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시민운동에 몸을 담으면서 한 두 차례 짧은 단식농성을 해본 적이 있다. 말로 해도, 글로 해도 안 되고 그 모든 수단이 다 소용없다고 판단되는 절박한 순간,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단식농성을 택했다.
앞으로는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과 다시 맞닥뜨리지 않길 바라지만 그래도 다시 그런 상황이 오면 후미에서 혹은 앞장서서 단식을 해야만 하는 나는 교육운동의 단식대기조 중 하나이다. 교육운동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 전까지는....
그런데 교육과 관련해 절박한 심정으로 단식을 하는 분들이 또 있다. 장애인교육권연대 분들이다. 남 일 같지가 않다. 교육운동을 하면서 대학입시 문제, 교육개방 문제 등을 주로 다루게 되는 나로서는 마음 한편에 늘 무거운 불편함을 안게 되는데, '주류'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실업교육, 특수교육, 지방교육계에 대한 미안함이 그것이다.
그들은 제도교육의 범주에서도 소외적이고, 제도교육에 대한 운동의 범주에서도 주변적이다. '이 사안이 크다, 또는 급하다'는 핑계 속에 다수의 무관심 밖의 지대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더욱 황폐하고 비참해져가는 엄연한 교육 현실이 있다. 그 중에서 특히 한국사회의 장애인 교육현실은 매우 비참하다. 장애학생들은 인권과 교육권의 사각지대에서 예외없이 신음하고 있다.
얼마 전 장애인학부모들과 교사들이 정치권과 교육부를 상대로 장애인 교육지원법제정을 위해 단식농성을 하는 인권위 농성장을 찾았다. 그들 역시 말과 글, 다른 어떤 수단도 소용없었기에 자신의 몸의 희생을 요구하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였으리라.
단식을 하는 장애인 학부모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장애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장애인들의 교육과 취업에 온갖 차별이 행해지고 있으니 모든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교육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는 것이다. 장애학생도 남들처럼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부모들은 걱정한다.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내가 저 아이를 거두지만 나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러니 한 글자라도 더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먼 길을 마다 않고 매일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등하교를 한다.
사실 그동안 특수교육진흥법이 있긴 하였으나, 그것은 교육주체들의 입장을 반영한 '아래로부터의 제도'라기보다는 특수교육전문가들의 이론과 행정의 편의에 초점이 맞춰진 '위로부터의 제도' 성격이 강해 강제성과 실효성에서 한계가 많았다. 뼈아픈 자신의 삶에서 나온 내용이 아닌, 관념과 이론의 결과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러하니 장애인교육에 필수적인 지원체계를 구비한 법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고 그 당연한 요구를 위해 그들은 단식을 시작한 것이다. 벌써 오늘로 34일째이고, 길게는 올해로 여러 해 째이다. 그 중 두 명은 기간 내내 단식을 하고 있고 나머지 지방에서 올라온 학부모들은 릴레이단식 중이다. 학부모들이 지속적으로 단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릴레이단식을 택한 이유는 한순간이라도 부모 손이 안가면 안 되는 장애아동을 집집마다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단식중인 한 학부모는 지난해 연례행사처럼 단식으로 체중이 8킬로가 감소했는데 단식중단 직후 전국을 돌며 활동하느라 보식을 잘못해서 체중이 무려 31킬로그램이 늘어났다며 웃음지었다.
지율 스님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단식을 벌여 온 사회가 경악한 후 운동가들의 수일간의 단식은 눈도 깜짝 안 하는 강퍅한 시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장애인교육지원법을 제정하라는 절박한 요구를 하며 수십 일째 단식을 하는데도 눈여겨보는 사람들이 없고, 별다른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 것을 지켜보자니 가슴이 팍팍해진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교육문제가 엉망이라는 것은 맘먹으면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기회나 관심이 없고, 생각을 안할 뿐이다.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펴는 일반 학생들의 권익도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마당에 정신지체를 갖고 있거나, 안 들리고 안 보이는 장애인들의 교육은 오죽하겠는가? 더 말할 것도 없이 이창동 감독의 영화<오아시스>에서 배우 문소리가 맡은 역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라. 그래도 감이 안온다면,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리는 제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가보라.
선천적 장애든 후천적 장애든 장애는 개인에게는 큰 불행이다. 그러나 그 주관적 불행-차별은 공동체가 공유하고 분담하는 순간 하나의 객관적 사실-차이에 불과할 수 있다. 이타성과 평등성에 기반한 유대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본 일이 없는 이 사회는 장애를 순전히 개인 팔자이자 스스로 짊어질 몫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 야만적 인식은 교육현장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장애학생 통합 교육시 학생들은 더러 장애아의 부족함이나 돌출행동을 인내하고 친구처럼 돌보아주기도 하는데 반해 성인인 담임교사나 비장애학생의 학부모가 용납하지 못하고 온갖 불만을 터뜨리는 사례도 종종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특수학교는 땅값 떨어뜨리는 혐오시설이다. 이 극악무도한 현실을 간신히 버텨내며 장애학부모들이 단식을 통해 절규를 할 때마다 교육부는 예산을 조금씩 늘려왔지만 그들의 요구엔 턱없이 부족하다. 교육부와 정부 더 나아가 정치권은 이들의 절박한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장애학생이 비장애인학생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교육법 제정을 서둘러야한다.
장애학생들이 야만적인 인식과 교육환경으로 인해 사회 울타리 밖으로 내쫓긴 채 절망과 설움으로 연명하는 마당에 한미FTA가 무엇이고, 경기도파주의 영어마을과 영어몰입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들만의 세상이고 남의 잔치가 아니겠는가? 장애인교육지원법으로 그들의 오랜 세월 다져진 한을 다 씻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국민을 보호하고 배려하지 못한 국가가 당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속죄이다. 국가여, 양심 좀 가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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