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너무 심하다.
6월 최저임금투쟁이 막을 내렸다(?). 29일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의 9.2% 인상을 결정했다. 이는 3인 가구 월평균 지출액인 211만원의 29.9%에 불과한 것이고, 전체 노동자 정액급여 1,637.538원(2004년 8월 기준)에 비추어 봐도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주 40시간제에 따라 연월차와 생리휴가 수당이 삭감되기 때문에 오히려 작년에 비해 삭감되는 액수라고 한다. 이번 결정으로 현행 시급 2840원인 최저임금이 3100원으로 인상, 월급으로는 계산하면 70만600원에 이르지만 주 40시간 기준으로 환산할 때 월 64만790원이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빨리 죽는다.
“빈곤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상식이다(예전에 선배에게 “왜 이런 뻔한 걸 연구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누구나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자료로 통계로 보여주지 않으면 실체를 믿지 않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비교해 보면, 가난할수록 평균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에디오피아의 경우 여성과 남성의 평균수명은 각각 50세와 47세다. 에디오피아보다 평균 소득이 24배나 많은 멕시코의 경우, 여성과 남성의 평균수명은 각각 75세와 69세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미국의 경우 여성과 남성의 평균 수명은 각각 80세와 73세다.
이런 수명의 차이는 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 의하면 1987년에서 1991년 사이의 평균 수명은 최고 계층에서 남자가 60.5세, 여성이 65.8세였다. 그러나 이에 비해 최하계층은 남자의 경우 4.7년, 여자의 경우 3.4년이나 수명이 적었다.
어느 나라에서 어느 부모에게서 태어났느냐가 내가 얼마나 살지에 대해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이 아프다
극단적인 사망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빈곤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에 대한 근거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소득집단에 따른 유병률을 보면 소득 수준 상위 20%와 하위 20%의 유병률에 차이가 있으며 이는 활동제한이 있을 정도의 만성질환 일수록 그 격차가 커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소득 20%의 경우에는 24.6%가 급성질환을, 24.3%가 만성질환을, 28.8%가 활동제한이 있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반면에 고소득 20%의 경우 급성질환 18.5%(-6.1%), 만성질환 17.1%(-7.2%), 활동제한이 있는 만성질환 13.9%(-14.9%)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를 보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1989년과 1992년 전체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한 만성질환의 유병률은 각각 16.7%와 20.7%였다. 반면에 저소득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은 19990년과 1993년에 각각 24.1% 및 24.3%였다.
이를 가구별로 살펴보면 그 차이가 더욱 확연해진다. 1993년 저소득층 가구 중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가구는 71.3%인데 반해 1992년 전체 소득계층의 만성질환 가구비율은 50.6%였다. 저소득층 가구에서 약 20%나 높은 유병률을 보인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제대로 치료 받지 못한다
저소득층의 만성질환 유병률의 증가, 특히 활동 제한이 있을 정도의 심한 만성질환 유병률의 증가는 보건의료비의 지출 과 보건의료서비스 이용의 어려움으로 인한 경우가 많다. 빈곤가구는 전체 지출의 6.0%를 보건의료비로 지출하고 있어 일반가구의 4.7%보다 높다.
그래서 빈곤층은 치료를 중단하기도 한다. 생활보호사업·공공근로·직업훈련·실업자 대부사업에 참여한 가구를 대상으로 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1999), 지난 3개월 동안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는 가구 비율이 30.6%였고, 이들 가구의 83.2%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중단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사람이 빨리 죽고, 병에도 잘 걸리고, 만성화 되는 경우도 많고,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여기에 ‘돈’ 문제로 인하여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적극적인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그 악순환은 계속 되는 것이다.
빈곤의 원인, 최저임금
우리 나라의 빈곤규모는 OECD 기준(소득이 중간소득의 50%에 못 미치는 가구)으로 20% 정도라고 한다. 최저 생계비 기준의 빈곤 규모 역시 20%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최저 생계비보다 낮다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최저 임금이 결국 최고 임금으로 결정되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최저 임금의 선정 기준과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 임금의 기준과 방식이 검토되어야 하는 이유는 빈곤가구의 60%가 근로빈곤가구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OECD를 기준으로 하든, 최저 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든 절반이상의 빈곤층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빈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빈곤을 최소화하고, 더 나아가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최저임금 수준으로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는 최저임금에 대한 관점, 즉 줄 수 있을 만큼 자본이 ‘베푸는’ 것이 아니라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 접근으로의 대전환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것이다. 최저 임금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이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은 ‘최소한’, 정말로 ‘최소한’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건강한 노동력의 재생산이어야 한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과연 노동자들 내부의 상대적 기준에 의해 몇 %로 결정될 수 있는 문제인지, 최임위라는 정치적 공정성이 무너진 기구에서 심의, 의결할 사안인지의 문제는 논외로 치자.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이 돈을 가지고 제대로 입고, 먹고, 자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다!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을 이야기하는 것이 쌩뚱 맞을 수 있기는 하지만 최저임금은 최소한 건강한 노동력을 재생산 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하는거 아닌가?
'한계·저임업종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고려하여 '줄 수 있는 만큼'에서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기준이 가진 한계상 노동력의 재생산을,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없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어버리는 지금의 현실에서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빈곤과 불건강의 악순환으로 몰아넣는 병원균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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