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날 밤이었습니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일본의 나카무라 유지로가 쓴 <공통감각론>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공통감각’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 이제사 이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샀습니다. 부안투쟁을 변명삼아 책읽기에 게을러진 나로서는 다시 책읽기에 몰두해보고자 산 책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나의 화두인 ‘부안투쟁’을 연구하는 핵심 키워드의 하나가 바로 ‘공통감각’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새벽에 책 읽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간혹) 낯선 사람들과의 채팅에 더 흥미를 느끼곤 하지만, 그날따라 나는 <공통감각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 내가 읽은 부분은 ‘시각의 신화’를 넘어서 ‘촉각의 회복’을 주장하고 감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논의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평소 나도 느끼던 바였지만, 보는 것과 아는 것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부안투쟁의 또다른 진실!─을 기억시키며, 저자는 근대 문명에서 독주하는 시각의 전제적 지배에 맞서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촉각의 회복을 요구해왔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시각은 속임수가 가능하지만 촉각은 차라리 더딤이 있을 뿐이겠지요. 저자는 잘 알려진 네덜란드 판화가 에셔의 작품들(<망루> <폭포> 등)을 설명하면서 인간의 시각적 착오를 이용한, ‘촉각화된’ 내면화로 분석합니다. 시각적 전제에 포획당한 촉각의 침묵이었을까요.
저자는 논의를 더 발전시킵니다. 우리가 보통 오감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 가장 널리 이용된다는 가쓰키 야스지의 감각 분류를 소개합니다. 그에 따르면, 감각은 특수감각(시각, 청각, 후각, 미각, 평형감각), 체성감각(촉각, 압각, 온각, 냉각, 통각, 운동감각), 그리고 내장감각(장기감각, 내장통각)으로 분류된답니다. 여기서 특수감각이란 뇌신경과 연결되는 감각들이며, 체성감각이란 척수신경과 연결되는 감각이며, 내장감각이란 내장신경과 연결되는 감각입니다. 감각의 통합은 시각에 있는 게 아니라 체성감각에 있으며, 이 체성감각은 촉각으로 대표된다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설명들을 요약했습니다만,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책읽기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날 새벽 이 책을 읽으면서, 촉각의 회복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읽으면서 우연하게도 최병수 작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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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시각, 내가 ‘공통감각론’에 빠져 있으면서 최 작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쓰디쓴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피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부안의 하서에 있는,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그의 작업장 겸 거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둠만이 있었습니다. 어둠은 그 누구와의 연락마저도 허하지 않는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어둠은 그의 피를 훔쳐가는 흡혈귀였습니다. 결국 그는 밤새 고통으로 지새다 아침이 밝아오고 나서야 지인을 통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었습니다. 나는 그 다음날 저녁 때서야 연락을 받고 그가 입원해 있는 정읍 아산병원에 찾아갔습니다. 그는 위독한 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와 짤막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중환자’에게 말을 자꾸 시킬 수 없었으나 나는 하루 전 새벽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최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읽은 ‘공통감각’에 대한 책, 시각의 지배에 대한 반발로서의 촉각의 회복, 그리고 바로 그 촉각의 회복에 <장산곶매>와 최근 작업중인 최 작가의 작품들이 해당되지 않나 하는 어렴풋한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의 판화 작품들, 설치미술들, 이것들이 바로 촉각의 회복이자 체성감각의 발견이지 않겠느냐 하는... 더구나 환경과 생명의 작업들이야말로 촉각운동이지 않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는... ‘중환자’는 나의 말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 촉각운동으로 해석해봤다는 나의 말에 놀라워하며 기꺼이 동감을 표해주었습니다. 그래 맞어, 하면서 자신의 판화 작업과정이 촉각운동임을 기억해내는 그는 ‘촉각’이라는 화두에 관심을 크게 가졌습니다. 그가 고통하던 시간에, 그 고통의 텔레파시로 촉각운동의 미학을 우리가 감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면, 좀 오버인가요.
그렇습니다. 나는 어쩌면 의식적으로 오버하는지도 모릅니다. 최 작가는 결국에는 위암 진단을 받았고 서울 한남동에 소재한 순천향대병원에서 엊그제 위의 70%를 덜어내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지 않고 뭡니까?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는 장승 작품을 완성해 보냈던 게 9월 1일의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또 그의 고향인 평택 투쟁을 위한 작품 준비를 해야 하는 데 말입니다. 나는 그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그리고 그 회복은 그 자신도 새로운 발견으로 동감하는, 바로 촉각운동의 회복으로 재생되기를 희망합니다. 70%가 덜어진 위는, 내장감각과 체성감각의 새로운 활성화, 그리고 촉각운동으로서 재생되기를 기원합니다. 이 나의 바램은 최 작가의 새로운 희망이리라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기꺼이 오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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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마주친 지 불과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3-4년 전 부안에 와서 새만금 살리기 운동의 현장 설치미술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한 그와, 2-3년 전 고향 부안에 내려온 내가 서로 알게 된 것은 핵폐기장 반대투쟁 과정에서였습니다. 작년 부안성당에서 장승 작업을 하던 그와 목례 정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서로 얽히기 시작했습니다. 느슨한 얽힘이었습니다. 나는 그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사회실천적 활동으로서의 작품 활동에 모든 의미를 두고 있는 매우 열정적인 작가입니다.
최근 그의 관심사는 반핵, 새만금, 반전평화는 물론이거니와 그가 ‘대량살상무기’라 칭하는 지구온난화 문제 등이며, 그것들을 이슈화하는데 아주 즉각적입니다. 그의 작품사진 이미지들은 부안21(www.buan21.com)에 바로 바로 올려집니다. 지난 번 김선일 씨가 살려달라는데 끝내 죽이고만 노무현정권에 비분하며 잇달은 작업들을 했습니다. 6월항쟁 때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새겼던 그가 이번에는 “살고싶다!”를 새겨 파병철회 집회장에 뿌렸습니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이제 그 자신이 ‘살고싶다!’ 합니다. 자신의 외침으로 돌아와버린 기이하고 기구한 연(緣).) 그는 최근 옷걸이 시리즈, ‘꿩 먹고 알 먹으면 멸종이다’ 시리즈에 몰두해왔으며, 또다른 이미지로 혹은 그것으로부터 착종해내려는 듯한 혹은 그것으로부터 암울하게 반전시키는, 1990년작 <장산곶매>를 연상케 하는, 무수한 쇠사슬에 묶이는 생명의 저항하는 비상 작품의 밑그림에 열중하던 차입니다.
그에 있어서 이러한 일련의 작가활동의 키워드는 ‘문명’입니다. 그는 지금 ‘문명’이라는 화두로 지구적 촉각운동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온 게 불과 얼마 되지 않고 그로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직접 들으면서 그를 알 수 있었지만, 그러나 나는 또한 그를 잘 모릅니다. 나는 또한 그를 온전히 알고 싶지도 않고 그러기에도 불가능합니다. 그를 온전히 알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는 작가이고 내가 문화비평가로서라기보다 어떤 관계의 지속을 희망하기 때문입니다. ‘보이고 알고’ 하는 것이 권력행사의 기제로 사용되는 그런 착취관계가 아니라, 마주치고 스치며 향내를 뿜어내는 소통과 접속 관계로서의 지속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자신마저도 그를 온전히 알 수 없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중환자’가 되어버린 그. 그 자신조차 들여다 볼 수 없었던 자신 몸뚱아리의 반란 음모. 사실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누가 자신을 온전히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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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최병수 작가는 휴머니즘을 거부하는 실천적 인간학자입니다. 휴머니즘은 시각의 지배와 관련이 있는 근대의 지배담론이고 그것을 거부하는 실천적 인간학은 촉각운동의 회복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어설피 듭니다. 최 작가는 지금 병원의 기계들과 합치되어 있는 인간-기계로서 재생되고 있습니다. ‘기계’라 하니 거부감이 생길 수 있으나, 나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용어를 빌어 사용합니다. 밀어내고 선택하고 배제하는 생성의 흐름으로서의 기계. 최 작가의 몸은 위 70%의 암세포들을 절단해내고 타자의 혈액과 제조된 치료제들을 최선적으로 투여하지 않을 수 없는 고장난 기계이자 재생되어가는 기계입니다. 놀라지 마시라. 1857년에 혜강 최한기는 <기학(氣學)>에서 이미 이와 유사한 개념의 ‘기계’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물론 그는 ‘器械’(氣의 의미를 갖는 器)로 표기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들뢰즈/가타리적 의미의 ‘機械’라 할 수 있습니다. 최한기의 말을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사람의 심기는 곧바로 천기(天氣)와 통한다. 즉 코의 호흡이 일신을 풀무질함에 따라 천기를 몸 구석구석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 몸의 오장육부 및 신체, 피부는 하나의 기계(器械)인 셈이다. 그런데 천기가 이 기계에 들락거릴 때 기계에 따라서 그 고동(鼓動)이 다르다는 것을 수화의 뭇 기계에서 증험할 수 있으며, 여기서 천지도 그 자체가 기계임을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최한기의 <기학>이라는 책을, 수술 다음날 최병수 작가를 문안한 후 돌아오는 길에 영등포역 서점에서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 이 대목을 읽었으며, 그리고 우연의 마주침들, 역사적 마주침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그가 내게 요청한 게 하나 있습니다. ‘무수한 쇠사슬에 묶이는 생명의 저항하는 비상’ 작품의 밑그림에 대해 글을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밑그림에서 뭇 권력들과 저항집단에 내재할 수 있는 권력화의 징후들을 거부하는, 새로운 실천적 인간학 즉 소수자 되기로서의 작가의 욕망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나와 통한 지점입니다. 나는 이제 그가 쾌유되기를 기원하면서 그 글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그에게 더 많은 상상의 기계를 보태주는 것이 그가 회복시켜야 할 촉각운동을 위한 연대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곧 그의 쾌유이자 촉각운동의 쾌유라 믿으면서.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함께 최 병수 작가의 쾌유를 기원합시다.
(200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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