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鷄肋)'은 닭의 갈비뼈로 먹을 것은 없으나 그래도 버리기는 아깝다는 뜻에서, 무엇을 취해 보아도 이렇다 할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움을 나타내는 말이다. 불안정노동의 증가 및 이에 따른 사회적 빈곤의 확대와 불평등 심화, 실업의 증가에 따라 노동자 민중의 삶이 점점 고단해 지는 가운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 및 사회 일각에서 거론되거나 추진되고 있는 사회적 일자리, 사회협약, 그리고 각종 빈곤구제운동 등을 목도하면서 떠올려지는 말이다.
최근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기업의 투자가 부진하면서 지속적인 실업의 증가 특히 청년실업이 10%에 육박하는 현실을 보면서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정부 및 자본을 비롯하여,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를 비롯한 소위 NGO의 움직임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특히 지난 2월에는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 노사정 3주체의 합의로 체결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사회협약의 일 주체로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실업자단체를 비롯한 이해관계 세력이 책임있는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며 한 시민단체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분배구조개혁'을 위해 정부와 재계, 노동진영 뿐만 아니라 여야당, 시민단체까지 아우르는 '(가칭)경제사회협의회'구성을 촉구하고 나섰으며,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원내대표는 국회 대표 연설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안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8월까지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성격과 위상, 의제의 범위, 구성, 역할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이다. 그에 따라 민중운동진영도 이에 대하여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대중 정부시절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제, 변형시간근로제, 근로자파견법 등 노동시장유연화를 위한 전략을 관철시키고, 경제위기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시키기 위한 하나의 메카니즘으로 작동했던 경험이 작용하고 있다. 명칭과 형식, 포괄하는 의제가 어떤 식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결국 '노사정위원회'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전략과 세계화 전략을 관철시켜나가기 위한 '관리기제'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이러한 체제에 '사회적 교섭'이라는 명분 하에 참여해서는 안 되며,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점점 위계화, 분절화되고 있는 노동자 내부의 계급적 단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사회협약(체제)'은 이해당사자간에 이른바 '주고 받기'를 통해 공통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동의를 확보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과정보다는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투쟁과 쟁취' 그리고 정부와 자본의 입장에서는 '당근과 채찍'의 역사적 경험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 왔다. 이른바 '사회적 합의'의 외양을 띠었던 김영삼정부 시절의 '신노사관계위원회'나 그 당시 임단협투쟁 시마다 나왔던 '노 경총 합의', 1998년도의 '노사정위원회'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실상을 보면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희생과 양보만 강요하는 틀과 내용으로 점철되어 왔다. 최근 얘기되는 '사회협약'도 마찬가지로 '사회적 합의'라는 외양을 띨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의 경험과 다르지 않다면 혹자가 얘기하는 바대로 '사회적 살인체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IMF 이후 각종 '생계형 자살'이라고 부르는 많은 이들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과연 노동자 민중에게 '사회협약'을 통해 주어지는 이익이 과연 있을 것인가? 지금 사회적 빈곤의 탈출 및 삶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으로 논의되는 지점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그리고 '최저생계 및 임금보장'이다. 그런데 각각에 대하여 이미 나왔거나 수립 중에 있는 대책을 살펴보면 불안정노동자와 대다수 빈민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실망만을 안겨주고 있는 실정이다. 먼저 일자리 창출과 관련하여 '사회적 일자리'에 대해 알아보자. 정부의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은 그 일자리 수가 1만 개든 5만 개든 10만 개든 상관없이 그 내용은 사회서비스 분야의 사회적 일자리에 1인당 월 58-68만원 한도로 9-10개월간 지원한다는 것이 그 내용의 골자이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사회적 빈곤'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정부 스스로 앞장서겠다는 것이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내용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빈곤에서 탈출하기는커녕, 지속적으로 빈곤은 확대 심화될 뿐이다.
'비정규직 대책'관련해서도 '차별 철폐'를 공언하고 있지만 정부와 자본은 비정규직차별의 원인을 정규직 노동자에게 돌리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5월에 내놓은 '공공부문 비정규직대책'은 이미 노사가 합의한 사항을 발표했거나, 공공서비스 업무를 '핵심업무' '보조업무'등으로 나누면서 비정규직 고용을 '합리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노동운동진영에게서 받은 것은 냉소와 비판 뿐이었다. 최근 궤도연대파업과 지금도 진행되는 LG정유파업에서도 '고임금 정규직노동자의 파업은 안 된다'라면서 이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인력충원과 비정규직 철폐요구에 대해서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파업파괴'를 위한 직권중재 및 여론조작에 앞장섰다.
'최저생계(임금)보장'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올 최저임금심의위원회에서는 유례없는(?) 인상률로 최저임금을 57만원에서 64만원을 13.1% 인상하기로 합의를 하였다. 하지만 노동계의 노동자 평균임금 50%를 최저임금으로 법제화한다는 주장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으며, 합의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주40시간 노동제 실시를 빌미로 결정된 최저임금 64만원을 주40시간과 임금결정방식인 시급에 맞춰 59만원으로 정할 수 있다는 해석을 정부와 자본은 철면피처럼 내놓았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과연 '사회적협약기구'의 구성을 통해 과연 정부와 자본, 그리고 일부 시민단체,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교섭' 확보를 주장하고 있는 일부 노동운동 지도부는 노동자민중에게 과연 무엇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사회적 일자리가 당장 일자리가 없어서 힘든 처지에 있는 빈곤한 이들의 절박함이나 시급성에 비추어보면 '없는 것보다는 그마저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우선 드는 것처럼, '사회협약'도 어찌 보면 특정하게 하소연할 데가 없는 대다수 불안정노동자의 처지에서 볼 때 자신의 문제를 책임(?)있게 논의하는 사회적 기구의 틀이라도 생기는 것이 '썩은 동아줄' 잡는 심정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최저임금 수준에 놓여 있는 수백만의 여성 및 불안정 노동자에게 13.1%의 최저임금 인상은 '가뭄에 만난 단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서두에서 이를 '계륵'에 비유한 것이다. 삼국지를 보면 조조가 별로 얻을 것 없이 중요하지 않는 땅을 과감히 버리고 후퇴를 결정했듯이 우리에게는 이를 과감히 버리는 지혜가 필요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기본생활의 보장이나 안정적 일자리는 '주고받는' 거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어야 하는 협상물이 아니라,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리 의식'에 기반하여 정부에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행동과 실천을 통해 불안정노동자와 빈민들의 독립적인 주체를 형성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회적 합의와 교섭은 대다수 불안정노동자에게 유의미한 틀로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주간 민중복지'에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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