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라인(가슴에서 허리, 엉덩이로 이어지는 곡선), 정말 예술이예요.”
“나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은 나의 학교가 아니라 나의 교복이다.”
입학 철이 시작되는 요즘 흔히 보거나 들을 수 있는 교복광고 문구들이다. 지난 2000년 초부터 시작된 교복 공동구매로 된서리를 맞은 대기업과-SK스마트, 제일모직 아이비, 엘리트, 신생업체인 스쿨룩스들이 공동구매 운동이 저조한 틈을 타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해 교복광고 모델에 기용된 인기그룹 동방신기가 받은 모델료는 5억5천만 원이라고 한다. 막대한 금액의 홍보경비는 고스란히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1999년 무렵, 전국의 거의 모든 중고생들이 착용하는 교복의 가격이 점점 올라 학부모들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자 교육운동단체와 지역 시민운동단체들은 교복 공동구매운동을 시작했다. 교복 공동구매운동은 불과 2-3년 사이 ‘20만 원 교복값을 10만 원으로 낮출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 전국적인 소비자운동으로 번져나가 전국적으로 1천여 개 이상의 중고등학교가 참여했다. 교복시장에 새바람을 일으킨 이 운동으로 대기업의 교복값도 20만 원에서 15만 원으로 잇달아 인하되었으며, ‘헌 교복 물려입기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초기 교육청의 무관심과 학교 측의 비협조로 교복 공동구매를 추진하던 엄마들은 한겨울 운동장에서 신입생의 신체 치수를 재야할 정도로 심한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청과 학교당국의 태도를 비난하는 여론이 드세지자 교육청은 장소 등 편의제공을 약속하기도 했다. 또 이와 함께 조달청은 교복의 유형을 분류하여 조달청 단가를 게시판에 올려 학부모들에게 가격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2001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교복 가격 담합과 교복 공동구매운동에 대한 방해 행위 등을 이유로 대형 교복사들에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로써 부당한 교복가격 피해 손해배상청구소송 추진이 가능하게 되어 대형 교복회사들의 담합으로 피해를 본 전국 400여 개의 중·고등학교 3525명의 학부모가 소송에 참여했다. 원고승소판결이 지난 2005년 가을, 소송 4년 만에 나왔고 피해보상금도 받게 되었다.
가족이기주의와 성적지상주의가 판을 친다는 서초 강남지역도 급식운동과 교복 공동구매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서초 강남지역의 학부모들이 체감하는 교복문제와 급식문제 역시 타지역과 마찬가지로 열악하고 문제가 심각해 적극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한때 강남 인근지역 십여 개 학교가 교복 공동구매에 참가할 정도로 학부모의 호응과 언론의 관심이 컸던 교복 공동구매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있다. 가시적 성과도 내고 사회적 공론화와 지지를 이루어낸 교복 공동구매운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다시 대기업의 횡포에 자리를 내주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교 측과 교육청의 비협조가 여전하다. 교복 공동구매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여 자체 소위원회를 두고 진행한다. 이런 과정에서 학교 측의 협조가 필요한데 대부분 ‘나 몰라’라 한다. 또한 교복 공동구매결정은 전 학년도 11월 말이나 12월, 신입생이 들어오기 전에 선배학부모들이 결정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또한 학부모 대표를 학부모가 뽑았으면 학부모 의견을 수렴할 텐데 실제로는 학부모 대표를 학교장이 뽑는 경우가 많아 뽑아준 사람인 교장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학교와 지역교육청을 통해 나눌 수 있는데, 이 통로가 학교 측의 무관심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거나 막혀있다.
둘째, 교복 공동구매를 주관했던 학부모들이 자녀의 졸업과 함께 손을 떼면서 운동의 축적된 경험들이 이어지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학교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주 극소수로 임원 부모이거나 학운위 위원 정도다. 그것도 재학 시 3년간 시한부다. 교복 공동구매는 공동입찰, 납품, A.S과정 등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어 학부모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크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을 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보험도 들고 각종 안전장치를 한다. 교복 공동구매를 했다고 해서 모든 학부모가 공동구매한 교복을 100% 다 구매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학부모 대다수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학교 측이 이에 대한 정보도 잘 알려주지도 않는다.
서초지역에서 오랫동안 정공법인 입찰을 통해 교복을 공동구매한 D여고의 경우를 보면, 대기업제품에 비해 반값에 공동구매한 교복이 품질이나 사후관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었음에도 최근 이 운동을 4년 만에 접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그동안 이 운동을 묵묵히 펼쳐왔던 교사가 학운위에 참여하지 못해 제대로 공동구매 사업에 대해 논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구조적이고 지엽적인 단위학교 사정으로 교복 공동구매가 쇠퇴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교복값은 상승하고 대기업의 횡포는 시작되어 서민 가계에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 재연되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입학 철을 맞아 학교 근처마다 산뜻한 녹색의 간판을 단 교복대리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대중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쉬워도 지속해나가는 것의 어려움을 새삼 절감한다. 대중운동의 성과를 이어가며 기존 관행을 바꾸어가기, 사람과 열정과 제도의 변화가 함께 가야만 일상을 바꾸어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탓할 것 없이 ‘운동’이 내 평생과업이라고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주어진 과업을 행하여 일상의 작은 부분이라도 바꾸어나가는 사람, 팍팍한 세상에 그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는 사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람, 그렇게 모여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그려본다.
교복 공동구매 중간 결산, 다시 위기에 처했지만 그동안 많은 지역 운동가와 학부모들이 합심하여 척박한 토양도 일부 바꾸고, 지역마다 똘똘한 씨앗을 뿌렸으니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모여 전국의 사례부터 모아보고 다시 운동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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