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동진]의 복지는 죽었다

칠레 연금개혁이 우리의 모델(?)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국민연금 기사를 보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만이 광화문 촛불 시위로 이어지고, 연금폐지론, 기초연금도입 주장 등 연일 연금관련 논쟁이 불을 붙는 가운데에 '관점이 있는 뉴스'를 지향하는 인터넷 신문 6월 9일자 '프레시안'에 국민연금 관련기사가 실렸다. 내용의 핵심은 멕시코에서 공적연금 적자의 누적으로 파산위기에 몰리자 '칠레형 민간연금'으로의 대대적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이다. 칠레형 모델은 '세계 최고의 모델'로서 영국 등 공적연금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모범 모델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기사 말미에 '자신이 납부한 보험료 원금과 기금의 운용 이자에 따라 결정될 뿐 아니라 세금 혜택이 주어지므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를 크게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하경제를 제도권 경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도 거두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칠레의 연금제도는 기사에서 소개하는 바대로 '개인구좌식 적립방식'이다. 1974년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전복하고 등장한 군사독재정권인 피노체트 정부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는데, 시장경제체제 도입, 민영화, 자유화 조치 시행을 통한 국제 금융시장에의 접근을 기본 방향으로 삼았다. 198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강타한 외채 위기에서 칠레도 예외가 아니었고, 위기 극복을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는데, 연금개혁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981년 신연금법을 제정하여 정부가 관리하던 연금제도를 민간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유치, 운용하는 '개인구좌식 적립방식'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외채 위기 극복의 방안이라는 등의 사적연금을 찬양하는 각종 논리가 동원된 것은 물론이고, 세제혜택 등 사적연금으로 유인하기 위한 동기도 정부 차원에서 제공되었다. 그 결과 신연금법 발표 이후 8개월 만에 전체 노동자의 80%가 사적 연금으로 전환하였고, 1994년에는 기존의 확정급여형 공적연금을 완전히 대체하여 민간이 운영하는 강제방식의 확정기여형 연금저축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인가에 대해서는 의심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칠례의 사적 연금 개혁은 결코 외채위기로부터 탈출구를 마련해 주지 않았으며, 칠레의 연금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자본은 자유화와 탈규제를 요구했고 'IMF 구조조정협약'을 이행할 것을 강제했다. 그리고 이렇게 적립된 자금은 금융시장을 통해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은퇴 이후 받는 연금액수도 매우 불안정하다. 민영화된 연금체계에서 은퇴시기에 받는 연금의 액수는 개인이 기여한 것에 투자수익률을 더한 액수이다. 물론 여기서 관리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가 빠져야한다. 그리고 투자가 언제나 플러스 수익률을 내지는 않을 수 있으므로, 투자에서의 손실분은 개인이 감내해야한다. 대다수의 저소득층은 기여할 수 있는 여유소득이 없기 때문에 연금의 혜택에서 제외되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사적연금의 극성 속에서 아무런 조치조차 취해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관리회사들의 수수료는 계속해서 증가했지만, 정부는 이에 대해 규제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기사에서 언급하는 '자발적으로 참여할 동기'란 다름 아닌 퇴직 이후 '노후의 생존'을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극심한 경쟁에 스스로를 몰아넣는 길 밖에 없다'는 상황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정부는 6월 중으로 보험료는 올리고 급여율은 낮추는 연금법개정안과 주식투자 비중을 자유롭게 하는 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태세이다. 아울러 이와 동시에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명목하에 '기초연금'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시민단체와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는 퇴직금제도를 없애고 기업연금을 도입하는 주장마저 나온다. 그리고 현 제도에 대한 불신을 빌미로 '사회적 연대'를 해치는 주장마저 스스럼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국민연금을 반대하는 촛불시위의 현실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비판의 기능을 제공하기 보다, 특정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선전하는 수단과 무기로서 기능한 지가 오래이고, 또한 그것이 속성임을 요즘 들어서 더욱 자주 드러내고 있다. 특히나 국민연금관련 논란과 보도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이슈'에 끼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일부 '여론제기 집단'이 기본 원칙과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 없이 '설 익은 주장'을 함부로 내놓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연금개혁'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의 출발에는 세계은행과 OECD의 '연금개혁 권고안'이 자리잡고 있다. 그 권고안의 목적은 노동자의 소득(임금소득이든, 노후소득이든)을 주식·금융시장의 체계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국민연금 논란의 해법은 다소 추상적이고 원론적으로 여겨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글은 보건복지민중연대·사회진보연대가 공동으로 펴낸 '연기금 금융화저지 자료집 - 국민연금개악·기업연금도입 반대투쟁을 위하여'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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