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운동, 너에게 나를 묻는다

[활동가 100명에게 들은 주거권운동 이야기](1)

소통에 사무치고, 연대에 미치고, 변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모여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고 있다. 포럼에서 다루어지는 전략과제워크샵 중에는 '살만한 집을 구하는 홈리스들을 위한 복덕방'이라는 워크샵이 열린다. 거세지는 금융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주거의 문제를 누구나 살만한 집에 살 권리의 문제로 재구성하고, 보편적인 운동으로 확장하기 위해 고민을 모아보기 위한 워크샵이다.

주거권운동워크샵 기획단에서는 워크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활동가 100명에게 듣는 주거권운동 이야기'라는 앙케이트를 진행했다. 주거권운동에 대한 의견들을 여과없이 듣기 위해 질문은 모두 서술형 주관식이었다.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기 위해 선정한 100명의 활동가 중 80명의 답변이 취합되었고 기획단에서 앙케이트를 분석한 기사를 보내주었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3차례에 걸쳐 이들의 기사를 연속 게재한다. 기사 말미에는 앙케이트 조사 관련 문항도 함께 싣는다.[편집인주]


가끔씩 우리가 과거를 생각하는 이유는 긍정과 부정의 기억의 파노라마에서 긍정을 긍정하고 부정을 반성하여 미래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골리앗 투쟁으로 상징되는 철거민운동, 그렇게 우리사회의 가장 소외된 뿌리를 찾은 그 곳에서 학생운동을 통해 혹은 사회운동을 통해 한번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활동가들에게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들추고자 한다면 그들은 어떠한 기억을 토로할게 될까.

철거민운동? 철거민을 넘어서지 못하는 생존권 운동?

철거민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철거민운동 하면 생존권/치열함이 생각난다고 하였다. 우리 사회에서 구조적 폭력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장에서 용역과 경찰의 물리적 폭력에 맞서 저항하는 철거민의 모습을 떠올리는 활동가들이 많았다. 반면 그러한 절박함을 가진 철거민 운동이 “철거당하는 사람들이란 정의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크게 보면 빈민이겠지만, 당장의 현실의 필요를 요구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뒤를 이었다.

그러한 지적은 철거민운동과 주거권운동을 다른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주거권운동이 철거민운동처럼 철거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만 한정되는 운동이 아니라 철거싸움 이외에 뭔가 다른 차원을 포괄한다는 느낌으로 이해하는 경우다. 또 주거권운동은 아직까지는 당사자성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주거권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기 위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결국 앞서 나온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주거권 쟁취를 구호로 하는 철거민운동이 철거민 당사자들의 죽음을 각오하는 투쟁을 통해 생존권을 쟁취하는 것에는 큰 역할을 했지만, 우리사회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보편적 이해를 반영하는 운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의 반증으로 볼 수 있다.

연대투쟁이 거점 사수를 위한 동원으로

‘질긴 자가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굵고 투박한 선전 구호 아래 전개되는 골리앗 투쟁은 용역들의 물리적 폭력과 자본의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한 불복종운동을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그러한 골리앗투쟁의 의미를 알기에 학생운동은 꾸준히 연대활동을 지속하였으나 철거 당사자들에게 공통의 무언가를 함께 지향하는 동지보다는 ‘착한 학생들’이란 방식으로 만남을 지속하기도 했다. 또 서로 머리를 맞대고 투쟁을 모색하는 연대의 본연의 의미보다는 당장의 철거를 막기 위하여 사수대를 구성하여 용역들에 맞서 '몸벽'으로 동원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요한 몫으로 남으면서 “돌이켜보면 학생단위를 도구적으로 사고했던 것 같은” 경험들도 있었다.

연대가 동원으로 전락한 것 중의 하나는 일상적으로 철거민조직과의 허심탄회한 의사소통과 수평적인 의사결정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있다. '같이 해보자'가 아닌 '이런 거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의 연대. 활동가들이 생각한 진정한 연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투쟁과정 속에서 투쟁의 결과물로 무엇을 얻어낼 것인지에 대한 것과 투쟁 이후(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와 그렇지 못했을 때 각각에 대해서)의 후속과제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것을 준비과정을 통해 함께 논의해서 공통의 목표를 만들어야 하며, 투쟁과정 속에서도 계속해서 이를 확인하고 조정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해방의 구호는 물밑협상으로 가라앉고

강제철거에 임박했다고 하는데 철거민당사자가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인지 앞으로 강제철거에 들어가게 되면 어떠한 대응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침탈 이후의 대안들은 무엇인지 궁금증은 늘어가지만 급박한 철거상황에 대한 정보통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정보교환이 원활하고 수평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각종 의혹만이 증폭하게 된다.

“철거싸움이 기본적으로 동 지역 내 주민들과 이권 문제도 있고, 건설사의 프락션도 영향이 있겠지만 지역 내 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반면, 이에 대한 대책위의 해명이나 적극적인 발언은 없어 결합했던 학단위 내에서도 여러 의혹이 불거졌던 경험이 있다”

이러한 정보통제에 따른 중앙 집중방식의 의사소통 체계가 악용되면서 철거민 당사자와 연대단위에 협상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그들의 의사가 협상에 반영되는 피드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보다는 중앙 지도부의 물밑협상을 통한 금전적 합의 보상으로 결말이 나면서 철거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철거민운동은 실리추구의 경제주의를 보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한 활동가는 “앞으로는 주민들이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과 의식화 작업이 필요하다”며 “월례회의 및 정기적인 주민총회를 통한 투명한 조직운영”을 주장하기도 했다.

방어적 폭력,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지 않기 위해

골리앗 투쟁을 통해 나타나는 방어적 폭력에 대해 그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당사자의 물리력이 한정적이기에 한 두 차례 물리적인 저항 이후에는 투쟁동력이 소진되어지는 경우가 많은 측면”을 생각하여 “철거민 당사자의 소수조직화를 넘어, 주거권리의 확보에 대한 사회적 인식, 주거권의 다양한 양상과 그에 따른 해당 주체의 조직화와 경로 확보, 그리고 나아가서는 ‘지역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전망까지 염두에 두면서 그에 따라 투쟁전술, 조직화 양식, 운동프로그램 마련 등의 종합적 마스터플랜이나 주체의 네트워크를 형성”을 적극 고려하고 반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여성 활동가들은 방어적 투쟁에 대해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 격앙될 수밖에 없으나 그 느낌이 마초적인 것과 연결되는 느낌이 들어 부담스럽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고, “골리앗에 올라가지 않는 다음에야 투쟁에 결합할 수 있는 부분이 미약하다고 느끼고 운동에 있어서 성별적으로 그 역할에 한계가 절박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다른 대안적 방법이 고민 되지도 않아 회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그야말로 ‘저들만의’ 투쟁과 운동이 아니기 위해 단지 내가 아닌 누군가의 외침이 아니라 내 문제가 되기 위해서 ‘철거민 운동’의 의미를 ‘주거권 운동’으로 확장하고 다른 이슈들과 연대할 수 있는 통로를 계속 개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돌고 도는 이야기, 그러나 다시 너에게 묻는다

아주 잠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많은 활동가들이 직접 철거민운동을 경험한 것보다는 물리적 폭력성만을 부각하면서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지 않는 대중매체의 표상들만을 접하고 섣불리 철거민운동을 판단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시 철거민운동을 묻는 이유는, 활동가들은 지금의 철거민운동이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정당한 불복종운동임에도 전체 사회운동에서 고립되고 있으며 그/녀들만의 생존권 투쟁으로 거리감이 생기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안타까움은 철거민운동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이해를 대변하는 운동으로서 당당하게 전화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러한 보편적 주거권운동을 위해서 철거민운동과 함께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바탕으로 두런두런 머리를 맞대고 누구나 적절한 주거공간을 점유할 수 있는 변혁의 즐거운 상상을 이 땅에서 만들어 가기를 원하는 것이다.

<앙케이트 관련 질문>

1. 귀하는 ‘철거민/주거권운동’ 하면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는지요? 왜 그런 생각이나 느낌이 드는지도 함께 적어주세요.

2. 귀하는 지금까지의 철거민운동에 연대해보거나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요? 그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앞으로 철거민운동의 실천이 어떤 방향으로 가기를 바라는지 적어주세요. (골리앗투쟁 등 투쟁전술이나 회원조직의 운영방식, 다양한 협상전술 등 생각나는 대로 적어주세요)

3. 한국에서의 철거민운동은 대책없는 강제철거 반대와 임대주택 보장 등의 단기적 목표뿐만 아니라 지역일반노조 건설을 통한 노동자-지역사회운동, 생협과 의협 등 자조적 협동조합을 통한 공동체 마을만들기 등의 장기적 과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귀하는 철거민운동의 목표나 전망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철거민운동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적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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