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예술’에 어떤 관점과 입장을 가질 것인가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그것은 예술의 범위와 가치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정의하는 일이다. 또한 현대사회에 있어 그것은 ‘국가’와 ‘개인’의 경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지금은 많이 초라해지긴 했지만, 한때 ‘예술’은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고, 권력에 대항하는 가장 전위적인 목소리이기도 했다. 물론, ‘예술’이 지닌 그러한 맥락의 유효함이 모두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얼마 전 세계적 예술가로 알려진 백남준이 죽었다.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추모와 그 사연에 대한 관심이야 인간의 본성적 속성이겠지만, 백남준에 대한 거부감없는 열광은 왠지 씁쓸하다. 상상하기 힘든 거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미 1930년대에 그랜드피아노를 소유했으며, 경기고등학교를 가마타고 다닐 수 있었던 탈계급적 인간이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냐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조금의 오해를 보태자면 우리 사회의 예술은 백남준에 이르러 갑자기 권위와 계급이 탈각되고 있다. 욕망이 결핍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아무런 결핍이 없는 상태에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욕망이 발현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그것은 성취라고 하기엔 불균형적이며, 지평이라고 하기에 너무 값비싼 것이다.
백남준은 또한 ‘68혁명’의 세례를 직접받은 거의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러나 ‘68혁명’에 대한 막연한 환타지를 갖고 있는 내게 그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뭐라고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이 그를 평범하게 만든다. 그의 예술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뭔가에 비해 항상 전위적으로 보이지만 감동적이지는 않다. 주요한 국가 행사에 아낌없이 봉사하며, 관제로 이뤄진 대형 기획 전문가로 한국인에게 각인된 그가, ‘한국인 제자는 안 받았다’고 한다. 그의 이중적 태도는 씁쓸하고 서글프다. 플럭서스(pluxus)라고 불리는 자본으로부터의 탈주 기획을 역시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의 참여에 계급적 진정성이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빗나갔는데, 워낙 ‘예술’에 무감각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내 삶에 그런 것이 있었는가 싶기도 하다.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 하는데, 난 당최 제1에서 제6까지의 예술은 제대로 만났던 적이 없다. 그 흔한 오페라와 미술관도 아니 뮤지컬조차 한 편 제대로 본 일이 없다.
노들섬에 서울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를 짓겠다는 이명박의 ‘허언’에 기막혀 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오페라하우스’가 현실화되는 과정은 우리사회에서 ‘예술’이 무엇을 가리키는가를 분명히 한다.
서울의 1,000만 시민 중 오페라 관람 인구는 채 3%가 되지 않으리라는 충고도, 서울시가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회관이 13개소에 대한 활성화 방안이 먼저라는 지적도, 총 53개소에 이르는 서울 시내 종합공연시설의 이용율 실태를 분석한 객관적 증거도 ‘예술’이라는 한 마디에 묻혔다.오페라하우스 규모의 시설을 지으려면 최소 1만 8천평이 필요하지만, 노들섬의 건축 가능 면적이 1만 5천평 밖에 되지 않는다는 타당성에 대한 의문도 그 ‘예술’이 만들어낼 스펙터클과 이미지 앞에 그저 그런 찌질한 현실들을 뛰어넘지 못하는 자들의 기술적 문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라는 아주 유명한 광고 카피가 있다. 이 카피에는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 온 전문가주의에 대한 예리한 성찰이 담겨있다. 합리적 과학과 이성적 질서로 위장되지만 여전히 사회적 역할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으며, 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계급과 신분의 지배 체제를 내면화한다. 이것은 하나의 신화이다.
이 신화는 우리의 일상을 거대하게 지배한다. 감히, 정면으로 마주서기에는 두려운 이데올로기이며 그렇다고 비껴서는 자는 비겁하게 만드는 절묘한 모습이다. ‘전문가’에 압도당하는 풋내기로 살아가야하는 일은 그래서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에 경탄하거, 외면하는 비겁함에 길들여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가끔은 생존의 굴레에서 비껴선 삶을 꿈꾼다. 오페라나 즐기며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어떤 풍경에 빠져보고도 싶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삶도 그러할 수 없다. 신체의 감수성이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떠한 아니 대부분의 신체는 생존을 위한 노동 아래 꿋꿋이 무릎 꿇고 있다. 청계천이라는 시각적 환상을 위해 2,500명의 노점상이 생존의 공간에서 내쫓겼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물론, 백남준의 문제에서 이토록 감성적 결론으로 비약하는 것은 적당한 흐름이 아니다. 백남준의 문제는 다분히 황우석 이후 영웅을 잃어버린 수구언론의 문제이자, 한국사회를 작동시키는 광기로서의 애족과 애국의 문제이다. 어쩜, 백남준에 배알이 꼴린 것도 백남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때문일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은 집중되어있던 권력을 모세혈관 곳곳에 퍼트리고 또한 엮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모세혈관을 움직이고 터뜨리는 것은 국가와 자본으로 상징되는 지배계급일 뿐이다. 백남준은 스스로 터져버린 모세혈관이 아니라 국가와 자본의 배양속에서 성장하여 모세혈관 밖으로 걸어 나간 자이다. 그래서 그는 보편적으로 위대한 예술가일수 있겠지만, 어떤 계급에게는 계급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사회적 억압과 착취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화해하기 어려운 계급적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적 인물이다.
백남준 미술관이 건립되고 범정부적 차원에서 백남준과 그의 예술을 추모할 모양이다. 출발이 달랐던 자는 마지막 역시 달라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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