아직 애들이 어려서 큰 돈이 안 들어가는 게 다행이란다. 태어나자마자 심장에 구멍이 생긴 선천성 심실 중격 결손증으로 많은 걱정을 했던 막내는 엄마 아빠의 정성과 민중가수 박준 씨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서씨는 아이들 때문에 서울에 가지 못하고 평택역 천막농성장 사수를 맡게 되었는데, 일주일에 집에서 자는 날이 두 번 정도다. 그나마도 밤 9~10시에 들어가서 자고, 아침에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 보내고 바로 농성장에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서씨에게 묻는 것 중 하나가 생계문제다.
“지부에서 생계비 받는 거로 살아요. 애기 기저귀나 분유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제가 회사 다닐 때도 큰 돈은 안 만졌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거기에 맞춰서 살아요. 쓰는 것 좀 줄이고, 애들이 많아서 외식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집에서 자장면 시켜서 먹고요.”
그는 주말이면 아빠와 놀이터에 가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뿌리치고 나오는 게 힘들다고 한다. 고공농성 하고, 천막에 있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집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가 않은 요즘이다. 그는 요즘 ‘안 된다’가 아니라 ‘될 거다, 될 거다’라고 자신에게 긍정적인 주문을 걸고 있는 중이다. 86일 간의 굴뚝 농성으로 10kg의 살이 빠지고, 농성이 마무리 된 이후에도 ‘두두두두’ 헬기소리 환청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과 불면증의 고통과 싸우며 투쟁을 이어온 서맹섭 씨는 최근 많이 지친다고 했다.
“요즘 많이 힘들고 지쳐요.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 아이들 생각하면서 이 어둠을 뚫어 볼려고 나도 모르게 지금 힘을 내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힘주는 요소가 애들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 애들이 컸을 때는 이 땅에 비정규직 차별이 없어야 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란 게 없어져야죠. 이런 삶을 또다시 물려준다는 거는 부모로서 말이 안 되는 거죠.”
▲ 평택 쌍용자동차 앞 송전탑 농성장에서 쌍용차지부 정규직·비정규직 조합원들. 첫째 줄 가장 오른쪽이 서맹섭 지회장 [출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비정규직지회] |
어쩔 때는 ‘너무 지쳤다. 이거 정말 계속 해야 되는 거냐?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하며 갈등할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쌍용자동차 공장에 들어가는 거란다. 서맹섭 씨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러움 당하지 않고 일터에서 평등하게 사는 날까지 먼저 싸우는 동지들이 좀 더 투쟁을 이어가야하지 않겠냐고 이야기한다.
“평범한 직장에서 일하고, 우리 아이들 아프지 않고 잘 크고, 우리 아이들이 원하는 거 다 벌어서 해줄 수 있는 게 행복 아닌가. 로또라도 한번 됐으면 좋겠는데, 그건 꿈에도 안 될 거고.(웃음) 나중에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은 소박한 꿈이 있어요. 우리가 지금 많이 힘들고 지쳐있는데요.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으니까 그 힘으로 조금만 힘내서 갔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정말 힘 모아 투쟁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아니라 모두 정규직으로 공장에 들어가서 막걸리 파티를 꼭 하고 싶어요. 철탑에 있는 세 동지들 힘내서 무사히 내려올 수 있게 조금만 더 힘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