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 지역 인식, 지금 정도로는 어림없다

[노동운동,어깨를펴고](10) - 현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현장을 ③

국가의 권력이 지방으로 이양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 환호한지 10년이 채 안 되었다. ‘국가경쟁력 강화’ 라는 국가적 수준의 이데올로기가 지역적 수준에서는 ‘지역경제발전’, ‘낙후경제극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무한질주 하고 있다.

‘국가가 번영하면 국민이 잘 산다’ 라는 70년대 이후의 한결같은 국가 이데올로기에 ‘지역개발을 하면 지역민이 잘 산다’는 광범위한 2,3중의 최면이 구조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전체 자본과 지역 토호세력의 동맹, 지역 개발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왜곡된 여론구조인 언론 환경과의 접목 등이 한 통속으로 개발을 위한 독재의 판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자본축적의 지역 기반을 다지기 위해 단체장의 지휘 아래 대다수 시민의 요구, 즉 선거의 표를 무기로 중앙정부와의 강력한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국가정부를 우회해 초국적자본의 직접적인 지역 투자는 지역이라는 공간이 자본을 위해 얼마나 유연화 되어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유연화 과정은 노동자들의 고용형태, 건강권 등에는 쐐기가 되고, 지역 차원의 노사평화선언이라는 형태로 지역사회전반(언론,행정 등)을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가두어 노동운동과 지역 민중들의 연대와 호흡을 차단하고 있다.

관치에 기대어 힘을 얻은 이들 친자본, 친개발 세력은 이미 강력하게 세력화 되어 노동자 파업, 노사협상 등을 가리지 않고 개발세력에 이익이 된다면 매머드급 투쟁을 전개한다. 포항의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에서처럼 노동자들에게 지역민의 일부라는 최소한의 동정심도 없다.

예를 들어보자. 12월초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주변과 도심 곳곳에 관변단체들이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이 노동자들의 근무형태를 변경해 2교대 협상을 하루빨리 타결하라는 현수막 1000장을 게시했다. 진행 중인 노사협상에 도지사를 비롯한 관변단체들이 개입한 이 사건은 한동안 지역 사회의 뜨거운 감자였다.

전라북도 도지사는 이러한 내용으로 아침 출근 선전전을 진행하고, 곧바로 천막농성을 전개하였다. 물론 지역의 모든 언론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이에 고무된 도지사는 공무원 조직과 관변단체를 총동원해 촛불시위를 진행하였다. 관변단체도 부분과 업종이 있어서 각 단체별로 릴레이 기자회견을 통해 ‘2교대 협상 조속 타결’, ‘지역경제 활성화’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노사협상의 핵심이었던 심야노동이 현장노동자에게 끼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 없이 노동자들을 향한 일방적 여론몰이 만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뭇매를 견뎌내며 노동조합의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결로 인해 ‘지역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악의적 비난이 난무하여 현장노동자와 민주노총으로 표현되는 노동운동은 지역 민중들로부터 만신창이가 되었다. 일순간에 지역발전을 저해시키는 노동운동세력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노동운동은 지역사회와 현장의 운동을 사회화하는 투쟁하는 가두에서 시민의 지지를 받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고립무원의 섬이 되어가고 있다.

더우기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공격에 이렇다할 전략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이미 사회적 쟁점이 된 현장의 투쟁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처럼 노동자 건강권이 민중들의 건강권에 부합되고, 노동자의 현실을 직, 간접적으로 들어낼 호기였음에도 현장과 지역 노동운동은 지역사회의 핵심을 만들어 내는 데 취약하다. 파업의 정당성을 지지하거나, 제도개선 투쟁에 가두에서 연대하거나 하는 힘 실어주기 이외의 일상의 노동운동의 계급적연대는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거나 존재하지 않고 있다.

산별시대 노동운동이 시작되면서 노동운동의 혁신방안 중의 하나로 ‘지역을 중심으로’ 라는 내용이 빠지지 않고 눈에 띄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상황을 노동운동이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고 싶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이 지역이라는 것이 교섭과 재정 등의 산별 내 권력의 부분적 이양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노동자들의 단결과 연대를 꾀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찾기란 부족해 보인다. 즉 산별노조를 잘 운영하기 위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측면을 핵심적으로 내포하고 있어 지역 차원에서 노동운동을 발전시키고 전 사회적으로 노동운동의 역할과 계급적 지위를 높이는데 기여할지는 미지수이다. ‘지역’에 대한 인식이 이정도라면 지역 자본 세력의 포위와 공격을 통한 일상적인 노동운동 죽이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지역’을 말하면서 지역을 판단하는 두 가지의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지침화된 내용을 수행하고, 중앙권력의 부분적 이양을 통해 관료화를 차단하는 효과로서 ‘지역’과 운동이 시작되고, 그 토대와 거점이 되는 자율성이 보장되는 ‘지역’의 의미가 그것이다. 산별 노동운동이 말하는 지역은 표현대로라면 ‘전자’이거나 그것을 지향하고 있다. 이 정도의 소극적 의미를 가지고서는 노동운동의 계급적 지위를 확보하기에 한계적이다.

또한 현장과 지역의 관계맺기에 대한 오해도 존재한다. 첫째, 현장은 현장대로 잘하고, 지역은 연대하거나 선동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다. 이는 일면 타당한 논리처럼 보이지만 현장은 임단협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투쟁의 공간으로, 지역은 여러 사회적 문제에 투쟁의 태세로 단순히 참여하거나,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술적 활용처로서의 공간이라는 협소한 논리에 다름 아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회적 요구가 현장 노동자들의 이익에 어떻게 부합되는지, 날이 갈수록 분할되고, 비정규직화 되는 노동현장이 민중의 삶에 기초해 실질적 투쟁을 통해 만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로서의 지역이라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것이 사회 속에 그 실체를 드러내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계급적 연대의 공간 구성은 ‘지역’이라는 곳에서 구축되어야 일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가령 현장의 고유한 운동방식으로 고용단계에서부터 여성노동권을 보장하는 노력이나, 현장노동자의 보육 문제를 사회적 공공 부분에서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려는 전략 따위가 그것이다.

둘째, 현장의 강화를 위해 사회적 요구와 지역을 활용한다는 인식이다. 다행히도 현장운동이 의료, 교육 등 공공부문의 사회적 착취에 대한 해결 없이 생존권을 보장받기 어려운 것으로 현장에서부터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안은 전 계급적 이익에 부합되는데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지역을 활용하거나, 사회적 의제화를 시키려는 운동 작풍이 연출되기도 하다. 물사유화 투쟁 당시 현장의 요구로 공공성 요구를 가지고 현장과 지역사회가 하나의 세력으로 성장했지만 현장에서 고용불안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자 일정하게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자본의 현장 와해를 차단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사회적 공공성의 외피를 쓰려는 경향은 아직도 지역과 현장, 현장과 지역이 보편적 이익이 교차되고 형성되는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오해와 소극적인 의미로서의 ‘지역’에 대한 노동운동의 인식이 하루 빨리 정정되어야 한다. 산별시대 노동운동이 변혁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미 승인된 내용의 화려함을 구현할 수 있는 노동운동의 공간을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활로를 찾아가야 한다.

포항, 울산, 전주 등 전국 곳곳에서 자본의 전방위적 공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될 것이다. 또한 지역은 물리적 투쟁까지 동반하며 자본에 환호하고 힘을 실어주는 지역세력이 빠르게 구축되는 과정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제 현장의 힘을 기반으로 하면서 현장의 요구가 계급적 지위를 얻어 사회 보편화 되어가는 노동운동의 전략을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야 노동운동의 계급적 힘은 지켜질 것이다. 지역에서부터 사례를 만들고 이를 현실화 시킨다면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다. 이것이 노동운동의 계급적 힘이 갖는 위력이다. 변화되고 있는 상황을 좀 더 치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해 나가자.

[기획] "노동운동, 어깨를 펴고"

1회차(1월10일) 시론 : 노동운동의 의제설정 과제
2회차(1월10일) 산별과 지역(1)
3회차(1월11일) 비정규법안과 로드맵 이후 대응
4회차(1월12일) 산별과 지역(2)
5회차(1월15일) 민주노총 연대운동 짚어보기
6회차(1월16일) 사회연대전략 어떻게 할까
7회차(1월17일) 연금 개악 대응은
8회차(1월18일) 노사정위원회와 사회적 교섭 전술이 남긴 것
9회차(1월19일) 민주노조운동의 혁신
10회차(1월22일) 현장에서 지역으로, 지역에서 현장을
덧붙이는 말

김종섭 님은 새날을여는정치연대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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