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가 출범했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여, 보건복지부장관 등 정부위원 10명과 민간단체 20명 등 30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의료산업을 향후 경제발전을 이끌 핵심산업으로 간주하고, 의료산업화 추진 기본방향과 장·단기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한편 내년 상반기까지 단기과제에 대한 추진방향과 부처별 세부 실행계획을 마련한다.
위원회의 출범에 대해 노동사회.보건의료단체로 구성된 의료연대회의는 “의료를 기업의 이윤 창출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부자와 기업만을 위한 의료제도”를 만든다며 즉각적인 해체를 요구했다. 그 근거의 첫 번째 이유는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민간위원의 상당수가 지금까지 의료의 기업화와 상업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친기업인사이거나, 업계 인사들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인사가 “의료가 시장원리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평소 강조해온 서울삼성병원장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다. 학계와 연구기관 소속의 민간위원들도 의료산업화정책에 관여해 왔거나, 이에 이해관계를 가져온 분이며, 제약회사 사장, 의료기기 회사 대표 등이 민간위원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논의되는 정책의제가 반국민적인 본질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영리병원 설립, 의료기관의 영리부대사업, 의료광고 확대허용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한국노총이 메디컬아파트, 의료방송, 병원경영, 해외 의료사업 등 의료사업 전문기업인 휴메인그룹과 제휴를 맺어 노총 산하 3600여개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국적인 의료기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민간의료보험, 건강쇼핑몰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기업은 최근 완공된 한국노총 근로자복지센터를 의료산업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야심이라고 한다. 이 기업대표이사는 ‘의료를 산업으로 발전시킬 배경과 큰 틀을 마련하기 위해’(출처: http://www.e-healthnews.com/) 한국노총 근로복지센터에 둥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 의료기업은 10월 중에 우선 검진센터부터 문을 열 예정이다. 아이러니한 건 한국노총이 의료시장화 저지, 영리병원 저지를 하나의 과제로 삼고 있는 연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는 최근 특별자치도 전략의 일환으로 교육, 의료시장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제주도의 방침에 대해 이를 적극 저지하기로 방침을 정한 바가 있고,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 대해서도 의료연대회의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해체를 요구하였다.
현 단계 의료산업화의 핵심은 병원설립에 있어 영리법인의 참여 허용과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통해 민간의료보험회사와 병원-기업간의 보험계약관계를 형성하여 공보험을 대체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민간의료보험 도입의 단계를 "정액방식의 암보험 -> 정액방식의 다질환보장 -> 후불방식의 개인보장 -> 후불방식의 단체보험 -> 병원과 연계된 단체보험 -> 공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 으로 설정할 수 있는데, 현재 삼성생명을 포함한 생명보험사는 후불방식의 개인보장까지 상품으로 출시할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노총과 의료기업이 맺은 제휴는 이 보다 더 나아가 병원과 연계된 단체보험까지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조치는 건강보험당연지정제 폐지와 민간보험과 의료기관간 계약관계 성립이다. 그렇게 되면 다음 단계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가 된다.
미국은 기업의료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이의 폐해는 영화 '존 Q'를 통해서 알려지기 도했다. 미국에서 노조와 기업과 보험회사, 의료기관간에 맺어진 관계가 이런 형태의 전형이다. 노조는 기업과 단체협약을 맺고, 기업은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으며, 보험회사는 산하에 의료기관을 두거나, 의료기관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의료이용과 부담과 관련한 미국의 노사관계와 의료기관간의 연계는 병원-금융-산업복합체의 이해관계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최근 한국기업에서도 ‘선택적 복지제도’라는 미명하에 기업 차원의 단협에서 건강과 노동재해와 관련된 조항을 도입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의료이용의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나고 있을 지 모르지만,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GM을 비롯한 미국내에서의 노동자 파업은 기업이 보험회사에 부담하는 보험료를 노동자에게 떠 넘기려는 데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4천만명에 달하는(이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과 실업자이다) 노동자와 가족이 건강보험을 비롯한 사회보험의 혜택 뿐만 아니라 국가가 보조하는 공공지원제도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는 보편적으로 건강권, 복지 등의 사회보장제도가 구조화되고 제도화되지 못한 나라에서 노동자들의 자기 권리와 요구를 위한 방편으로 기업복지가 발달한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비정규직의 50%이상이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는 기업복지를 통해서 누리는 혜택이 많다.
한국노총이 이런 관계까지 전망을 하면서 제휴를 맺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상의료쟁취, 의료시장화저지'를 내걸면서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해체를 요구하는 것”과 의료산업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의료기업과의 제휴”와의 괴리가 사회양극화만큼이나 깊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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