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은숙]의 가방

죽었니 살았니?

*이 글을 마치고 난 직후, 김선일 씨가 사망했다는 속보를 접했다. 눈시울이 벌개진 동료의 얼굴, 가슴속을 칼로 긋는 것 같다. ‘무섭다’는 말이 한숨으로 나온다. 고인과 가족에게 무슨 위로를 하랴, 이 고통을 함께 하는 모든 분들의 심정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파병철회를 위한 저항으로 만나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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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니 살았니?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죽었니 살았니? 넋 놓고 앉아 있다보니 어릴 때 놀이하면서 부르던 이 구절을 혼자 읖조리고 있다. 죽었니 살았니, 죽었니 살았니, 죽었니 살았니....?
"난 살고 싶다"고 울부짖는 한 생명을 두고도 '파병은 파병대로'라 하니 살아있는 시체들의 공화국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어떤 희생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아예 추가 파병 자체를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기 때문이다."는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서 속내를 들킨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려본다.

고결하다는 생명, 양심, 인권과 평화는 현실과는 무관한 것이고, 현실은 세계최대깡패집단과의 동맹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뭘 모르는 것들이 촛불을 들고 저 난리라고 여기는 사람들, 명분이 밥 먹여 주냐고 냉소하는 사람들, 납치 당한 사람이야 안됐지만 국가를 경영하려면 뭐 어쩔 수 있느냐는 사람들을 해부하고 해부한다. 미국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형님이 저지른 살인, 뒷감당은 제가 하겠습니다'고 합창을 하고 있다. 흔히 듣던 조폭영화의 대사가 아니던가. '살인의 공모'라는 영화출연을 고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 정말 무섭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물을 까닭도 없다. 우리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그 시작도 과정도 결과도 너무나 뻔한 것이었다.
세계 최대의 테러리스트 국가인 미국이 대테러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싸우겠다는 논리적 모순이었다. 미국은 세계 2위의 석유를 품고 있는 이라크에 계속 눈독을 들여왔고 9・11은 울고 싶은 놈, 뺨때려준 일이었다. 미국은 계획하고 있던 일을 실행할 구실을 얻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도, 이라크가 9・11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도 그들의 각본에서는 사소한 트릭에 불과했다. 세계 최강의 미국을 맞아 이라크가 자위하고 저항할 방법은 테러밖에 없다는 것도 CIA가 친절하게 예보해주었다. 종이 위에 그려진 사람 위에 낙서를 하고 북북 찢어버리듯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으로 장난을 치고 논 것은 살인집단의 카니발이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지켜보지 않았던가.

작년 이라크 침공을 저지른 날 아침 태연한 얼굴로 유엔인권위원회에 나타난 미국은 "무력 사용이 이라크의 인권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주장했다. 과연 그랬나. 유엔인권위에 참가한 세계의 인권단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인류와 평화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개탄했다. "전쟁은 언제나 실패일 수밖에 없으며 유엔헌장을 벗어난 전쟁은 큰 실패다"고 경고했다. "무력의 사용은 특히 생명에 대한 권리를 포함하여 여타의 모든 인권을 침해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인권의 주장은 법의 지배, 보편적인 관할권, 비폭력, 인권의 보편성과 불가분성 및 상호의존성이라는 인권의 원칙에 기반한 정당하고 평화로운 방법에 의해서만 추구돼야 한다"는 세계 양심들의 권고는 미국에게만이 아니라 미국과 공모하는 우리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조차 부정하는 그네들이니, 그토록 맹신하는 미국이 자기 나라를 세울 때 한 얘기를 들여다봐라.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떠한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변혁 내지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미국 독립선언문)

살아있는 인간의 양심으로 우리는 다시 쓰고 싶다.
우리는 다음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이라크인과 한국인은 동등하게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이 권리를 유린한 미국과 그와 공모하려는 노무현 정권은 인민의 저항으로 심판 받아야 한다. 이라크 침공은 이미 범죄로 판명 났으며, 미 제국주의와 그 하수인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심판은 이라크인과 한국인, 세계 양심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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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목록
  • 손님.

    굉장히 중요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부안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다른 모든 싸움에서 정말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탁컨데, 글에서 언급하신 것들을 좀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충 감은 오지만 글만 보아선, 구체적인 사례를 떠오르기가 쉽지 않아서요...
    그리고 그렇게 드러난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서 필자 나름의 해답을 들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 고길섶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마 부안에서 시련을 겪겟죠...~~~^.^^)
    근디 여기 답변으로 자세하게 말씀드리기가 분량상 등 좀 어려움이 있겠습니다.
    부탁하신 것은 들어드릴 수 잇으나... 어떤 방법으로 해야할지....

  • 손님.

    혹시... 메일을 주실수 있으신가요?
    ..부안의 구체적인 사례와 그리고 그 문제들에 대한 고길섶님의 대안(싸움의 과정이 이러저러해야 대안사회를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다..라는.) 들을 들으면서 저의 고민을 심화시켰으면 좋겠습니다..
    lespaulmoth@yahoo.co.kr

  • 차주범

    길섶 형님.
    진보넷에서 형님의 글을 보니 너무 반갑군요.
    전 국운회 11기 차주법입니다.(기억하실지는 모르겠네요)
    부안 운동판 형님문화 비판하는 글읽고 형님 어쩌구 하는 제가 쑥스러워 집니다. 전 그저 반가워서..
    여기 뉴욕에서 진보세상 열어가는 일에 저두 쬐금은 힘 보태고 있습니다.
    건필하시고 건강하세요.

  • 청풍

    보도방이란 말이 무슨 말일까 궁금했는데, 그런 말이었군요.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의미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익히 알만한 자들이 스스럼없이 그런 단어를 남발하는 것이 화가나는 군요.

    그리고 '일반여성'에 대한 살해의혹...이말은 저도 신문기사를 접하면서 어처구니 없음을 느꼈던 부분입니다.

    일반여성과 일반여성이 아닌 구분이 있는지와, 일반여성도라는 놀라움을 표현하는 것은 연쇄살인보다 더 엽기에 가깝지 않을까요?

    살인과 범죄보다는 살인을 둘러싼 사회적관계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과 해석이 더 추악해 보일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리 경찰이 유능해지고, 범법자들이 교화된다고 해도 살인이라는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69

    보도방의 어원은 제 기억에, 80년대 후반경에 <도우미>란 말이 생겨 90년대부터 유행했고, 이를 다시 룸싸롱 등에서 정식으로 고용한 호스테스가 여러 관리비용 때문에 <보조도우미>란 정식고용이 아닌 호스테스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거기에 <방>이란 노래방, 찜질방...이런 것과 같은 의미일겁니다.
    또, 약어쓰기를 좋아하는 풍토상 <보조도우미의 방-제공업소>에서 <<보도방>이란 단어가 생겼다고 봅니다.

    참, 저를 오해 마세요.
    저도 이번 사건에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는 보도방 여자들의 인권에 대해 분노와 스품을 느끼고 있습니다.
    또, 장귀연씨 글에도 백프로 동감하고요.
    이글은 그냥 사소한 지적입니다. ...

  • 그냥

    정확한 어원 자체보다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알려지고 해석되는 방식에 주목해야겠죠.
    덧글 쓰신 분이 밝히신 어원이 맞더라도, 그런 식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 더 한 사회의 풍경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입니다.
    역시 저도 사소한 얘기였습니다.

  • 꿈만먹고

    부자와 몸파는 여성에 대한 적개심을 이야기하는 살인마의 이야기가 나름대로 설득력있게 들리는 이 사회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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