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재 여성학개론을 강의하러 가는 대학에는 삼사십대의 기혼학생들이 무척 많다. 지난 학기 개강 첫날에는 학생들에게 이 수업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어서 제출하라고 하였다. 그 중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 둘을 둔 아줌마 학생이 낸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선생님. 제 아이 학급 33명 중에서 부모가 이혼한 학생들이 8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왜 이렇게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있는지 그 이유도 궁금하고 더 이상의 '결손가정'이 늘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알고 싶네요."
일반인들은 완전하지 않고 결함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결손가정'이라는 말을 여전히 쓰고 있다. 이런 '결손가정'이라는 용어는 결혼하여 부모 중 한 사람이 결여되어 있는 가정을 가리키고 부모가 존재하고 있는 소위 '(정상)가족'과 대비되어 사용된다. 어쨌든, 부부의 이혼과 각종 사고로 인한 사별로 인하여 '결손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최근 한국사회는 가족의 변화와 관련된 높은 이혼율과 저출산을 국가적 위기로까지 인식하고 있다. 더 이상의 '결손가정'이 늘어나는 것을 국가적으로 방치할 수 없다는 빈약한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내년 1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건강가정기본법'이다.
이 법명이 말해주듯이 '건강가정'이라는 말은 필연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건강가정' 담론의 출현 배경이 이혼으로 인한 가족 해체의 급증과 출산율의 하락 등과 같은 소위 '가족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건강가정은 결혼한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의미한다. 건강가정기본법에 의하면, 우리사회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동성애 가족·독신가구·자녀없는 부부·한부모가족 등이 비건강가정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국가적 위기로서 대표적으로 재현되는 저출산과 높은 이혼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일단 1.17이라는 합계출산율은 임신이 가능한 여성(15세-49세) 1인당 출생아 수를 말한다. 우리는 주변에서 결혼한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자녀 둘을 낳는 것을 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저출산은 기혼여성들이 결혼해서 자녀를 너무 적게 낳는다는 문제라기보다는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여성들의 급증에서 기인한다.
결혼제도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려는 비(미)혼인구의 급증은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이혼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저출산과 높은 이혼율 뒤에는 공통적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이 높여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한 부부들의 결혼생활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나는 이혼하는 부부의 첫 번째 사유인 성격차이를 가사노동에 임하는 태도에서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 현재 기혼여성들의 공식적인 경제활동 참가율은 49.4%이지만 전체 기혼여성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부의 보고서(2002)에 의하면 여성의 일평균 근로시간수는 8시간이고 남성은 8시간 30분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통계청의 자료에 의한 맞벌이 부부의 하루 총 가사시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성은 3시간 45분 동안 가사노동을 하는 반면 남편은 1시간동안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기혼여성의 경우 하루에 11시간 45분 동안 노동(직장에서의 노동+가사노동)노동을 하고 기혼남성의 경우 하루에 9시간 30분 동안 노동을 하고 있다. 기혼여성은 남성에 비해 하루에 2시간 15분 더 일하고 주당(5일 기준) 11시간 15분 더 일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1년이면 한달 이상, 12년이면 1년 이상 더 일하는 셈이다. 이처럼 불공평한 이중노동에 혹사당하는 기혼여성노동자들이 부부관계와 결혼생활에서 무엇을 느낄지는 분명하다.
건강가정기본법은 가족과 관련한 변화들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최근 저출산과 높은 이혼율의 이면에 있는 결혼제도에 대한 거부는 가족관계의 비민주성과 폭력성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내년부터 시행될 건강가정기본법은 이러한 원인에 대한 진지한 분석없이 출산과 혼인을 국민의 의무로까지 부과하는 것(제8조)은 본법이 우려하고 있는 일명 '가족해체'를 더욱 가속화시키게 되지 않을까?
나는 본법에 의해 전국에 설치되는 건강가정육성종합센터서 혼례와 출산의 중요성에 대하여 교육하고 이혼하려는 가족에 건강가정지도사가 파견되어 이혼을 방해할 것을 상상하니 아찔하기까지 하다. 더 나아가 본법은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특정가족에만 건강성을 부여하여 한부모가족, 무자녀가족, 별거가족, 동거가족, 동성애가족, 독신가구 등을 건강하지 않은 것으로 병리화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방해하는 건강가정기본법에 반대하는 공대위가 9월경 출범 예정인데 많은 관심을 가져서 시대를 역행하는 흐름을 막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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