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강한' 것, '잘난' 것에 대한 찬사는 과연 당연한 것일까. 그 시빗거리로 삼고 싶은 것이 우리 주변에 널린 현수막이다.
'최고가 되십시오', '최고를 모십니다' 식의 문구에 주눅든 지 오래다. 각종 사설학원들이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학생들의 이름을 현수막에 빼곡히 박아 상품광고처럼 내거는 것도 그야말로 '관행'이 되었다. 덩달아 이즈음 대학가에는 향우회, 동아리 등의 이름으로 각종 국가고시에 합격한 선배들의 이름을 현수막에 새겨 넣고 '감축드리옵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누군가가 고위공직자가 돼도 어김없이 동문회나 출신학교의 이름으로 감축 현수막이 붙는다. '강한' 것, '잘난' 것을 두고 벌어지는 이런 호들갑에는 단순한 축하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칭찬 받아야 한다는 강박은 그 외의 것들은 무시 받고 조롱받아도 문제될 것 없다는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능력껏' 권리를 누리는 것이지, 능력 없으면 잃을 것 밖에 없다는 무시무시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춤추고 있는 것이다.
인권의 등장기에 부르주아들은 '능력껏'의 사회를 외쳤다. 능력껏 고위관리가 되고 돈을 벌어라. 그러면 인권을 누릴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무권리 상태라 할지라도 뭐라 할 것 없다. '너와 나는 똑같이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이 아니냐. 그 다음 결과는 오로지 무능한 네 탓' 이라는 생각이 재산의 불평등 때문에 고통받는 다수의 인권 박탈을 합리화했다. 통제되지 않는 재산의 추구는 아름다움으로, 다수 사람들의 고통은 추한 것으로 여겨졌다.
저임금·장시간 노동, 불합리한 노동계약, 결사와 단체행동에 대한 감시와 처벌, 굶주림과 질병에 대한 냉소적인 묵인이 뒤따랐다. 그런 건 인권이 아니라며 저항하는 사람들을 때리고 가두고 죽이는 것도 강한 이들의 법에 따른 것이었다. 권력과 부를 만인의 것으로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경제적 질서에 대한 요구는 어리석은 자들의 꿈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그런 어리석음을 고집한 사람들은 인간다움에 대한 해석을 달리했기에 고전적 인권에 흠집을 냈고, 인권을 재건축했다.
오늘, 800만의 빈곤을 헤아리고, 취업 '전선', 수능 '전선'의 살벌한 전투가 계속되고, 이라크인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라도 잘 살 수만 있다면 그것도 자기보존의 '능력'이라고 강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인권을 찾고 있는 것인가. 입발림뿐인 인권인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인권인가.
'능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 자체도 다르다. 어떤 능력은 일방적으로 찬사 받고 어떤 능력은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어떤 능력을 선택하여 찬사를 보내느냐는 우리의 선택사항이다. 사회에 대한 기여가 돈벌이만으로 확인될 수 있고 그것을 보여주는 능력만이 능력이라고 믿으면 우리는 약육강식의 먹이로 살아갈 뿐이다. 능력의 차이를 포함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북돋아줘야 할 것으로 여기며 기본적인 인간의 필요를 보장하려 할 때 인권은 시작된다. 약육강식 속에서 멋대로 경쟁하다 살아남고 죽으라는 식의 자유와 평등을 추종할 것인지,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데 필수적인 권리들을 보장하고,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자유와 평등을 옹호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오늘, 부시의 재선으로 '강한' 미국에 대한 그들만의 열망과 그 반대편에서 터져 나오는 한숨이 교차하고 있다. '강한 것'은 과연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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