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를 넘어 노동허가제로

[고용허가제3년의 진실](3) - 노동허가제 입법화 과제와 이주 정책의 방향성

정부에서는 8월부터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합동단속에 들어간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안정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8월 17일이면 고용허가제 3년이 된다. 고용허가제 시행 3년이라는 시점과 집중단속이 8월에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듯 하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고용허가제 3년을 맞아 고용허가제가 과연 이주노동자에게 '약'이 되고 있는지, '독'이 되고 있는지 그 진실을 따져본다. 이번 글은 노동허가제 제정을 둘러싼 운동진영에서의 쟁점과 이후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들어가며

2003년 국회를 통과해 이듬해 8월 17일 시행된 ‘외국인근로자고용등에관한법률’, 일명 고용허가제가 얼마 전 시행 3년을 맞았다. 한국 땅에서 외국인이 노동을 목적으로 체류하기 시작한 것이 80년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바, 정부 정책이 현실을 따라가는 데 15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물론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산업연수생 제도가 있었지만, 이는 사실상 노동력 수급 문제를 ‘연수생’ 체류 자격을 규율하는 제도로 대체하려 했던 기형적인 정책이었고, 그만큼 야만적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고용허가제는 그 세부적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 정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하다.

고용허가제는 탄생과정에서도 많은 논란이 되었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에는 한국노총과 전노협 모두 내국인 노동자 이유로 이주노동자 유입 자체를 반대하였고,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움트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후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시점에서는 노동비용 상승을 이유로 사업주들의 반대가 극심하였다. 운동 진영에서는 노동허가제 도입을 주장했으나 제도 도입이 가시화되던 시점에서 이주노동자 운동을 주도하던 일부 진영이 현실성을 이유로 고용허가제 도입 찬성 입장으로 전환하면서 입장 차이를 드러냈고, 이는 지금까지도 주된 논쟁과 갈등 지점이 되고 있다.

고용허가제 vs 노동허가제

2002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초안을 작성한 노동허가제의 정식 명칭은 ‘외국인근로자고용및기본권보장에관한법률’이다.

법명으로만 본다면 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의 차이는 기본권 보장에 대한 강조를 제외하고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고용허가제/노동허가제라 구별하여 부르는 이유는 법 규율의 대상을 고용주로 하느냐 노동자로 하느냐의 핵심적 차이 때문에 그렇다. 다시 말해 고용허가제는 고용주에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골간으로 하는 반면,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을 골간으로 한다. 제도의 주체가 노동자냐 사용자냐 하는 것을 고용허가제/노동허가제 명칭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법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다소 철학적 주제인 반면, 노동권의 보장과 체류자격/기간의 문제는 현실적 주제이다. 고용허가제는 3년의 체류를 보장하는 반면, 노동허가제는 일반노동허가 5년에 특별노동허가 5년을 더해 10년을 보장한다. 이는 인력수급정책인 노동허가제가 충분한 체류 기간을 보장해 미등록 체류로의 전환을 막고, 정주화를 위한 가교로서의 기능할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노동3권 및 동등대우에 대한 원칙은 고용허가제와 노동허가제 모두 제시하고 있으나 고용허가제의 경우 사업장 이동을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이를 체류 자격과 연동시키고 있어 사실상 노동3권 및 동등대우 원칙의 실현을 막고 있다. 또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아닌 차별금지 규정만을 선언적으로 두고 있어 동등대우의 실현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반면 노동허가제는 사업장 이동 자유를 보장하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문화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노동허가제의 마지막 핵심 쟁점은 미등록 체류자의 문제인데, 고용허가제는 일부 이주노동자에 대한 제한적 합법화를 시행한 바 있고, 노동허가제는 전면 합법화를 제안하고 있다. 이는 미등록 체류의 원인이 정부 정책의 부재 및 미비점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복권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완의 노동허가제

노동허가제는 두 가지 의미에서 미완의 정책이다. 무엇보다 구호로서만 존재해 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2002년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초안을 작성하고, 2004년, 2005년에 걸쳐 다시 수정된 ‘안’이 있기는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화는 시도조차 되지 못 했다.

발의가 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민주노동당이 원내에서 독자적으로 법안을 이슈화할 능력이 안타깝지만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보수 양당이 결혼이민자에 대한 선심성 정책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제스츄어를 취하고는 있지만 이주민에 대한 실질적 권리 보장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는 자신의 색깔을 매우 선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의 독자 법안 발의 자체가 매우 어려울뿐더러 발의 이후 법안 상정과 통과 등도 매우 불투명하다.

이같은 조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관심과 대중투쟁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진보진영의 관심은 갈수록 증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주요 핵심 의제가 되고 있지는 못하고 그나마 이주노동자 운동 진영 내부에서 고용허가제 개정과 노동허가제 도입에 대한 입장이 나뉘어 있어 노동허가제 입법화를 위한 영향력 있는 대중 투쟁의 형성이 아직은 미흡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허가제 입법화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이주노동자 운동진영 내부에서는 제도 개선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평등노조 이주지부(현 이주노조), 외노협, 이주인권연대 등이 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수개월 논의를 진행하였으나, 고용허가제 개선과 노동허가제 도입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논의는 현실화되지 못 했고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제도 시행에 따른 문제점 수집과 그에 따른 개선안 제출로 논의가 정리되고 노말헥산 중독, 이주노조 탄압, 여수 화재참사 등 현안 투쟁이 발생하면서 침체되었다.

노동허가제 입법화의 두 번째 기회는 2006년 방문취업제 도입 시점이었다. 정부는 해외국적 동포의 국내 취업 규제를 완화하는 제도 개선안으로 방문취업제 도입을 추진하였다. 그 핵심 내용은 5년 복수 비자 발행과 연고 동포에 대한 무제한 입국 허용 그리고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이었으며, 이를 ‘재외동포의출입국및법적지위에관한법률’이 아닌 고용허가제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었다. 재외동포법은 동포의 출입국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저숙련직종에 대한 취업은 제한하고 있어 사실상 동포의 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해외국적 동포의 국내 경제 활동은 그 자체가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사안이지만, 이를 인력수급제도인 고용허가제에 포함시키는 순간 동포 간 차별은 물론 외국국적자 간 차별 역시 발생한다.

이중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현행 고용허가제 대신 노동허가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을 제시하면서 이를 노동허가제 도입의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원내 논의를 위해서는 고용허가제 폐지, 노동허가제 제정의 형식이 아닌 고용허가제 전면 개정의 형식으로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고용허가제 실패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정치적 책임 면제, 운동 진영 내부에서 가지는 노동허가제의 상징성 및 그에 따른 동력 상실이라는 우려를 가져왔고, 결국 노동허가제는 민주노동당 첫 원내진출 기간에 발의되지 못 하게 되었다.

노동허가제가 미완의 정책인 두 번째 이유는 정책 자체의 미비점이다. 세부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동포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보다 종합적으로는 통합적인 이주정책과 그 안에서 노동허가제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 운동진영 내에서 논의와 합의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과 인력수급을 규율하는 제도다. 따라서 노동허가제가 노동시장 내 차별 문제를 제기하고 정주화로의 가교 역할을 설계할 수는 있지만, 각종 사회보장 문제를 해결하고 정주화 자체를 보장하는 제도가 될 수는 없다. 단적으로 살펴보면 현행 제도에서 저숙련 직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가 수십년을 합법적으로 체류한다고 해도 영주권을 획득할 수가 없으며, 영주권을 획득한다고 해도 각종 사회보장 제도나 정치, 사회, 경제적 권리가 매우 제한적이다.

맺는 말

이번 대선은 이주노동자 운동진영에게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진보진영이 대선 공간에 참여하기 때문이 아니다. 세계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한국 사회가 성장하면 할수록 이주노동자의 증가는 명백한 현상이며, 이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정책 마련은 보수/진보를 떠나 회피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2007년 대선은 짧게는 향후 5년, 길게는 수십년 동안 사회적 이슈가 될 이주 정책의 화두가 제시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치적 공간이 될 것이다.

운동진영은 이번 대선을 이용해 현 고용허가제의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안 제시를 각 정치세력에 강제하는 것은 물론 종합적인 이주 정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로드맵 마련을 강제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보다 진지하고 폭넓은 논쟁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홍원표님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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