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빈] 이화여고

"강북이나 지방 애들은 원서 쓰지도 마!"

거침없는 하이킥 - 3불폐지론

3不 폐지 - ‘당신들의 입시공화국’

대한민국은 입시공화국이다. 교육부가 어떤 입시정책을 내놓느냐에 따라, 주요 대학이 어떤 입시요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60만 수험생과 그 가족들은 아니 수백만의 초․중․고 학생들은 때로는 수능학원으로 때로는 논술과외로 내몰린다. 교육부가 편찬한 교과서 위에 수능 문제집이 있고,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 위에 각 대학의 입시안이 있다. 국가경쟁력 확보니 창의적 인재 양성이니 온갖 가지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우리나라의 교육의 목표는 오직 하나, 명문대 입학이다. 그 하나의 목표를 위해 초등학생들은 동심을 저당 잡히고 중고등학생은 밤늦게까지 청춘을 저당 잡힌다.

지금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이른바 ‘저주받은 89년생’으로 불린다. 이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 삼중고)’로 불리는 2008학년도 입시안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1학년 때 생전 처음 접해보는 ‘내신등급제’로 신음했다. 과거의 ‘수, 우, 미, 양, 가’ 식의 절대평가가 아닌 ‘상위 4%까지는 1등급, 상위 11%까지는 2등급’ 하는 식의 상대평가를 적용받게 되었다. 그 결과 ‘친구의 노트를 훔치는’ 가혹한 경쟁체제를 교실 안에서 체험하게 되었다. 이들은 2학년에 올라와 어느 날 갑자기 서울대를 중심으로 ‘논술 본고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접하게 된다. 교과서와 문제집을 가지고 5지 선다형 찍기 문제에 씨름하던 이들은 이제 느닷없이 ‘창의력 신장’의 깃발을 높이 들고 논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들이 3학년에 올라오자마자 고려대, 연세대 등 상위권 사립대학에서 수능의 비중을 강화하겠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제 ‘창의력 신장’의 깃발을 내리고 다시금 EBS 수능 강의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참교육은 간데없고, ‘창의력’이니 ‘경쟁력’이니 하는 온갖 요란한 깃발만 나부끼고, 아이들은 ‘합격’이라는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림이 없다.

과연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몇 번이나 바뀌었을까? 고3 담임교사 1년만 안 해도 그 다음 해에는 모조리 잊어버리게 된다는 복잡한 입시제도, 그리고 이 급변하는 입시제도의 흐름 속에 유유히 관철되고 있는 본질은 무엇인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교육혁신위원회가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입시 제도는 해방 이후 16차례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변화의 흐름 속에는 한 가지 변하지 않는 본질이 존재한다. 입시 제도는 자주 바뀌면 자주 바뀔수록, 입시 제도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부유층의 자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 입시 제도가 자주 바뀌고 복잡해질수록, 온갖 정보를 빠르고 쉽게 획득하여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부유층이기 때문이다. 고액의 사교육을 통해 내신, 수능, 논술을 모두 준비해야 하고 한번쯤은 해외 유학을 다녀와야 하고 각종 대회 수상 경력이나 고득점의 TOEIC 성적이 있으면 더더욱 유리해지는 입시제도의 관문을, 노동자 민중의 자녀가 통과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그런 점에서 입시제도는 철저히 계급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은 이제 경험적 진실이 되었다. 명문대를 가기 위해서는 ‘부자 아빠, 영어 되는 엄마’ 밑에서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명품 사교육을 받고, 조기 영어 유학도 다녀오고, 특목고에 진학하고, 내신과 수능과 논술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SKY 대학 학생의 30%가 서울 강남지역과 특목고 출신 학생들이라는 통계자료는 이제 조중동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얼마 전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만약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지금 태어났다면 아마 서울대에 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지 않았던가. 오로지 학교 공부와 동네 보습학원에 의존하는 노동자 민중의 자녀의 입장에서 보기에 대학입시란 ‘그들만의 리그’일 따름이다. 이러한 ‘그들만의 리그 - 교육을 통한 계급재생산’을 아예 노골화하겠다며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고 있는 것이 바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3不 정책 폐지’ 주장이다.

3不 폐지론의 속내

고교 등급제 - 강북이나 지방 애들은 원서 쓰지도 마!

필자가 고3 담임 교사이던 2004년, 내신 성적 만점에다가 여러 재능을 가진 학생을 Y대 수시 입학에 지원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탈락, 우리 학급뿐 아니라 다른 학급, 다른 학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다수 발생하였다. 이에 전교조 서울지부 차원에서 서울 시내 각 고등학교의 수시 입학 자료를 수합하여 분석한 결과 내신 성적이 뛰어난 강북 학생은 불합격하고 내신 성적이 저조한 강남 학생이 합격을 하는 ‘고교 등급제’의 실상이 폭로되었다.

각 고등학교를 서열화하여 학생 개인이 아닌 출신 고교에 따라 각기 다른 입학 기준을 부여하려는 고교 등급제는 현대판 ‘연좌제’이다. 아무리 성적이 좋고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그 학생이 강남 지역이나 특목고 학생이 아니라면 대학 진학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31조 1항에 대한 전면 도전이다.

기득권층은 끊임없이 고교 평준화 정책을 문제 삼으며 고교 등급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그리고 이미 지금도 고교 등급제는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다. 대학의 수시 입학에서 당락을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내신 성적이라기보다는 구술 면접, 자기 소개서 등 서류 전형이다. 그 과정에서 한 학생이 어느 지역 고등학교 출신인가, 어떤 집안의 자녀인가 하는 점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특목고 비교내신제’(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경우 수능 성적을 가지고 환산한 점수로 내신 성적을 갈음하는 제도) 역시 고교 등급제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강북이나 지방 아이들은 아예 원서 쓸 생각도 하지 말라는 고교 등급제 -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아이들이 넘어오지 말라고 자기네 아파트 단지 담벼락에 철조망을 치듯, 그들만의 높은 장벽을 쌓아 놓고 ‘대한민국 1%’를 사수하기 위해 애쓰는 이 시대 기득권층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대학 본고사 - 고액 과외 못 받는 애들은 시험 보지도 마!

대학 측은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주장하며 끊임없이 ‘대학 본고사’ 부활을 주장한다. 하지만 1998년부터 대학입학은 실질적으로 자율화된 이후 대학의 학생 선발의 자율권은 거의 자유방임주의 수준으로 보장되어 있다.

① 대학의 장은 … 입학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의 기록,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 대학별고사의 성적과 자기소개서 등 교과성적 외의 자료 등을 입학전형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②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대학의 장이 … 논술고사외의 필답고사를 시행하는 경우 … 이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5조)

교육부는 다만 내신, 수능, 대학별고사 등 대학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형요소를 나열해 놓았을 뿐 이를 어떻게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대학에 넘겨 놓은 상태이다. 내신 성적을 0% 반영하고 수능 성적을 100% 반영하든, 오로지 논술 고사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든 그것은 대학 측에 달려 있다. 전국의 N개의 대학에서 N개의 선발 방식을 제시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여전히 논술고사 외의 대학 본고사 시행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신이나 수능, 논술보다도 더 촘촘한 잣대로 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경쟁 우위를 확보한 소수의 엘리트(?)를 손쉽게 선점하려는 의도이다.

그러하기에 대학 본고사는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고난이도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대학 본고사가 시행되었던 70년대 서울대 본고사는 철저히 국, 영, 수 중심의 지식을 측정하는 문제였다. 게다가 시험 문제가 어렵기로 악명이 높아 합격선이 100점 만점 가운데 30점 정도였다. 이처럼 어려운 문제를 치르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고액의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학 본고사 시행의 수혜자는 부유층의 자녀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논술 고사로도 학생을 변별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대학들이 앞으로 어떤 형태의 본고사를 치르려 할지 알 수 없다. 이미 상당수의 대학에서는 TEPS나 TOEIC, TOEFL 등의 영어 성적을 반영하고 있고 심지어 고려대 등 일부 대학은 미국의 수능시험인 SAT를 반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도 있다. 게다가 한미FTA 체결에 따라 교육 시장마저 개방된다면, 미국의 SAT가 한국의 수능시험을 대체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기여 입학제 - 유전 명문대, 무전 삼류대

기여 입학제는 두 말할 필요조차 없이 국민의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제도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탈옥수 지강헌이 벌떡 일어나 이제는 ‘유전 명문대, 무전 삼류대’를 외쳐야 할 판국이다.

대학 측이 기여 입학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단 하나 대학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이다. 소수의 부자의 돈을 받아 대학의 재정을 튼튼히 하여 다수의 학생들에게 혜택을 돌리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이다.

최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의하면 수많은 사립대학들이 회계 장부를 조작하고 학교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여 수십 억대의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들은 재정 부족을 탓하며 학생 등록금을 연간 천만 원대로 올려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더니 이제는 거액을 기부하는 학생에게 대학 합격증을 팔겠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그의 소설 <양반전>을 통해 돈을 주고받으며 양반 문서를 매매하는 세태를 고발하였다. “문과의 홍패(紅牌)는 길이 두 자 남짓한 것이지만 백물이 구비되어 있어 그야말로 돈자루인 것이다”라는 양반의 특권을 듣고 난 부자가 “그만 두시오. 장차 나를 도둑놈으로 만들 작정인가”라는 말을 남기고 두 번 다시 양반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돈을 받고 합격증을 팔려는 대학들, 그리고 그 합격증을 사서 온갖 혜택을 누리려는 기득권층, 우리 아이들을 도둑놈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3不 정책으로는 부족하다. 대학 평준화, 무상교육 실현!

고교 등급제, 고교 평준화 완성으로 넘어서야

대학 측이 줄기차게 고교 등급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지역 간에 학력 격차가 존재하므로 내신 성적을 그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공교육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역 간 학력 격차가 생기는 이유는 지역마다 다양한 경제적, 문화적 여건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한 학생이 그러한 여건에서 최상의 결과를 냈다면 그것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만약 지역별 교육 격차가 그토록 문제라면 그 격차를 없애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지, 그 격차를 근거로 학생들을 출신 고교에 따라 차별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특목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외국어고, 과학고 등 특목고의 설립 목표는 해당 학문 분야의 특성화된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특목고의 실상은 외국어, 과학 계열의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한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만약 대학 측이 외국어 학과를 진학하려는 외국어고 출신 학생들에게, 자연계열을 진학하려는 과학고 출신 학생들에게 일정 정도 가산점을 부여한다면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대를 가려는 외국어고 출신 학생들에게도, 의대를 가려는 과학고 출신 학생들에게도 대학은 일방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흔히 보수세력들은 고교 평준화 정책이 ‘획일화된 교육’이라는 비판을 한다. 하지만 우리 교육을 획일화하는 주범은 평준화 정책이 아니라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체제로부터 비롯된 가혹한 입시교육이다. 또한 평준화 정책이란 흔히 오해하든 단순히 ‘뺑뺑이’로 학생을 배정하는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영재에게나 장애 학생에게나, 서울지역 학생에게나 산골마을 학생에게나 모든 이에게 ‘질 높은 공교육을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 평준화의 진정한 취지이다.

따라서 우리 교육의 문제는 평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평준화의 미완성’에 있다. 여전히 비평준화 지역으로 남아 있어 가혹한 고교 입시를 치르고 있는 지역에까지 평준화는 확대되어야 한다. 입시 명문고로 전락한 특목고가 진정한 설립 취지에 따라 제자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 강북의 학생들도 강남의 학생들도 균등한 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고교 등급제 논란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나아가 평준화 정책은 이제 대학교육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대학 본고사, 대학 평준화로 넘어서야

대학 본고사 논란의 핵심은 과연 각 대학이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회사에 들어올 신입사원에 대해서는 당연히 회사가 선발권을 갖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대학 입시와 회사 입사는 그 근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 이유는 대학 입시란 한 학생이 국가 차원에서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공교육을 이수하고 그 결과에 따라 대학에 진학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시제도는 기본적으로 대학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결과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마련되는 것이 타당하다.

이미 한국의 대학은 학생 선발의 자율권을 지나치게 행사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본 등 극소수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전국의 모든 대학이 서로 다른 입시 전형을 행사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것도 모자라 대학 본고사를 통해 학생 선발의 변별력을 더욱 높이겠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가혹한 입시경쟁체제를 학생들에게 강요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이 아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표현대로 현재의 ‘죽음의 트라이앵글(내신-수능-논술)’ 위에 ‘삼불 폐지’라는 고통을 더해 ‘죽음의 삼각뿔’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원에는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서열화체제가 있다. 대학서열화체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어떤 입시제도가 등장하더라도 우리 아이들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서열화체제의 해소는 곧 평준화의 완성, 대학 평준화를 의미한다.

대학 평준화란 흔히 오해하듯 ‘뺑뺑이’도 아니고 ‘서울대(라는 학교 하나의) 폐지’도 아니다. 프랑스처럼 모든 대학을 하나로 통합하여 ‘대학입학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이면 누구에게나 입학을 보장하여 ‘입학은 쉽게’ 하되, 대신 ‘졸업은 어렵게’ 하는 엄격한 학사 관리를 한 후, 졸업생들에게 공동의 학위를 수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3불 3통 정책’이라 표현했듯이 ‘3불 정책’을 법제화하고, 전국의 모든 국공립대학이 공통의 입시 전형, 공통의 학점 이수, 공통의 졸업자격시험을 통해 국공립대학 통합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나아가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부실, 부패 사립대학을 국공립대학으로 전환하여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로 편입시키는 것, 그것이 대학평준화의 완성이다.

대학 평준화는 대학의 학문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정책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의 학문 경쟁력 저하의 근본적인 원인은 오히려 대학서열화 체제와 학벌사회에 있다. 필자가 졸업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경험적 사실에 의하면, 연세대나 고려대 등 명문사립대 신입생들 중 1/3 가량이 서울대 진학을 위해 ‘반수 - 대학에 다니면서 다시 대입시험을 준비하는 형태로 ‘재수의 절반’이라 하여 ‘반수’라 한다.’를 신중히 고민하고 있고, 소위 서울지역 중위권 대학 신입생의 경우는 절반 가까이 ‘반수’를 하고 있다. 즉 서울대를 제외한 모든 대학의 학생들은 또 다시 재수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취업을 위해 TOEIC 문제집을 들고 고시원으로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대학서열화체제와 학벌사회야말로 모든 학생으로 하여금 오로지 더 높은 학벌을 획득하기 위해 달려들게 만드는 원인이다. 이 가운데 진정한 학문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학생은 사라지고 대학의 학문 경쟁력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서 두 번의 평준화 전환을 경험한 바 있다. 한 번은 초등학교 과열 입시 경쟁을 부추겼던 중학교 입시를 폐지하고 중학교 평준화를 실시한 것, 또 한 번은 명문고 진학 열풍을 낳았던 고교 입시를 폐지하고 고등학교 평준화를 실시한 것이다. 그 과정에는 가혹한 입시 교육으로 고통을 겪었던 아이들의 절규, 그리고 국민의 강력한 요구가 뒷받침했다. 이제는 대학 평준화를 통한 대학 입시의 폐지를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요구해야 할 때이다.

기여 입학제, 무상교육 실현으로 넘어서야

교육은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을 위한 권리이다. 또한 교육 기회는 기본적으로 국가가 전 국민을 위해 보장해야 할 성격의 것이다. 그러하기에 교육비는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헌법에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제31조 3항)”이라 명시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공교육 확대의 역사는 곧 무상교육 확대의 역사였다. 그리고 교육의 기회 균등, 무상교육의 확대는 노동자 민중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확보한 성과물이다. 돈이 없어 교육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 사회는 이미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무상교육의 의미는 단순히 돈을 내지 않고 교육을 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홍세화 선생이 지적했듯이 무상교육은 곧 세대 간, 계층 간의 사회적 연대를 의미한다. 기성 세대가 성실히 납부한 세금으로 다음 세대의 교육을 책임지고, 그 세대가 다시 땀 흘려 노동한 대가로 기성 세대의 노후를 책임지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다. 또한 부유층의 세금으로 저소득층의 교육비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연대의 실현이다. 그러하기에 개개인이 획득한 학력을 개개인의 출세를 위해 사유화하지 않고 다시금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 연대가 실현될 수 있다. “내가 낸 돈으로 대학을 다녔으니 사회에 나가 그에 합당한 이익을 챙겨야지”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낸 돈으로 대학을 다녔으니 사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지”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

기여 입학제는 전혀 반대의 논리이다. 돈을 내어 입학증을 사고, 학벌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듣게 되는 “내 돈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왜 간섭이냐?”라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논리이다.

온갖 회계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교육 재정이 부족해 기여 입학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대학은 스스로 자신의 무능력을 고백하고 대학을 사회에 환원하면 될 일이다. 그러한 부실 부패 사립학교는 국공립으로 전환시키고 대학 평준화의 대장정에 동참시키면 될 일이다. ‘유아교육에서 대학교육까지 완전한 무상교육의 실현’으로 기여 입학제에 맞불을 놓을 일이다.

노동자 민중의 눈으로 교육 문제를 바라보자

얼마 전 금속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생활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자녀 사교육비가 37.0%로 가장 많았고, 주택문제가 23.5%, 노후대책이 18.5%로 그 뒤를 이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자녀 사교육비를 대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 잔업과 특근 등 장시간노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레디앙 3월 26일자) 노동자 민중이 아무리 임금인상 투쟁을 하고 뼈 빠지게 잔업을 하며 한 푼 두 푼 저축을 해 봐야 천문학적 규모로 치솟는 사교육비, 대학등록금을 댈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3不정책 문제를 비롯한 입시 문제는 결국은 계급, 계층의 문제이다. 기득권층은 현재의 교육 불평등 현실에도 만족하지 않고 ‘3不 정책 폐지’라는 ‘거침없는 하이킥’을 날리고 있다. 노동자 민중은 ‘3不 법제화’라는 방어적 수단뿐만 아니라 나아가 노동자 민중을 위한 평등한 교육권의 확립, 대학 평준화와 무상교육 실현이라는 공세적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특히, 이번 대통령 선거 공간을 이러한 계급, 계층적 교육 쟁점을 적극적으로 부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학 평준화와 무상교육 실현은 어찌 보면 요원한 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안 이외로는 과도한 사교육비로 인한 민중의 부담 가중, 한창 꽃 피어야 할 나이에 스스로 자살을 생각하게 하는 입시 지옥이 사라질 수 없다. 노동자 민중은 이제 근본적인 입시 제도의 개혁을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잔업 특근을 해서라도, 식당일을 해서라도 학원비를 마련해 내 자식만이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려는 개인적 욕망을 뛰어넘어 노동자 민중의 자녀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적어도,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도구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교육은 기득권층이 자신의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전면적인 발달을 돕는 고귀한 노동이며,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모두가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
덧붙이는 말

이형빈 님은 서울 이화여고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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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등급제 , 대학서열화 , 입시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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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경희

    글을 읽고 명쾌하게 분석하여 표현하셔 시원했습니다.
    교육정책 만드는 사람들(분들..??)이 자신의 아이가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서야 무슨 정책이든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을까요?
    자신들의 자녀가 공부하지 않는 이 나라의 교육정책에
    그들이 과연 얼만큼의 관심이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 고강도노동자

    정말 더러버 못살겠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애들도 희망이 없다. 우선 교육과 의료라도 무상이 되어야 한다. 학교라도 계급이 없어져야 한다.

  • 독자

    잘 읽었읍니다. 3불정책 폐지가 문제라는 것은 알았지만, 대학평준화라는 대안에 대해선 이 글 보고 잘 알게 되었읍니다. 좋군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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