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를 했다. 꼭 정신적 공황과 육체적 피로가 겹치는 이런 시기에 몸을 혹사(?)하는 종주를 하는 것은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서다.(물론 몸도 살찐다. 심한 듯한 운동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자고, 아주 드물게 삼시 세끼와 간식까지 챙겨 먹게 되기 때문이다. ㅠㅠ)
이번에는 노동절 집회에서의 ‘반일투쟁으로의 남북노동자 대동단결’과 한국노총 위원장의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 민주노총의 ‘세상을 바꾸는 투쟁 D-365일’에 연타석으로 얻어맞고 휑~ 해진 가슴과 공황상태에 빠진 머릿속을 채우는 입산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가 왜 산을 가는지?’와 ‘왜 산에 다녀오면 정신적 공황과 육체적 피로에서 회복되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이어졌다. 머릿속을 스치는 단어는 나눔과 평등이란 평범한듯 하면서도 어려운 단어였다.
지리산에서의 2박 3일은 사람들과의 나눔의 시간이다. 무겁게 짊어지고 힘들게 산행을 하건만 쌀이 부족하면 쌀을 나눠주고, 술이 부족하면 술을 나눠주고, 가끔 운이 좋으면 삼겹살을 얻어 먹게도 되고, 커피도 나눠주고, 숟가락 젓가락도 나눠주고, 담배도 나눠 주고, 짐을 들어주기도 한다. 힘들어 하는 동료가 있으면 다독 거려가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오이 하나를 밝은 웃음과 함께 건내기도 한다. 자신이 가지고 왔건만 진정 ‘내 것’은 없다.
산 아래에서는 사장이고, 노동자고, 지식인이고, 농민일지 모르지만 산에서는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인지 돈은 얼마나 잘 버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물론 레저 산업이 발달하면서 좋은 옷과 좋은 장비가 있지만 좋은 옷과 장비가 없다고 해서 깔아 뭉개지 않는다. 좋은 장비가 없더라도 젊은 사람이면 젊은 사람대로 그때의 낭만과 패기로, 나이가 든 사람이면 나이든 사람대로의 연륜과 경험으로 생각한다.
일행 중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앞에서 이끌어 주고, 뒤에서 밀어준다. 경사가 급하고 위험한데가 있으면 손도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속도가 처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속도에 맞춰가려 하고, 누가 나를 앞질러 간다고 해서 기분 나빠 하지 않으며 기꺼이 양보하고 오히려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인사를 건낸다. 다리나 무릎이 아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주물러주고 붕대도 매준다. 빨리 오르거나 내려가기 위한 경쟁도 없다.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과 필요가 있고 옆길로 새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을 뿐 나머지는 나눠주는 것이고 함께하는 것일 뿐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이란 이란 말을 찾을 필요도 없고, 찾을 수도 없다. 그저 조금 부족한듯 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나눈다. 힘들지만 옆에 있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면서 꾸준히 땅을 꼭꼭 밟아가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면서 주변의 것에 눈을 돌리고 일상을 얘기하고 생각을 나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인사를 나누고 소주한잔 권하는 곳이 지리산인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흐르다 보니 “정말, 별유천지가 따로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지리산을 떠올리며 빨치산의 처절한 투쟁이나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일출을 떠 올릴 수는 있겠으나 내게 지리산은 사람들과의 나눔과 평등의 장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 2박 3일의 휴가를 낼 수 없는 사람들, 산까지 오기 위한 교통비가 없는 사람들은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일주일이 걸려서라도, 혹은 종주가 아니더라도 장애인들과 산을 오를 수 있고, 오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휴가를 낼 수 있고, 산까지 오기 위한 교통비가 필요 없다면 지리산이라는 별천지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 올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더라도 꾸준히 땅에서 발을 띄지 않고 자분자분 땅을 꼭꼭 밟아가며,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온 것을 사람들과 나눠가며 세상을 살아간다면, 지리산은 어느 곳에나 있는 우리의 일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5월 지리산에서 본 선명한 신록과 화사한 봄꽃들의 맵시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옆길로 새지 않고,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땅을 꼭꼭 밟아가며...
- 사진
-
재난 연극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상담소
- 99%의 경제
- 미디어택
- 비문명의 역습
- 초고령화 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엄한진의 INTERNATIONAL
- 여성, 노동의 기록
- 녹색스트라이크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연정의 르포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