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교육이다”

[6회미주지역사회포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대학교 방문기

“혁명은 교육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즈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 관련 정책을 관통하는 구호이다. 이 구호는 여러 가지를 함의한다. 일차적으로는 인구 중 다수가 가난하기에 아이들이 학교 다니지 못하고 있는 현실, 아동이든 성인이든 문맹률이 상당히 높다는 현실에 대응한다는 차베즈 정권의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나아가 사회 지배계급 재생산이 아닌 그야말로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교육의 내용, 체계, 방식을 만든다는 것, 즉 ‘학문의 혁명’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사회주의-볼리바르 혁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 차세대 혁명가를 배양하고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꾀하는 데 교육이 핵심이라는 사고를 담고 있는 구호이기도 할 것이다.

‘교육으로서의 혁명’ 또는 ‘혁명으로서의 교육’을 실천하는 데 있어 핵심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대학교 (Universidad Bolivariana de Venezuela; UBV).

나는 1월 31일, 미주지역 세계사회포럼이 끝난 후, 볼리바르 혁명의 핵심 ‘준거지’들을 둘러본다는 호주 ‘베네수엘라 연대위원회’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이들과 함께 대학을 방문하게 되었다.

  볼리바르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이 우리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다.


400년 간의 제국주의 지배와 뿌리깊은 빈곤과 불평등에 찌든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된 우고 차베즈는 집권 후 다양한 ‘미션’ - 사회 프로그램 - 에 착수한다.

무상 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Misión Barrio Adentro)", 대농장 주인들로부터 토지를 탈환하고 식량 문제를 해소하고자 하는 “미션 사모라(Misión Zamora)”, 문맹 퇴치를 위한 “미션 로빈슨(Misión Robinson)”, 무상 중등교육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미션 리바스(Misión Ribas)”, 고등교육을 책임지는 “미션 수크레(Misión Sucre)”... 목록은 매우 길다. 차베즈 정권은 “미션 수크레” 일환으로 2003년 10월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대학교'를 설립했다.


대학 건물은 원래 초국적 석유회사 엑손모빌 사무실이었다. 1974년 석유를 국유화하면서 엑손모빌 건물은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인 PdVSA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PdVSA는 국영 석유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은 베네수엘라 정부보다 오히려 초국적 자본과 국제금융기구, 미국의 통제를 받고 있었고, 현재 대학이 자리잡고 있는 건물은 경영진들이 이용하던 사무실 및 사교클럽이었다. 건물 안에는 거물급 엘리트들을 위한 사우나와 식당, 연회장 등이 있었다고 한다.

차베즈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한 음모였던 2002-3년 석유회사 경영진들의 ‘파업’이 무력화된 후, 회사 사교클럽 건물을 탈환하여 ‘미션 수크레’ 일환으로 ‘베네수엘라볼리바르대학교’를 세운 것이다. 다른 미션과 마찬가지로, ‘미션 수크레’도 석유로 벌어들인 돈 또는 ‘물물교환’(예를 들어,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는 대신 의사나 교수를 쿠바로부터 제공받는)으로 재정조달을 하고 있었으며, 그 돈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대학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볼리바르대학 캠퍼스와 학생들.

  시내가 그렇듯이, 대학 곳곳에도 벽화가 많다.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중요한 ‘혁명가’ 5명의 그림. 첫 번째가 예수이고, 세 번째가 식민주의에 맞서 아메리카대륙 통합을 주창하고 차베즈에게 영감이 된 시몬 볼리바르, 그리고 마지막에 차베즈가 있다. (나머지 2명은 누군지 모르겠다.)

  “제국주의 공세에 맞서자... 라틴아메리카 민중 단결 만세!”


볼리바르대학은 기타 대학과 마찬가지로 4년 과정이다. 그러나 노동자를 위한 야간 과정은 시간 제약 상 5년제로 운영한다고 한다. 공중보건, 환경, 사회학, 지정-정치학, 농업생태학, 법학, 정보통신학, 의학, 건축학 등 총 11개 학과로 운영되고 있다.



석유회사 사교클럽을 대학으로 바꾸는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 주차장에는 버스 여러 대가 서있었고, 버스를 한창 단장하고 있었다. 새로 단장된 버스 뒤편에는 “혁명이 교육이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볼리바르대학은 현재 학생 5,000명 규모. 학비는 물론 없고, 하루 세 끼와 통학 교통편 모두 무료로 제공한다. 그리고 필요한 학생에게는 기숙사도 (무료로) 제공한다. 시험도 없고 무조건 선착순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해서, 그 치열한 경쟁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질문을 해봤다.

답은 “지방화 (municipalization)”. 즉, 볼리바르대학은 카라카스 시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며 ‘미션 수크레’의 ‘중앙본부’ 역할을 하고, 전국적으로 가능한 한 많은 지역 -바리오 (barrio; 원래는 동네라는 뜻이지만 지금은 사실상 빈민촌을 의미) - 에 분교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분교는 강의실 하나일 수도 있고, 교수 한 명을 파견하는 정도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이 대학에 오는 것이 아니라 대학이 바리오에 뻗어나가 학생에게 간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대학교육의 탈중심화를 꾀하고 아울러 무시험-무료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화’는 물리적 공간을 확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지방화‘는 대학 구조 뿐 아니라 교육철학 전반을 관통하는 주요 원칙이다. 볼리바르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11개 과목 모두 내용과 교육방식에 있어서 ’지방화‘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지역공동체가 교육의 주체이자 대상이며, 교육의 목표 자체가 지역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건축학과의 경우 학과의 ‘구호’가 “민중을 위한 친환경적 사회와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대학에서의 건축학은 전문디자인을 넘어 건축의 사회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인간과 생태가 중심이 되는 지역공동체를 물리적으로 구축하기 위한 학문인 것이다. 그래서 강의실은 대학 뿐 아니라 바리오 그 자체이며, 정부-대학-바리오자치조직들이 공동 주체가 되어 주거와 기간시설, 문화시설 등을 연구하고 건립한다고 한다.

  지정-정치학과 사무실에 붙어 있는 각종 선동 포스터.

‘농업생태학과’도 있다. 남미에서 ‘농업생태학’을 가르치는 대학은 볼리바르대학이 유일하다고 하며, 새로 만들어낸 학문이라고 한다. 주류 학문에는 자연자원 착취와 교역을 전제로 한 ‘농업경제학’이 있다면, 대안 학문으로서 ‘농업생태학’은 생태 보존과 식량주권 확보,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유기농법 연구와 실천을 중심으로 한다고 것이 과 사무실의 설명이다.

학생들은 농촌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협동조합의 일원으로 공부를 한다고 한다. 신생 학문이다보니 전공 교수가 없어 생물학, 화학, 수의학, 문화인류학 교수들이 팀을 이루어 학생 및 협동조합과 함께 강의를 계속 개발 중이라고 한다.



볼리바르대학 식당. 점심을 먹다 포즈를 취하는 학생들. 학생증만 제시하면 하루 세 끼 모두 무료로 해결할 수 있다. 고기, 밥, 빵, 샐러드, 과일, 주스 - 무료이지만 알찬 메뉴였다.

  도시락을 싸온 학생 또는 교직원은 전자렌지 8대가 있는 별도의 식당을 이용할 수도 있다.

  대학 한 편에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체스 공간도 있다.


  볼리바르대학 내 보건소 겸 재활센터.

“통합진단센터 - 바리오 아덴트로 UBV" 볼리바르대학 내 보건소 겸 재활센터. 사실 우리 식으로 ‘보건소’라고 부르기엔 적절하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무료 보건의료 체계인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의 중앙본부 역할을 할 예정이며, 학생 5,000명과 교직원 2,000명 뿐 아니라 지역주민도 무료 기초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규모와 의료시설을 갖출 예정이기 때문이다. (2월 말에 개관한다고 한다) '의학과 학생들이 여기에서 실습할 예정이냐?'는 한 사람의 질문에, 재활센터 관계자는 “여기에선 안하고 바리오에 있는 보건소에서 실습할 것”이라고 답변함- 의학과 역시 ‘지방화’를 실천하고 있다. 이 센터는 쿠바에서 파견한 의사와 베네수엘라 의사들이 공동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혁명은 교육이다” 아직 2년 남짓 된 ‘실험’이고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시험으로 입학하고, 숙식을 모두 제공 해 주고, 교육의 내용과 방식, 지식 체계와 교육철학의 변혁을 모두 꾀하는 베네수엘라볼리바르대학 - 그 자체만으로도 ‘혁명적’이다. 특히, 교육의 상업화와 공교육 붕괴, 대학 법인화 등 교육을 이윤창출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 싸워야 하는 한국인으로서 씁쓸함과 부러움을 느끼면서, 동시에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덧붙이는 말

글을 보내주신 전소희님은 자유무역협정WTO반대국민행동 사무처장님으로 제 6회 베네주엘라 미주지역 사회포럼에 참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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