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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없는 국제에이즈회의- 글로벌 빌리지에 갇힌 저항을 확산시키자!

환자가 아닌 제약회사, 정부관료, 과학자를 위한 국제에이즈회의

15회 국제에이즈회의의 프로그램을 설명해 놓은 안내서가 백과사전 2개 분량이었다. 그러나 1000달러(약120만원)을 내지못한 우리가 참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백과사전 부록처럼 곁들여진 손바닥만한 안내서 속에 소개되어 있었다. 1000달러를 내고 참석한 사람들은 화이자가 제공한 물을 마실 수 있고, 베링거 인겔하임에서 제공한 가방을 메고,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큅에서 제공한 이름표를 달고 회의장에 출입할 수 있으며, 길리어드가 제공한 셔틀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간다.

NGO와 환자들이 획득한 글로벌빌리지에는 마약사용자, 어린이, 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성적소수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부스가 차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가 회의장에 전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동안 NGO, 환자, 활동가들의 저항을 받아왔던 경험이 있는 국제에이즈회의는 글로벌빌리지를 허락한 대신 이들의 저항을 글로벌빌리지 안에 가둬놓았을 뿐이었다. 14일 전 아일랜드 대통령이자 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에 있었던 메리로빈슨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이 결여된 회의’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나누리+ 대표인 윤가브리엘은 이번 회의는 환자를 위한 공간은 없고 오로지 제약회사, 정부관료, 과학자들만의 공간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공간에서 나누리+는 우리의 요구를 어떻게 표출해야할지 난감했다. 제약회사, 각 국 정부관료, 과학자, 국제지도자들이 1000달러로 환자들과 활동가들의 출입 자체를 막은 채 자신들끼리 2000여개의 회의를 하는 그 곳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우리의 요구는 전달될 수 없었다. 그러나 출입구에는 이름표를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자증을 마련해 간 1인을 비롯해 3명만이 회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선 3인이 들어가서 내부의 분위기와 정보를 파악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ACT UP, Health GAP, 태국 HIV/AIDS 네트워크(TNP+), 태국 마약사용자 네트워크(TDN), 남아프리카 공화국 치료접근운동본부(TAC)등의 활동단체들이 저항과 행동을 조직화하고 있었다. 이들은 ACT UP이 제안한 매일 저녁 미팅을 하면서 하루 활동평가와 다음날 행동을 제안하고 결정했다. 나누리+는 둘째날부터 이들과 함께 했다. 각국에서 온 활동가들은 크게 제약회사, 부시의 에이즈 정책, 탁신총리의 마약사용자 탄압에 대해 비판하고 행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에이즈 예방, 퇴치의 명목으로 탄압받고 있는 주체들의 권리, 치료권과 인권으로부터 아예 배제되어있는 주체들의 권리에 대한 많은 토론들이 진행되었다.

Bush tells lies, Condoms save lives

활동가들은 GDP대비로 계산했을 때 미국이 글로벌 펀드에 2007년까지 최소 300억달러를 지원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시행정부는 올해 고작 2억달러를 냈을뿐이고, 미국이 제일 많이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부시는 안전한 성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순결을 통해서 에이즈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7월 12일, 회의 첫날 Health GAP, 태국 HIV/AIDS 네트워크(TNP+)등의 단체들은 전세계 부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G8국이 글로벌 펀드에 돈을 내야만 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회견에서 한 활동가는 ‘가장 위험한 성관계는 결혼이다. 가장 위험한 집단은 부부다’라고 말하면서 부시의 순결정책을 비판했다. 다른 한 활동가는 부시의 FTA는 특허권을 더욱 강화시키고 싼 카피약 생산을 막을 뿐 아니라 각국의 의약품 등록절차까지 미국제약회사를 위해 바꿀 것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의 한 활동가는 글로벌 펀드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제3세계 부채탕감이 동시에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제3세계 국가들이 글로벌 펀드에서 지원받은 돈을 빚을 갚는데 사용할 뿐 아니라 에이즈치료제를 사기 위해 부채가 더욱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저녁 UN 코피아난 사무총장은 B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테러와 관련해 수천억을 쓰는 반면 에이즈와 관련해서는 돈을 쓰지않는다. 진정한 리더쉽이 필요하다’며 부시의 에이즈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미 대통령 자문위원은 즉각 ‘미국은 글로벌 펀드에 가장 돈을 많이 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글로벌 펀드의 운영과 미래를 신뢰하지않고 다른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통령 직속기관인 ‘에이즈 구호를 위한 긴급계획’은 미국이 선별한 곳에 직접 돈을 지원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직속기관은 실제 150억달러를 지원했다. 그러나 미국의 선별대상의 조건은 낙태를 인정하지 않는곳, 콘돔이 아닌 순결을 통해 에이즈를 예방할 것, 카피약을 사용하는데 많은 제한을 두는 등 부시의 입맛에 맞는 까다로운 조건을 두고 있다.

14일, 부시의 에이즈정책 자문위원이자 에이즈 구호를 위한 긴급계획 최고책임자인 토바이어스 미국특사가 미국의 계획을 발표했다. 50-60명의 활동가들은 ‘부시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He's lying'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미국특사는 얼굴이 굳은 채 연단을 내려갔다. 사회자가 다시 발표를 제안하자 미국특사는 ’다른 사람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며 부시의 긴급계획을 옹호했다. 그는 글로벌펀드가 아닌 개별 파트너를 통해 효과적인 에이즈 예방전략을 세워야한다며 개별파트너로 종교단체를 언급했다. 활동가들은 미국특사의 발언이 끝날 때까지 연좌시위를 했고, 그의 발언에 야유를 보냈다. 그리고 ’Bush lies, we die'를 외치면서 글로벌빌리지까지 행진을 했다.

또한 13일 아침 프랑스 특사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메시지를 낭독하는 자리에서 ACT UP Pari활동가들이 시라크대통령에게 글로벌펀드에 더 많은 지원을 할 것과 싼 카피약 생산을 활성화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제약회사가 환자를 죽인다

14일 제약회사 길리아드의 부스는 시뻘건 물감으로 범벅이 되었다. 길리아드는 카메룬, 가나, 나이지리아, 캄보디아에서 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Tenofovil에 대한 임상시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성노동자들이 HIV에 감염이 되었다. 초국적제약사들이 제3세계를 임상시험장으로 삼은 것은 한 두번이 아니다. 14일 오전 10시 활동가와 성노동자들은 길리아드 부스로 몰려가서 길리아드의 반인권적인 임상시험을 비판하고 붉은 물감을 던졌다. 전시장의 절반을 8개의 거대제약사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부스는 하루에 한번씩 활동가와 환자의 비판과 저항을 받아야 했다.

애보트는 에이즈치료제 한가지에 대해 미국 에이즈환자에게 연간 4만달러(약 5천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필자가 회의장에서 만난 애보트 관계자는 ‘이번 국제회의에서 애보트가 환자들의 항의를 받을 것을 예상하고 왔다’고 말했다. 12일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부스 앞에서도 활동가들이 ‘모든 국가에 의약품을’이라고 외쳤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2년전 남아프리카에 있는 제약회사에게 에이즈치료제 특허권을 자발적으로 양도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아직까지 값싼 카피약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부스에 쳐져있는 붉은 리본을 끊고 ‘특허권을 방어하지마라, 탐욕=죽음’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었다.

한편 13일 오전에 회의장에서는 ‘지적재산권이 에이즈치료제 접근권에 장벽인가?’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첫 발언자로 나온 미 제약사 화이자의 CEO가 ‘지적재산권은 장벽이 아니다’라고 발언을 시작하자마자 50-60명의 활동가와 함께 우리는 ‘우리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외치면서 회의장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자 사회자가 발언권을 주었고, 태국의 한 활동가가 연단으로 올라가서 ‘제약회사가 환자를 죽이고 있다, 특허권을 파괴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날 Health GAP은 글로벌 빌리지에서 오후 4시에 ‘자유무역협정과 HIV/AIDS치료 그리고 접근권’이라는 토론회를 주최했다. 인도 민중건강행동(People Health Movement), 태국 국경없는 의사회, 태국 HIV/AIDS 네트워크(TNP+), 남아프리카공화국 치료접근운동본부(TAC), 한국 HIV/AIDS인권모임 나누리+등이 참석하여 토론을 하였다. FTA가 WTO와 달리 개별국가별로 지역별로 비밀리에 진행되기 때문에 개별국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FTA협상에 대한 정보와 상황을 수집해야한다, 남반구간의 연대가 필요하다, 어떻게 국제적인 조직화를 할 것인가, 국제보건기구와 UN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등의 문제의식이 제출되었다. 그리고 14일 오후에 역시 Health GAP이 회의장내에서 주최한 ‘치료접근권, 공중보건과 미태FTA'회의에 활동가들과 학자, 각국 정부관료들이 모여 토론을 벌였다.

마약사용자의 인권: 우리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태국마약사용자네트워크(TDN)은 글로벌빌리지에 부스를 마련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중단하라’는 플랜카드를 걸어놓았다. 탁신총리는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작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사용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사살하고, 마약사용자의 인권을 짓밟았다. 탁신총리는 15회 국제에이즈회의 개막식에서 또 약속을 했다. 그는 에이즈 확산저지를 위해 향후 5년동안 매년 100만달러를 지원하고, 최소 5만명의 에이즈환자에게 치료제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 탁신총리는 5만명의 환자에게 싼 에이즈치료제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거듭 반복해 왔으나 지키지않았고, 미태FTA를 협상하고 있다. 미태FTA협상을 중단하지않는 한 이번의 약속 또한 지켜지기 어렵다는 것을 태국민중들은 알고 있다. 태국민중들은 탁신총리의 약속이 국제적으로 공표된만큼 더 이상 번복되지 않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그리고 에이즈 예방과 확산저지라는 명목하에 마약사용자들이 사살당하는 일이 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국제적으로 폭로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철회하기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14일 약 2000명의 태국활동가와 환자, 민중들은 방콕 도심에서 시위를 조직화했다. 저녁 6시경 성노동자, 노인, 어린이, 마약사용자,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플랜카드와 피켓을 들고 실롬 거리를 행진했다. 우리도 태국민중들과 함께 유인물과 스티커를 나눠주며 행진했다.

"부시와 초국적 제약자본은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라!"
AIDS 감염인으로 사는 것, 인권 침해 차별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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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 국제에이즈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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