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위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인 부안 줄포를 떠난 게 1979년 9월 중3 때였다. 전라북도 도내의 공부좀 한다는 애들이 몰리는 전주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공부좀 하는 척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서울로 전학한 나는 완전히 학습무장을 해제했다. 지금 생각하면 학습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의 시간이기도 했다.
줄포 촌구석에서 전주로 가기 위해서는 신경 써서 공부를 해야 했지만 서울에서의 고등학교 진학시험은 완전히 식은 죽 먹기였다. 밤새 완행열차 타고 상경하면서 시꺼먼 촌놈이 서울서 어케 따라잡나 걱정이 참 컸었는데, 막상 서울이라는 곳의 한 중학교에 가보니 나는 속으로 웃겨 죽을 뻔 했다. 촌동네 학교보다 진도가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었고 미술시간같은 ‘심성 착한 여선생’이 수업을 할 때는 앞줄 몇 명만 데리고 수업을 하고 나머지 애들은 의자 타고 날라다니는 등 전혀 통제가 안 되는 개판이었다. 내가 서울에 전학했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목하의 상황은 당시 내 눈으로만 보인 좁은 시야의 한 단편에 불과했을 게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오늘 서울의 강남은 계급모순의 효과 속에서 교육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이것은 내가 서울에서도 촌구석 학교로 전학했을 당시부터 서울의 명문고들이 강남지역으로 이전하는 등 이미 희미하게 준비되지 않았는가.
강남과 비강남으로 정확히 선그어질 오늘을 위해 부익부빈익빈의 교육모순이 희미하게 준비되던 1979년의 가을에 나는 서울 빈익빈의 한 섬에서 낄낄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으니, 그 낄낄거리던 웃음을 제공해준 주제는 “이게 뭔놈의 ‘청운의 꿈’이런가”였던 것이다. 우리 집이 부자여서 서울로 전학한 것도 아닌지라 당시 중학교 때 배우던 ‘유유상종’이라는 한자성어가 재현하는 현실도 잘 깨닫지 못하였으며, 그 유유상종의 바깥을 모르고 내 안의 유유상종을 비웃었으니 ‘청운의 꿈’만 알았지 ‘강남의 꿈’을 상상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아니었던가. 하기사 ‘강남의 꿈’을 상상했던들 우울증에나 빠졌을 게다.
‘청운의 꿈’을 안고 어린 시절 서울로 떠났던 나는 금의환향은커녕 백수환향을 하였고, 내가 서울로 우회하였던 인생의 청춘기를 지나 고향으로 와보니 이곳의 촌부들도 이미 ‘강남의 꿈’들을 자식들에게 복제시키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울의 강남하고야 비교도 할 수 없겠으나 빈익빈의 소외된 섬에서도 촌부들은 이곳에 교육모순의 은유로서의 강남을 만들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고등학교 정도나 전주, 익산, 군산 등지의 도회지로 진학하였고 초등학교는 물론이거니와 중학교는 지역 내에 소재한 학교에 댕기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면 지역에 중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촌부들은 10-30km 정도 떨어진 부안읍내의 중학교에 진학시키는 문제를 고민한다. 그게 다가 아니다. 읍내와 면 지역을 오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다보면 읍내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해들을 더러 볼 수 있다. 교육 경쟁력을 위해 아예 초등학교 때부터 읍내에서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깜짝 놀랐던 것은 초등학교 한 교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어떤 촌부의 이야기. 그는 면지역에서 생활하고 있음에도 아해는 부안읍내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단다. 그 이유인즉슨 이렇단다. 그 촌부가 부안읍내에서 사업을 하나 할려고 해도 부안읍내의 초등학교 출신 동문이 아니다보니 학연의 인맥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단다.
작은 도시에서도 학연이 움직인다는 점이 놀라운 일이지만, 충격적인 것은 자기 아해가 나중에 커서 부안읍내에서 사업이라도 하게 되면 꿀리지 않도록 다시 말해 학연을 쌓아놓도록 부안읍내의 초등학교에 보낸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훗날’을 우려한 것이다. 제대로 되는 교육 효과로서의 훗날이 아니라 학연에 기대려는 인맥 효과로서의 훗날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씁쓸하게 야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의 성공을 기대하는 부모가 겨우 부안에서 사업할 일을 우려하나, 큰물에서 놀도록 해야지. 이것은 더 이상 ‘청운의 꿈’도 아니고, 어쩌면 한국사회의 교육병폐를 전국화시키는 ‘강남의 꿈’의 복제물이 아닌가.
지나친 비약일까. 상아탑을 ‘우골탑’이라 불려왔듯이 소팔아 자식 교육시켜왔던 촌부들의 계급재생산에 대한 반기는 그나마 ‘순수한’ 내리사랑으로 ‘청운의 꿈’을 설계하도록 한듯 하나 오늘의 ‘강남의 꿈’은 부조리한 한국사회 병폐의 그물망을 좇도록 하는 ‘불순한’ 욕망의 사다리가 아닌가.
그리고 그것은 촌부에 그치지 않는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에서도 불순한 욕망의 사다리가 거미줄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언어로 뻗쳐나온다. 물론 일부의 촌부가 그렇듯이 일부의 교사가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경쟁주의 사회 시스템에서 최소한의 생존적 탈락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아해를 둔 촌부나 그 아해를 가르치는 교사나 마찬가지 마음일 터이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일지라도 교사가 공부 못하는 아해더러 “너 공부 못하면 나중에 결혼도 못해.”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우문이요, 지배이데올로기에 갇힌 발언임은 차치하고, 어린 아해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이다. 이 이야기는 부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례다. 교사가 그렇게 막말하자 초딩아해는 이렇게 말했단다. “베트남 여자랑 결혼하면 돼죠, 뭐.” 우문현답이라고 해야되나, 어쨌거나 그말을 전해들은 나는 머리가 띵하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베트남 여자랑 결혼하겠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그 아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사회적 생존법으로서의 최후의 돌파구였으리라. 그 아해는 한국사회의 사회적 모순 혹은 교육모순을 일찌감치 깨달아버리고서는, 따라서 자신의 미래의 불안한 위상을 이미 파악해버리고서는 도피처까지 마련해놓았던 걸까. 이미 그 아해는 ‘총명하게도’ 계급재생산의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욕망의 사다리 타기 놀이를 할 수 없음을, 이미 본능적으로 감지해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 아해는 ‘베트남 여자’를 걸고 넘어지려는가. 베트남 여자면 아무나 취해도 좋단 말인가. 자신에게 미래적으로 다가올, 혹은 지금 당장의 현실일, ‘하층민’의 ‘하류인생’으로서 그 아해는 베트남 여성을 비하하는 인종주의적 문화폭력을 배우면서 계급재생산의 한 주체로 떳떳이 발언하고 있다.
부안 곳곳의 도로가에 마을 담벼락에 휘날리는, 장가도 못간 ‘못난 촌부’들을 사냥하는, “베트남 처녀랑 결혼하세요” 현수막을 보고 다니면서, 그 아해는 가난하고 공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위로하고 있었을 게다. 아니면 자신을 조롱하는 교사를 엿 먹이려 그렇게 발언했든가.
‘강남의 꿈’은커녕 ‘청운의 꿈’도 못 꾸는 숱한 농촌 아해들에게 ‘최후의 희망’이라도 안겨주기 위해 오늘도 논길 마을길에 “베트남 처녀랑 결혼하세요” 현수막이 휘날리는가. ‘청운의 꿈’에 실패하고 ‘강남의 꿈’을 증오하는 백수환향자로서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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