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절친한 분의 세 살 짜리 막내아들은 '신밧드의 모험' 비디오를 무지무지 좋아한다. 그야말로 '보고 또 보고'이다. 원작과는 엄청나게 다른 내용의 비디오지만 신밧드의 모험을 볼 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인 어린아이의 맑게 구르는 웃음소리를 들려주기에 덩달아 나도 좋다. 또한 바그다드의 상인인 신밧드를 따라 맘껏 여행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고래가 섬인 줄 알고 발을 디뎠다가 바다로 내동댕이쳐지고, 신밧드의 목을 두 발로 졸라 타고 앉아 노예처럼 부리는 기괴한 노인에게 포도주를 먹여서 탈출하고, 해골로 가득찬 죽음의 골짜기에 떨어져서도 살아 나오는 신밧드의 모험이 채워주었던 어린 시절 꿈속의 여행은 달콤하기만 했다.
그러나 오늘 바그다드의 상인은 없다. 신밧드의 모험에 나오는 어떤 괴물보다도 무서운 폭탄비의 세례와 점령군의 고문이 대신 자리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고통스러운 소리인 어린 아이들의 울음과 비명이 가득 차 있다. 자식 잃은, 부모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쥐어뜯는 통곡이 폭격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고 있다.
나는 오늘 어린 시절 꿈속을 벗어나 진짜 현실의 바그다드가 보이는 민중전범재판으로 간다. 거기에는 이라크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비극과 그에 대한 폭로가 기다리고 있다.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역사적 심판대가 마련돼 있다.
작년에 이라크 침공 발발 이후부터 세계 각국의 인권 운동가들과 단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요구가 '전범민중재판'이다. 마음 같아서야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웠으면 좋겠지만 세계의 최강자는 국제법을 무시해도 좋다는 미국의 오만 때문에 지금은 가능치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전쟁범죄자들이 역사의 심판대에서까지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지지와 동참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자 전쟁범죄 행위이니까 이를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자는 것이 전범민중법정을 개최하는 취지이다.
베를린, 자카르타, 파리, 칸쿤, 브뤼셀, 이스탄불 등에서 열린 각종 반전회의에서 연달아 논의됐고, 그 원칙과 방법이 결정됐다. 국제전범민중재판운동은 이라크 전쟁 기간 동안에 미영 연합군과 그 동맹군들에 의해 저질러진 모든 반인도적, 반평화적인 전쟁범죄 행위들의 진실을 폭로하고 널리 알리려 한다. 그리고 명백한 범죄행위와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국제기구들에 압력을 가해서 이후 전쟁범죄자들을 국제법정에 세울 것을 목표하고 있다. 일방적인 침략행위를 단죄해야 인류가 미래에 이와 같은 불행한 역사를 또다시 겪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전범민중재판운동'은 우리 아이들의 맑게 구르는 웃음소리가 다른 아이들의 피눈물 속에서 생겨날 수는 없다는 상식에 근거한 당연한 행동이다. 현재,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벨기에, 미국, 덴마크, 독일, 이탈리아, 영국, 터키, 프랑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서 국제전범민중재판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그 결과들을 한데 모아 내년 3월 20일(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지 만 2년이 되는 날)에 터키 이스탄불에서 최종적인 민중법정이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는 오늘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7시에 연세대에서, 마지막으로 토요일에는 경희대학교 크라운관에서 오후 3시에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 민중재판이 열린다. 이 재판은 12월 7일 현재 3,413명의 기소인들이 고발한 기소이유를 근거로, 내한한 2명의 이라크인을 비롯해서 이라크 현지에서 다양한 평화활동을 벌여왔던 이들을 증인으로 해서 열린다.
이라크 침략전쟁과 한국정부의 책임, 이라크에서의 전쟁범죄, 파병으로 인한 한국민의 권리 침해 등에 대한 공판이 있고 나서 토요일에 선고공판이 있다. 이 재판이 있기까지 단식을 하면서, 노래로, 글로, 온 몸으로 전국을 도는 평화순례가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기소인 대회와 이라크전쟁피해자 증언대회가 있었다.
이 재판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재판과 다르다. '재판해 주십시오', '선처해 주십시오'라는 수동적 입장이 아니라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우리는 전쟁범죄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인류를 향한 양심으로 우리가 직접 하는 재판이다. 전쟁을 반대하는 여러분의 당당한 발걸음을 이 법정에 들여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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