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길섶]의 왼손놀이

부안, 혹은 좌파의 불구경놀이

또 부안야? 그렇소이다. 나는 부안 이야기로 계속적으로 읅어 먹어야겄다. 우선 부안문제는 여전히 진행중이고 설령 상황종료된다 해도 그 나의 기억은 도래하는 오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실 부안은 이제 잊혀져가는 듯 하다. 부안 사람들도 스스로를 잊어가고 있고. 지난 4월 총선 결과(열린우리당 후보자 당선)로 욕도 실컷 얻어먹었다. ‘해방구’ 혹은 주민권력에 의한 막강한 이중권력의 최정점을 보여준 2·14 주민투표의 감동적 승리는 곧바로 그 이후의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반핵대책위의 권위주의적 자만심으로 인해 주민들을 ‘공황상태’로 빠지게 하였고 급기야 4월 총선의 실패로 나타났다. 그리고 (물론 농번기의 시작이라는 사정이 있기는 했어도) 투쟁동력도 급격히 상실했다. 그 틈새로 핵마피아집단과 그 똘마니들이 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부안군 지자체가 시행할 주민투표를 둘러싸고 찬반 격돌이 예상되며, 부안 주민들은 또다시 거대한 힘으로 투쟁의 절대공동체를 형성할 것이다. 7월초에 제2기 군의회 의장선거가 있는데, 현 의장이 군수와 함께 친핵파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고 그가 차기 의장직도 차지할 공략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 반핵쪽에서는 대응전략에 분주하다. 군의원 13명중 1명은 반핵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수감중에 있고 나머지 의원들의 성분은 반핵쪽 대 친핵쪽이 6:6으로 분석되고 있어 의장 선거 투쟁이 자칫 실패할 우려가 있다. 이는 또한 곧바로 있을 주민투표 조례 제정 저지투쟁과도 직접적 연관성이 있어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부안은 휴화산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활화산이다.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실 부안투쟁 자체에 있지 않다. 이런 사태들 속에서 좌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질문해보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는 작년 7월 이후 개시된 부안항쟁의 대장정 상황에서 좌파가 한 일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부안항쟁이 핵폐기장이라는 환경-생명-생태-에너지 문제를 넘어서 민주주의 투쟁이고 주민들의 대규모 직접행동투쟁임이 잘 알려져 있음에도 좌파는 심정적 지지와 강건너 불구경하기를 넘어서지 못했다. 좌파의 무능력이다.
그런데 나의 관심은 (나 역시 그 안에 포함되지만) 좌파의 무능력을 질타하려는 게 아니라 도대체 이런 지역적 사태에서 좌파는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좌파의 위기’가 거론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런 제기를 하는 게 무색해보이긴 하나 양자가 결코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좌파의 위기라 할 때 특히 조직적 위기를 일컬을 것이고, 나는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으며, 다만 부안항쟁에서 주민투쟁의 역동성을 좌파적 전망으로 연대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바로 이런 기회들조차 놓쳐버린다는 것, 그래서 나는 사실 좌파의 위기가 이런 불구경놀이에서도 오지 않았나 생각된다.
좌파가 불구경놀이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째, 조직적 역량의 문제 둘째, 이슈가 너무 많음의 문제 혹은 부안항쟁을 단순히 지역적 이슈로 환원시키는 문제 셋째, 좌파는 부안에서의 외부자라는 인식 문제 넷째, 좌파의 할일을 전통적 방식으로만 이해하여 포괄적이지 못한 문제 다섯째, 부안주민들이 너무 잘 싸워서? 문제 등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부안은 계급투쟁없는 계급투쟁을 속개해왔다. 부안 주민들은 민중이자 다중인 사회적 주체로 급부상했다. 부안은 분명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이라는 거대독점 전력자본 및 전력권력과, 그리고 그에 동맹하는 군정독재 및 노무현 정권에 대항해 투쟁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성격들이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고 감정구조에 의한 적대적 구도로 크게 표현되었다.
나는 이런 지역적 사태에서 좌파의 시선을 외삽시키는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투쟁하는 주민들의 감정구조를 분명히 읽어내고 그 흐름 속에서 세계의 본질적 문제들과 결부시켜 창발적인 상황을 역동적으로 만들어나가도록 하는 방식이 맞다고 본다. 그런데 좌파는 정말 무능력하게도 차라리(?) 전자의 방식도 실천하지 못했으며, 말하나마나 후자의 방식도 실험하지 못했다. 좌파가 이렇게 불구경놀이하는 동안 부안항쟁은 이중적 괴리층위가 형성되면서 한편으로는 왜곡된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내가 좌파의 불구경놀이를 씹어댄다 해서 좌파가 개입했으면 부안항쟁이 잘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불성설이다. 좌파가 능력이 크다 해도 섣불리, 더군다나 ‘좌파세력’으로 무식하게 개입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어쩌라고? 나는 좌파의 능력이란 그 조직적 강력함이나 이데올로기적 그물망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보다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상황에서도 새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역능성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부안만이 아니라, 탄핵사태에서도 드러났는데, 좌파의 무능력은 새로운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데서 비롯되어 보인다.
나는 모험주의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존재해보지 않은 곳에서 존재해보기. 나는 다만 이것을 상상해본다. 그래서 또 부안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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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폐기장 , 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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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맑은하늘

    김진균 선생님은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집착과는 다른거지요. 평생 실천하며 전선에서 떠나지 않으셨던 선생님은 노동자 민중의 '희망'을 일구는 길에 서계셨던 태도로 당신의 삶에 대해서도 희망을 가지셨던 거지요. 끝까지.
    박준성 선생님, 해방을 향한 희망을 늘 말씀하셨잖아요. 그렇게 병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 서동석(현묵)

    뭐 이런저런 할 말이 머리 속에서만 빙빙 돌고, 정작 손끝으로는 표현이 안되는구만.
    그렇게 고통스러웠다니..
    며칠 전 봤을 때 박동지가 겪었을 그 고통을 짐작도 못했네. 미안해.
    몸 관리 잘 하시구, 며칠 있다 시간 내서 따뜻한 차 한잔 나눔세.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감응한다니, 나도 치성을 드리겠네.
    우리 박준성동지 병고에서 툴툴 털고 일어나게 하소서.

  • wls

    학교 다닐때 한 여름 무슨 투쟁단이라고 새까매져서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교양시간이라 해서 잠이나 자야겠다^^ 했는데,
    선생님의 슬라이드 강연에 매료되어서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 힘내시고 빨리 일어나세요.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 윤성희

    선생님.. 2학년때 선생님 강의를 너무 재미있게 들었던 학생입니다.
    학교 앞에서 선전전 할 때, 수요일 아침마다 선생님이
    아는 체 해 주실 때마다 기뻤던 게 기억나네요...
    강의 시간에 틀어주신 슬라이드 보면서 울었던 것도 기억나고요..

    선생님이 아프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선생님 빨리 나으세요... 힘내세요.

  • 은종복

    오늘 책방에 들어온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선생님 몸이 더 가벼워 보이고 얼굴빛이 좋아 보였어요. 입술도 약간 붉으스레했구요. 목소리는 작지만 맑았습니다.

    선생님은 절벽에 떨어지는 사람을 예로 들면서 떨어진 사람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고 빨리 치료하기 위해 병원차를 이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낭떨어지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지요.
    그래요. 우리는 병든 사람을 보듬는 것도 해야할 일이지만 그가 병들도록 만드는 사회를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선생님은 당신 몸 아프면서도 군사정권때 고문받으며 죽어간 동지들을 생각하네요. 병치레 중에도 고통받는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애틋하기만 합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이 땅에서 사람이 사람을 못살게 하고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는 세상'을 막는데 쓰여져야 해요.
    그 길을 가는데 같이 할 수 있어 기뻐요.
    선생님의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는 것은 바로 이 땅에 진보의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거예요. 그 나무들이 모여 해방의 숲을 이룰 날이 올 거예요. 그 때 선생님 좋아하시는 막걸리도 마음껏 마시며 해방춤 한 판 신명나게 추워요.

    선생님이 보듬고 아껴온 '역사와 산' 모임이 10주년을 맞았네요. 오는 16일에 1박 3일로 덕유산으로 가지요. 선생님도 따님 인해와 함께 가지요.
    선생님은 남다른 느낌이 있을 겁니다. 10년 동안 단 한 차례 수 년 전 1월달 한라산에 못들어간 것을 빼고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이어온 진보의 산행 모임이니 얼마나 뿌듯하겠어요.
    저도 '역사와 산'을 통해 몸은 튼튼해지고 마음은 진보의 삶을 살려고 했지요.
    '역사와 산'이 열살 되는 동안 쉼없이 진보의 거름을 주신 선생님께 고마움의 큰 절을 올립니다.
    덕유산에서 맑고 밝은 얼굴로 만나요.
    며칠째 큰 비가 오더니 오늘은 빗줄기가 가늘어 졌네요. 이제 곧 따듯한 햇살이 내릴 거예요.
    선생님 몸 마음 모두 건강하세요.

    2004년 7월 14일 해거름녘에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 하늘

    십몇년전에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적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몇년전에 제가 있는 공장의 노동조합에 선생님이 오셔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슬라이드 강연을 해주셨죠
    전 그 강연을 꼭 보고 싶었지만, 그때 상황이 넘 안좋고 제가 맡은 일이 있다보니 결국 놓치고 말았습니다.
    언젠가는 꼭 한번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선생님의 투병에 관한 글을 보게 됐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겨울 관악산을 오르던 때가 기억납니다.
    10년도 넘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정상에서 부르던 노동가요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꼭 다시 건강을 되찾으셔서
    강연도 다니시고 산도 다닐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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