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활동의 세계화

[양규헌 칼럼] 지구촌 신성가족에 이용당하는 세계 민중의 슬픔

며칠 전, 전철역 앞에서 낯선 사람에게서 두꺼운 책을 한권 받았다. 그 여성이 낯선 외국인의 발음으로 대중교통 노선을 물어왔기 때문에 미처 거절할 틈도 없이 받았다. 책이 제법 두꺼워 그냥 전철 안에 놓아두고 내릴까 하다가 마침 ‘예수 천국 불신 지옥’ 띠를 두르고 포교를 하고 있는 사람이 지나갔다. 저렇게 협박조로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과 믿음을 전하는 저 과도함의 본질에 깔린 계급의식은 무엇일까 하고 스치는 생각이 일단 책을 넘겨보게 한 것 같았다.

책의 저자는 국제적인 거물로 빌 게이츠보다 재산이 많다고 소문 난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다. 이 사람의 정체나 그가 해온 다양한 일들에 대한 그간의 평가는 이미 세상에 알려진 대로 보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종교관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정도가 조금씩 다를 것이다. 이 책은 본인 스스로의 고백이 담겨있는 그의 인생 기록으로 포교가 목적인 책답게 이상화된 지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사고하며 종교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불안하고 배고프고 결혼 못한 슬픈 영혼을 가진 사람, 누군가에게는 위안을 줄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시골에 사는 장가 못간 먼 친족이 결혼하기 위해 통일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주선해 주는 외국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다만 그것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한다. 너 자신을 소외시키고 나(주님과 교주님이 주관하는 세상)를 따라야 한다는 강령을 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자신이 해결 할 수 없는 절대 고통에 직면했을 때 절대자를 찾아 기도하게 된다. 기도라는 것은 마음의 간절한 기원일 텐데 이 기도라는 것을 들어주는 절대자도 가만히 보면 굉장히 편파적이다. 문선명이 해방공간에서 공산정권이 들어선 북한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를 설파하다가 흥남감옥에 갇혔다. 한국 전쟁이 터진 후 연합군의 대대적인 공격으로 흥남감옥은 폭격을 맞았는데 다른 죄수는 다 죽고 그만은 그의 간절한 기도로 살아남았다(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고 한다. 그가 여러 번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것은 우연한 행운이 반복해서 찾아온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는 그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강변한다. 그런 신념화는 그의 일생을 통해 관념으로부터 경제 현실로 구현되고 그가 꿈꾸는 전지구촌의 통일은, 국제결혼 사업의 3세대가 가기 전에 이루어 질것이라 믿는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그의 교회 이름답게 세계는, 종교가 하나 되는 통일교를 이루고 그가 싫어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관념론의 무한한 자유가 보장되는 자본주의가 승리했으니 이제 국제결혼으로 인종이 섞이고 국경이 소멸되면 지구가 통일을 이루는 것일까? 지구가 통일을 이루자면 인류에게 이제 하나 남은 이념 분쟁지역인 한반도의 남, 북만 통일하면 진정으로 지구가 통일되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낙원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도 그는 북한에 평화를 심는다며 북한의 지도자를 방문하거나 북한의 사업에 투자를 하였다.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반공운동을 펼쳤던 사람의 행적으로 봐서 소련(지금은 러시아)이나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을 보고 그가 진정한 지구촌 평화를 위해 행동하는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구를 지키자는 평화의 마음은 이념 대립과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야하는 것이라고 그의 책이 주장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진짜 우리의 현실세계는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가 다르고 그 상대성을 인정하지 못해서 지구에 평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에서 보듯이 종교로 포장된 전쟁의 이면엔 자원의 약탈과 경제패권에 대한 권력과 자본가들에 의한 자본가들의 주도권 싸움이 본질임과 동시에 자본축적의 과정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에 하나가 전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경제 문제를 둘러싼 계급의 문제가 종교분쟁이나 종교전쟁으로 포장되는 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위험하고 심각한데 이것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민중의 희생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자본가와 종교지도자가 똑같은 물질적 조건에서 세계화 사업을 한다고 생각해 보자. 누가 승리에 유리할까? 그것은 종교지도자다. 그가 종교를 통해 기업을 꾸려온 사람이라면 그는 이중 삼중 착취할 수 있는 물적 심리적 토대를 더 용이하게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최초 물질적 조건은 개별 신도들이 낸 헌금일 것이다. 그것이 세계포교를 생각해 낸 문선명의 처음 의도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교인들에게 받는 헌금과 자신의 투자 마인드, 그리고 특히 통일교 신도를 통한 영업(사업) 조직망을 활용함으로써 세계 거물로 성장했다.

식구(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먹는 곳이 가능한 곳)라는 '정언명령'을 내리고 교인들에게 가족 이데올로기를 유포해 헌금을 내는 걸 자연스런 행복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겐 마찬가지의 기독교 윤리나 가족의 확장논리로 노동자의 권리를 억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가 재벌의 반열에 올라있겠는가. 하나님 나라 건설에 쓰인다는 명목의 (세금 없는) 교회 수익과 기업을 하며 노동자에게서 얻은 온전한 착취물은 결국 재단이니 공익이니 어쩌고저쩌고 해도 종교지도자나 그 가족의 사적 소유물로 남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 그렇게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우리는 교회 재산이 사적 소유로 대물림 되는 추악한 사례를 많이 봐왔고 그것은 2세 형제자매들의 재산싸움으로 번져 재벌의 대물림과 같은 거대한 기득권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은 공익이나 공공성으로 움직이기 보다는 사적 재산으로 나아가 권력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이것은 뭘 말하는 것인가. 주식회사에서 개미 투자자로 이용되는 노동자 민중이 주식회사의 주인이 될 수 없듯이, 교회를 형성하는 절대 다수인 신도들은 교회권력으로 변신할 수 없으며 대부분이 노동자, 민중인 이들은 교회를 통해 종교적, 정신적 위안은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교회의 주인으로서 삶의 풍요는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문선명이 그렇게 외친 지구촌 '통일제국'의 주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빌린 자기 자신의 교리와 재림 예수로 포장한 자신일 것이다. 그것을 믿고 자신의 주체성을 박탈당한 민중이 얻은 것은 천국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끊임없이 지고 가야 할 노예노동의 땅일 뿐이다. 해방과 평화의 나라 건설을 위해 전쟁하는 지역과 가난한 지구촌을 누비고 다니며 평화의 사도 역할을 했다던 그가 가는 곳마다 한 일은 사실 악질자본가들이 하는 일과 별 반 다르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화해시키면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 사라진다고 역설한 그가 한 일은 그 접경지역에 축구장 같은 건물을 짓는 토건사업이었고, 이것에 이권이 몰린 사람들이 이익 때문에 서로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는 그런 일들은 사람 사는 어디에서도 일어나는 일 아닌가? 지금도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전쟁에 시달림을 받으며 살고 있지 그가 지은 축구장에서 평화롭게 축구를 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의 신념처럼 세계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세계가 지구촌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좋아진 건 하나도 없다. 그것은 십자가 깃발을 앞세워 살인과 폭력을 통해 침략의 명분을 확보했던 역사처럼 그 과정을 교묘한 교리를 통해 반복했을 뿐이다.

자본가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하여 돈을 모을 욕심으로 평화로웠던 영토를 아비규환의 소굴로 만들었던 게 기독교 역사 흐름의 핵심이고 지금도 그들의 점령은 진행 중이다. 그가 승리했다고 믿은 미국의 자본주의체제나 기독교 통일제국의 포교는 그냥 포악한 자본주의의 세계화일 뿐이다. 인간의 생명을 중시하는 전쟁방지나 인류평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오늘도 종교의 허울까지 덧씌우며 세계 노동자들에게 끊임없이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다만 전쟁을 전쟁상태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시에 자신들의 침략은 인류를 위한 '선'이라는 종교의 강력한 무기로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하나는 기독교의 승리를 위해, 또 하나는 자본가계급 승리를 위해.

자본주의의 악몽이 계속되어야 종교가 설 땅이 있고 한반도가 분단 상태로 남아 있어야 제국주의 세력들의 평화에 대한 주술의 가치는 상승되고 있으며, 수구 보수들의 정치적 활용가치는 샘솟듯 솟아난다. 그리고 세상을 유지시키는 금과옥조 같은 법이나 도덕과 관념들이 계속 살아남아 있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동자 민중을 희생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오늘 이 복잡한 지하철 안팎의 여러 풍경 중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의 외침이 협박하는 폭력으로 느껴지는 건 나의 별난 성격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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