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민주화운동의 ‘삼두마차’ 중 한사람으로 불리었던 김근태 씨가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까지 지냈고,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분이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는 건,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중요하다. 여당은 ‘책임정치’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하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치적 배려’라고 깍아 내린다.
보건복지부장관은 장관 자리 중에서 한직(?)으로 불리운다. 그러다 보니 애초 3개 부처의 개각이 거론될 때부터 ‘통일부장관’ 자리를 둘러싼 하마평이 무성했지만 보건복지부장관 자리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제일 중요한 자리다. 국민의 삶과 생활을 직접적으로 관할하는 자리만큼 중요한 자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교육부든, 외교통상부든, 재정경제부든...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위치이겠지만 ‘먹고 사는’ 것을 관할하는 것만큼 중요한 역할이 어디 있으랴? 한마디로 보건복지부 장관 자리는 ‘몸의 정치’의 정점에 있는 자리이다.
민주개혁세력의 대부로 알려진 그가 보건복지부장관의 위치에 있으면서 민주성과 개혁성을 살려 원활하게 일을 처리할 지는 향후 그가 대권주자로서 ‘이미지’가 아닌 ‘능력과 철학’을 갖고 있는 지에 대해 중요한 판단기준을 제공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보건복지부 만큼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세력들이 각축하는 영역도 없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의약분업, 국민연금,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제도 등등....최근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쟁점을 총괄하는 부서가 보건복지부이다. 그만큼 이 영역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세력 및 국민의 관심과 이해는 항상 대척점에 서 있다.
그가 임명된 날. 인의협을 비롯한 보건의료단체 연대기구인 보건의료단체연합에서는 의료시장개방을 중단하고, 공공의료 강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주문하였다. 전임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 시절 추진되고 있었던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 및 경제자유구역을 매개로 한 외국의료기관의 국내 진출 등 상업적 의료의 강화 및 보건의료의 시장화를 당장 중단하라는 요구인 것이다. 이에 김근태 장관이 어떤 목소리로 답할 지 자못 궁금하다.
한편 의료공급자 단체인 병원협회와 의사협회에서는 ‘민주개혁’세력의 대부의 장관 입각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예상(?)과는 다르게,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분이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보건의료계의 산적한 문제를 ‘합리성’을 발휘하여 슬기롭게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내보인 것이다. 보건의료계 영역 모두에게서 환영은 아니지만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던 장관은 최근 그가 유일해 보인다.
앞으로 난마처럼 얽힌 보건의료계, 사회복지, 불평등,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조타수'가 될 수 있을지 일단은 지켜보겠다는 심정이 우선이긴 하다. 그러나 그가 취임사에서 ‘정책전문가의 충분한 의견수렴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정책을 펼치겠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그 앞에 놓인 과제는 간단치가 않다. 더군다나 현 노무현 정부가 밝힌 ‘참여복지’에 따르면 획기적인 사회통합정책을 펼 의지와 철학이 있는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장관 한사람의 ‘민주개혁’적 성격이 이를 변화시킬 수 있을 지는 대단히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건의료의 시장화, 상업적 의료의 강화를 위한 제반 시도가 이미 본 궤도에 올라오고 있는 실정에서 그가 이를 멈추게 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지, 그가 갖고 있는 ‘역사적 무게’를 갖고, 거대한 파도로 몰아치고 있는 세계화, 시장화의 대세를 거스를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어쩌면 ‘민주화운동 세대’의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여부에 따라 한 나라의 사회정책의 향방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인 바, 보건복지영역도 제반 세력간의 역관계에 따라 그 정책방향이 결정되는 만큼, 의료의 공공성․기본생활권 쟁취를 위한 민중진영의 투쟁은 새삼 강조하지 않더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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