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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엄마 따라잡기'와 창훈의 죽음

[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학원버스 현수막, 움직이는 악의 본부

드라마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큰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시사프로에서 조기유학, 사교육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때 느꼈던 감정과 또 다른 욕망 - 강남 부들의 지나친 교육열을 모두들 욕하면서도 자식을 키우는 학부모라면 마음 한편으로 '나도 집안 사정만 허락하면 정보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원없이 한없이 좋은 부모 노릇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드라마로 풀어내어 학부모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극중 5인의 강남 엄마들은 강남의 경제적 여유, 문화적 자본과 다양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아이교육에 올인하는 인물들이다. 드라마는 이를 바탕으로 학교 현실과 사교육 현실, 재단이사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학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있을법한 장면을 부분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강남의 상황을 과장되게 그려냈다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교육문제를 제기하고 경종을 울리는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끔 화제가 되곤 했다.

드라마는 줄곧 주인공들의 과도한 욕망에 초점을 맞추더니 막바지에 이르면서 극중 수미(임성민 분)의 자랑거리인 특목고 학생 창훈의 자살이란 소재를 다루었다. 모범생 창훈은 과학고에 진학하여 엄마의 드높은 자부심에 한몫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창훈은 특목고에 진학 후 적성에 맞지 않아 자신이 원하는 미술공부를 할 수 있는 일반고로 전학하거나 특목고를 자퇴시켜 줄 것을 부모에게 요구하지만 잔혹한 반대에 부딪힌다. 이에 창훈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한다는 설정이었다.

옆에서 드라마를 같이 보던 딸아이가 ‘그러기에 부모가 욕심 좀 작작 부리지...’ 라며 비난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 부모를 탓하기에 앞서 그 아이와 부모가 너무 가여워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아이의 학업매니저로서 줄곧 아이의 인생을 관리하던 수미로서는 ‘명문대 진학에 유리하다’며 아이를 다그친 것인데 그것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할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극중 막다른 상황에 이른 아들 창훈의 우울증 증상앞에 엄마는 의사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고등학생은 성적떨어지면 다 우울하지 않냐며... 학습클리닉에 아이를 앞세운다. 결국 강남 엄마중에서도 경제력과 정보력이 최강이라며 극성을 부리던 다섯 명의 강남엄마들조차 총체적인 자녀양육은 주먹구구인 셈이었다. 살인적 경쟁과 입시지옥으로 아이를 몰아가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이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상처받을지 모를 아이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몫까지 엄마 개개인에게 맡긴 한국사회는 엄마들에게는 무책임하고 비열한 사회일뿐이다.

교육운동을 하는 나부터도 급변하는 환경속에서 아이 양육과 교육에 대해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등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간혹 엄마들이 모여 양육의 정보를 나누기도 했지만 점차 사교육 정보에 치우칠뿐 필요할 때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이해해야 하는지 막막할 때가 많은 것이다. 어느 부모든지 원하지만 정답을 찾기 어려운 주제들, 진정으로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 올바른 부모노릇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시간적으로 여유있는 고학력자인 전업주부들은 각개약진을 하거나 주먹구구로 양육을 대신하며 손쉽게 이웃엄마와 동창들과 어울려 학원과 진학 정보를 찾아서 무리지어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사정이 <강남엄마>가 생겨난 원인중 하나일 것이다.

최근에는 취업주부는 특정 학부모 그룹에 끼어주지 않아 취업엄마들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이라는 말도 들었다. 한국사회에서 엄마들에게 아이 키우기가 보람이라는 말은 이미 실종되어가고 있으며 아빠들도 교육문제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교육의 현실은 부모들의 삶도 옥죄지만 아이들 삶도 파탄내고 있다. 국내 십대 사망원인 가운데 자살이 2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과도한 경쟁과 입시지옥으로 10만 명 중 7-8명이 자살하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십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 한국청소년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청소년자살(자해 포함) 증감 추이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2001년 616명, 2002년 659명, 2003년 844명, 2004년 737명으로 증가 추세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하루에 2명꼴로 청소년이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먼 나라 일, 남의 일로 생각하여 교육당국이나 사회가 적절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아이살리기 운동본부조사>(2006년)에 따르면 최근 3년 내에 죽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 대안이라 생각할 만큼 심각한 고민을 한 경우가 초중고 17.7%, 고등학생 21.7%라고 한다. 입시스트레스 겪는 3대 정신적 질병도 심각하여 초등학생은 ADHD(과잉행동장애), 중학생은 게임중독증, 고등학생은 우울증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의 정신건강에 대해 무관심하며 자살한 개인의 의지가 박약해서 그렇거니 생각한다.

해마다 수능시험 이후 벌어지는 자살, 요즘은 특목고 학생 자살에 이르기까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공부의 중압감은 아이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다. 연간 30조 원의 이르는 사교육비를 부담하여 부모들은 겉으로는 ‘세계화된 무한경쟁사회에서 다 아이 잘되라’고 다그친다지만 아무리 글로벌사회를 외치고 글로벌기준을 강조해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다 그렇지는 않다.

유명 연예인, 방송인,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학벌과 학력위조 사태로 진통을 앓는 한국사회의 특이한 상황에서 부모나 아이가 고통을 겪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인 10대때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균형잡힌 정서를 가져야할 때 살인적 경쟁은 얼마나 무모하고 비극적인 것인가? 

교육운동단체들은 학력과 학벌 극단적 서열화, 소모적인 대입경쟁이 치열한 이상 공교육은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며 입시철폐, 고등교육개혁, 교육공공성 나아가서 대학평준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 울림이 작다. 다행히 드라마는 다소 희망적인 결말을 예고하듯이 극중 하희라는 부모로서 각성의 기미를 보이고 극중 또 하나의 강남 엄마인 정선경은 커다란 가위를 가지고 다니며 특목고 합격률을 광고하는 학원버스에 걸린 현수막을 ‘움직이는 악의 본부’라며 잘라내고 만다. 긍정적 조짐이다.

내가 속한 함께교육도 얼마 전 학력 위조사태 관련 논평에서 현수막 건을 거론한 적이 있다. 학벌위조 사태에 대한 논평중 주장의 하나로 '교육부와 행자부는 지방자치단체나 각급 학교에 협조공문을 보내 고시합격, 특목고합격, 명문대 합격 등 학벌을 조장하는 현수막이 걸리지 않도록 자제와 협조를 요청하고 이를 위반할 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내용이다. 비록 극중에서나마 학부모가 손에 든 가위가 개인의 각성을 넘어 우리교육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새로운 각성과 큰 울림이 되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말

김정명신 님은 함께교육 공동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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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 사교육 , 특목고 , 강남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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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적 경쟁과 입시지옥으로 아이를 몰아가야만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고 이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상처받을지 모를 아이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몫까지 엄마 개개인에게 맡긴 한국사회는 엄마들에게는 무책임하고 비열한 사회일뿐이다.
    <<공감 백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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