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재] 스크린쿼터문화연대

FTA가 문화 분야에 미칠 영향과 문화협약

스크린쿼터는 한미 통상갈등의 상징이자 시장개방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

참여정부의 개방형 통상국가 구상의 핵심은 아마도 FTA의 급속한 확대인 듯싶다. 한-칠레 FTA 발효, 한-싱가포르 FTA 체결에 이어 숱한 나라들과 FTA를 협상중이거나 준비 중에 있다. 지난 2월 3일 서울에서는 제1차 한미 FTA 사전실무점검협의가 열렸다. 본 협상의 시작은 아니지만 한미 FTA의 공식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미국은 스크린쿼터, 농산물, 지적재산권 등 양국 주요 통상현안의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협상의 전제조건을 분명히 했다. 이로써 문화분야가 한미 FTA의 중심의제 중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해졌다. FTA는 체결 상대국이 어느 나라냐에 따라 그 쟁점이 크게 달라진다. 이 협정이 문화분야에 미칠 파장은 아무래도 그 상대가 미국일 때 가장 클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미국은 FTA를 급속히 확대하면서, 대외 통상전략의 핵심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이 체결한 FTA의 내용을 살펴보면, 문화분야에 있어서 미국의 FTA 전략은 좀 더 특별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8년까지만 해도 문화상품에 대한 미국의 공식입장은 문화상품이 다른 상품과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에 무역협정에서 다른 일반상품과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자국문화의 보호, 육성을 위한 각국의 문화정책이 비관세장벽으로 규정되어 미국의 폐지 위협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미국이 최근 체결한 FTA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기존 전략이 수정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새로운 협상전략이 지니는 주요 특징은 네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무역협정의 양허표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네거티브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포지티브 방식은 협정 대상국이 양허표에 기록한 분야에 대해서만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방식인데 반해, 네거티브 방식은 모든 분야에 대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되, 양허표에 유보 및 예외사항으로 기재한 분야만 의무 이행에서 제외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특징은 보조금에 대해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최근의 FTA는 모두, 정부가 지원하는 융자, 보증, 보험을 비롯하여 정당이 지원하는 보조금 및 지원은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의 의무에서 제외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 번째는 전통적 기술과 연관된 시청각산업 분야에서 무역장벽의 철폐를 주장했던 기존의 요구를 포기한 것이다. 미국은 최근 체결한 FTA에서 협정상대국들이 유지하고 있던 문화분야의 기존정책을 부분적으로 용인하고 있다.

네 번째 특징은 미국 전략의 핵심으로 디지털 네트워크를 문화적 보호주의에서 완전히 분리한 것이다. 미국이 최근 체결한 FTA는 전자상거래를 하나의 장에서 다루고 있다. 이 장에서 전자수단을 이용한 서비스의 공급은 시장접근,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의무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고, 디지털상품은 관세부가 금지,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의무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 문화상품 및 서비스, 그 중에서도 시청각상품 및 서비스는 모두 디지털화가 가능하고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이 전자상거래에 대해 철저히 자유무역의 의무를 따르도록 한 것은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환경에서 문화적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는 컨텐츠를 단지 전자수단에 의해 제공된다는 이유로 문화적 보호주의에서 완전히 분리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상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보조금이나 기존의 문화정책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전자상거래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유화 의무를 부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환경에서 기존의 정책들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미국의 양보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또 미국은 네거티브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포괄적인 '문화적 예외(문화는 무역협정의 논의대상에서 배제한다는 원칙)'를 막는데 성공했다. 문화분야의 다양한 유보조항이 설정됐지만 문화산업 전체를 협정 대상에서 배제시킨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양상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한국과의 FTA 본협상의 전제조건 중 하나로 스크린쿼터의 해결을 제시하였다. 스크린쿼터에 대한 미국의 인식이 어떠한 지는 최근의 미 대사 발언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대사는 지난 1월 28일 "지적재산권 문제, 자동차 시장 개방 등 양국 통상현안 중 가장 시급한 것은 스크린쿼터로서 이는 상징적인 문제"라고 언급했다.

영화분야의 작은 정책에 불과한 스크린쿼터가 한미 통상갈등의 상징이자, 한국의 시장개방 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압력은 여러 나라들과 체결한 최근의 FTA에서 기존의 문화정책을 어느 정도 용인했던 미국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만큼 스크린쿼터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를 넘어서 소리 없는 문화전쟁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8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스크린쿼터 투쟁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구를 가장 충실히 따르며 문화시장 개방에 앞장서는 나라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의 여러 무역협상에서 대부분의 문화시장을 개방하였다. 신문 정간물을 제외한 인쇄 출판, 사진, 광고, 영화 및 비디오 제작 배급, 음반서비스를 이미 개방하고 이제 남은 것은 영화상영의 스크린쿼터와 방송 정도이다.

일례로 영화 제작, 배급을 개방한 나라가 140개 WTO 회원국 중 24개국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의 개방 수준이 얼마나 높은 지를 보여준다(2002년 기준). 이제 문화시장 개방의 최대 쟁점분야는 방송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방송분야의 다양한 정책을 통해 국내제작 프로그램의 편성을 제도화하고 외국자본의 진입을 규제하고 있다. 현행 방송법은 일정 비율 이상 국내 제작물의 편성을 강제하는 방송쿼터,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에 대하여 국내 제작물의 의무편성을 규정한 방송컨텐츠쿼터를 두고 있다. 또, 외국자본의 방송참여 역시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문제는 이상의 정책들을 미국이 계속해서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매년 발간되는 미무역대표부(USTR)의 무역장벽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서비스분야의 대표적 무역장벽으로 스크린쿼터와 함께 방송쿼터와 컨텐츠 쿼터, 외국방송의 재송신 채널 수 제한 등이 반복해서 언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섣부른 개방의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는 다른 나라의 선례들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뉴질랜드는 1994년 GATS 협상에서 방송분야를 전면 개방하면서 각종 방송쿼터가 폐지되고, 주요 방송사들이 외국자본에 흡수되는 결과를 맞았다. 이에 문화적 위기를 느껴 방송쿼터와 대중음악 쿼터를 도입하려 했으나 WTO의 규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의 FTA 추진과정을 주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FTA의 파고를 넘을 대안은 없는 것일까? 국제사회는 이제 문화적 예외를 넘어 '문화협약'을 준비하고 있다.

문화와 무역은 1920년대 이래로 끊임없이 갈등을 반복해왔다. 크고 작은 갈등과 사건이 이어져오다가 미국의 문화패권에 맞서 자국의 문화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나라들은 문화적 예외를 무역협정의 원칙으로 견지하게 된다. 1989년 캐나다는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문화적 예외를 명문화하였다. 그러나 이 규정은 1조에서 문화산업의 예외를 명시해 놓고, 2조에서 이에 상응하는 보복조치를 규정하고 있어 명백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규정은 1992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그대로 이어지는데, 실제로 캐나다의 문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효력도 가지지 못했다. 캐나다-미국 FTA의 문화적 예외 조항은 각각에게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전례로 작용하게 된다. 캐나다는 이후 체결하는 이스라엘, 칠레, 코스타리카와의 FTA, 태국과의 BIT에서 문화분야를 협정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하였다. 반면 미국은 이후 체결하는 무역협정에서 상대국이 문화분야를 제외하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전략을 강구하면서, 문화적 예외가 관철되지 않은 무역협정의 전례들을 확대해가고 있다.

캐나다를 제외하고서도 문화분야를 제외한 FTA의 사례는 더 찾아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은 칠레, 멕시코와 체결한 FTA에서 문화적 예외를 관철시켰고, 호주는 싱가포르와 체결한 FTA에서 문화분야를 제외하였다. 그러나 문화적 예외는 무역협정에 대한 개별국가 차원의 소극적 대응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협상력이 있는 몇몇 선진국만이 고립, 분산되어 앙상한 문화적 예외의 원칙을 지키고 있는 결과를 맞을 것이다. 문화적 예외는 무역협정에 대한 대안이라기보다는 한시적 수단의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사회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러한 노력의 구체적 성과물이 바로 문화협약이다. 문화협약의 주된 목적은 극단적인 독점과 문화 획일화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무역협정의 교역 질서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교류의 질서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화협약은 다양한 인류문화가 발전할 수 있도록 각국의 문화정책을 국제법으로 보장하고, 서로의 문화를 침해하지 않는 문화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문화협약(정식명칭: 문화컨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협약)은 2004년 7월 유네스코가 발표한 초안에 대해 유네스코 회원국과 문화 NGO 단체, WTO 등의 관련 정부간 기구의 의견이 제출되어 수정안 작성 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만간 수정안이 완성되어 회원국에 배포될 예정이며, 최종 완성된 수정안은 올 10월에 열릴 제3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표결에 붙여져 2/3이상 동의를 얻게 되면 문화협약은 비로소 공식 체결된다. 협약 체결이 현실화되자 미국은 2003년, 유네스코 탈퇴 19년만에 재가입을 선언하였다. 유네스코로 복귀한 미국은 협약의 핵심을 들어낸 수정안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입장이 불분명한 국가들을 회유하고, 올 해 안에 협약이 발효되지 못하도록 지연술을 쓰고 있어 협약 체결에 큰 장애로 등장하고 있다.

문화협약은 각국 정부와 문화예술인, 문화 NGO가 서로 보조를 맞춰가며 자유무역질서를 대체할 구체적인 대안 질서를 조직해 간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물론 이 운동도 다양한 시각에서 평가될 수 있고, 부인할 수 없는 한계도 존재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각국 정부는 배타적으로 자국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이 운동의 목적을 한정지으려 할 것이다. 바로 이들에 의해 다른 분야의 사유화, 상품화는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긴 하지만 문화 NGO의 주류는 대안 세계화보다는 세계화의 재조정이라는 용어를 더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품, 농산물에 이어 서비스, 지적재산으로 무한히 확장해 나가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오만한 흐름 앞에 한 분야만 예외일 수 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다. 문화다양성 운동에 대해, 자기 분야만 제외시키려는 노력에 불과하다는 소극적 해석보다는 예외가 있을 수 있고, 나아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적극적 해석으로 접근해야할 필요가 있다. 예외를 보편적 규범으로 조직해 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덧붙이는 말

- 최영재 님은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차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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