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사회위기를 지배세력과 손잡고 해결하겠다?

[기고] '저출산·고령화 사회협약 체결'이라는 노동자운동의 치명적 과오

신자유주의 개혁이 야기한 사회 위기를 그 주범과 손 맞잡고 해결하겠다?

지난 20일 '저출산·고령화대책 연석회의'(연석회의)가 드디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기본계획) 시안을 바탕으로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한명숙 총리는 사회협약 체결식에서 ”사회 각 분야 전 부문이 망라돼 사회협약을 체결한 것은 초유의 일로 저출산·고령화 대책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됐던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담겨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언론은 일제히 사회적 현안의 해결을 위해 합의와 대화에 나서는 노동계를 칭찬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협약에서 공공보육시설을 30% 이상으로 확충하기로 한 정책적 성과가 있다며 협약에 동의를 표했다. 또한 시점은 분명치 않으나 아동수당을 도입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키로 한 것도 성과로 평가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협약은 보육 시설 확충의 구체적인 계획이나 방향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그를 초과하는 위험천만한 요소들로 채워져있다. 협약에 담겨있는 ‘보육의 공공성, 여성고용 확대와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 일·가정 양립 지원’이라는 번지르르한 말들은 여성에게 적합한 탄력근로제 도입, 파트타임 일자리 확산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를 빙자한 비정규직의 전면화계획으로 이어진다. 재계는 ‘옳다쿠나’하고 출산휴가/육아휴직 시 여성노동자의 업무공백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체인력풀을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출산과 육아의 선택권에 대한 기업의 직접적 통제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다.

한편 고령화 관련 대응책은 이러한 겉 다르고 속 다른 출산장려책 묻혀 쟁점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노사 공동으로 고령자 일자리 여건 마련/임금체계 개편과 연동된 정년제도의 개선방안 논의'하겠다는 방안은 그동안 임금피크제 도입에 노동계가 합의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실질적으로 증명한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연금개악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음에도 연석회의 참여단체들은 연금개혁을 사이좋은 합의를 통해 논의해나가기로 결정했다. 조세개혁은 물론 정부 입장에서 본다면 시민사회단체들과 합의할 사항이 아니므로 일단은 조세개혁은 없다는 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협약의 내용이 실제로 시행될 수 있을지 조차 미지수다. 그러나 분명히 남는 점은 성장잠재력을 지탱하는 값싸고 대체 가능한 여성노동인력, 고령인구노동인력의 활용에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분명히 남는 점은 지금의 사회 위기는 신자유주의 지배세력과 민중이 손 맞잡고! 함께 헤쳐나갈 수 있다는 성립 불가능한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이다. 이 합의에 기반을 둔 정책들이 입안될 때, 혹은 정책의 실패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불만을 표하거나 저항할 민중의 권리는 ‘사회적 합의’라는 틀에 종속된다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 위기담론은 민중적 의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마치 시한폭탄처럼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며 남은 임기 동안 양극화 해소와 저출산·고령화 대응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월 26일 32개 노동·시민·여성·종교 단체 등을 총망라한 범국민협의기구인 '연석회의'가 발족했으며 이 사안을 핵심의제로 삼는 정부 직속의 '국민 대통합 연석회의'가 출범했다. 이들은 2003년 1.17쇼크 이래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져 2005년 1.08명(통계청, 『인구통계』)에 달하며 현 추세가 지속될 경우 생산가능 인구 감소, 평균 근로연령 상승 및 저축·소비·투자 위축 등으로 경제활력이 저하되고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노동·시민단체들 역시 저출산·고령화가 성장잠재력을 해치는 위협요소라는 정부와 학계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 성장잠재력의 확충이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포함한 투기의 활성화와 노동유연화라고 했을 때 과연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과제가 민중의 요구와 부합될 수 있는 것인가. 출산율의 저하, 다시 말해 출산회피는 출산과 가족에 대한 선택의 권리 침해다. 오히려 출산을 선택할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민중의 비극인 것이다. 정부 조사결과로도 출산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이유가 자녀양육의 경제적 부담과 소득·고용의 불안정 문제로 드러난다. 출산을 기피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고통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다. 남성가구주 빈곤가구 비율의 두 배에 달하는 여성빈곤가구주율과 배우자가 있을 때 100%, 없을 때 136%에 달하는 여성 빈곤율을 보아도 그렇다. 가부장제와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가족과 남성 생계부양자에 의존하게 하는 한편,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주’에 몰아넣는 촉진 매개로 기능하게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 과정에서 임금 억제를 위해 추진되는 여성인력활용방안과 사회 위기의 해소 방편인 가족정책이 한 쌍을 이뤄 노동유연화를 추동해온 것이다. 지금의 출산율 저하는 이러한 이중적 억압으로부터 여성이 이탈해나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다.

  보사연, 저출산 원인 및 종합대책 연구 , 2006.(소득은 전국가구 평균소득 기준)


이에 대해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운운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은 이미 소득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가정을 지탱하고 지극히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여성들을 남김없이 쥐어짜겠다는 것이다. 또한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은 고령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고 있다. 역대 정권의 억압적 출산억제정책과 의료 기술의 발전, 평균 수명 연장 등이 원인이 된 고령화 문제는 이를 해결할 사회정책의 부재와 공백을 드러내는 요소일 따름이다. 또한 고령화의 진정한 문제는 노인의 빈곤이다. 젊은 시절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 혹은 공동체가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 구조적 요인이 고령화 문제의 본질 것이다. 정부는 노인 일자리 창출과 출산 장려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출산율 저하는 고령화 문제를 가중하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지만 출산율 제고를 통해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가부장적 통제 전략이며 심화되는 빈곤을 개별가족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겠다는 노골적인 선언이다. 따라서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은 민중적 의제일 수 없으며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가부장적 인구통제전략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사회 위기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빈곤 심화, 불안정 노동 확산에 있다

참여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관련법 개악,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쌀 수입개방, 한·미FTA 추진 등 일관된 폭력성과 반민주성으로 개혁과 민주의 허구성을 스스로 드러내왔다. 신자유주의 정책 개혁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한편, 경제위기와 사회적 권리의 해체의 상황에 놓인 민중의 불만은 ‘개발독재’와 ‘압축성장’으로 한국경제에 거품을 키워온 군부독재세력과 그 잔당들에게 돌리고자 했다. 그러나 5.31 지방선거를 통해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중의 철저한 외면은 가시화되었다.

이 협약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길 없던 정부여당에 대단히 긍정적 효과를 제공해주었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협약체결식이 진행된 20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연석회의 참석위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내뱉은 말들이 주목된다. "민생문제로 국민들께 송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국민통합 약속했지만 성과 내지 못했다."라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그런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를 단념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가운데 이해찬 (전) 총리께서 2005년 국회에서 제안해 연석회의가 만들어져서 사회적 대화가 지금 시작되고 있다"고 이번 협약 체결의 의의를 거듭 강조했다. 저출산·고령화 위기선동과 대응이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사회통합의 효과적인 기제가 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노무현 정부가 구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대중의 정치적 권리의 옹호를 강조하고 구성원간의 합의를 강조하는 외양을 띄며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을 동원하고 사회위기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위기 선동은 미래 사회에 대한 사회적 부담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해결방식으로 연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야기한 사회 위기를 파편화·분절화하고 각각의 지원 대책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개인들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며 자율적인 운동의 주체가 아닌 사회 위기 공동 극복을 위한 과제에 종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반동적 ‘국민 대통합’ 구상 하에 추진되는 저출산·고령사회 위기 선동은 그만큼 커다란 정치적 의의를 띄는 것이었다.

정부가 펼치는 사회 양극화·저출산 고령화 대응은 민중을 빈곤과 불안정 노동에 밀어 넣는 포괄적인 정책인데 반해, 연석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등 운동진영의 인식은 파편화되어 있다. 이미 정부와 재계가 머리를 맞대고 임금피크제 시행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도입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출산장려책이 구상, 실현 단계에 있는데도 성과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방안을 협의할 수 있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다. 또한, 여연, 여협 등 여성운동은 여전히 출산을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여건의 마련 즉, 양성평등 문화의 수립을 위한 기업문화의 혁신이 병행된다면 연석회의는 의의를 살려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민주노총 조준호 위원장은 3~4월 투쟁계획을 밝히는 기자회견에서 “대책위에 구체적인 내용이 있음을 확인했고 그 내용에 한정해서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 한 관계자는 “저출산고령화대책위는 로드맵 등 노동문제와 직결된 것이 아닌, 전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인력활용방안과 노동인구통제전략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동참하는 것이 과연 노동문제와 무관하며 한정해서 대응할 사안인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난 6월 12일 열린 ‘기본계획’에 대한 공청회에서 민주노총이 밝힌 저출산·고령사회 위기담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은 물론,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우려스러운 입장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물론 이들 역시 올해 도입될 노인수발보험을 요양보장제도로 확대 전환할 것, 비정규직 차별 등 고용 불평등 개선 등의 요구는 내걸고 있다. 그러나 ‘기본계획’이 담고 있는 영유아 보육·교육비 지원을 평균소득 130%까지 확대 지원하겠다는 방침이 700만 빈곤층의 현실을 개선하고, 이들이 출산을 하건 말건 도무지 선택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그 누구도 답해주지 않고 있다.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병행되어야 하는 보육교사에 대한 직접고용, 노동조건 개선에 대한 방기, 민간 육아지원시설 서비스 개선을 명분으로 한 평가인증제 실시 등으로 이루어질 보육노동자 위계화가 결국은 불안정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접근도 부족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사회위기담론의 실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한 빈곤 심화, 불안정노동 확산이 오늘의 사회 위기의 근본 원인이다. 자본주의 위기 해소의 편의주의적 공간이 되어온 ‘가족’의 지속 불가능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老)-노 케어’, ‘출산장려를 위한 여성 친화적 일자리 창출’ 등 정부가 제시하는 사회 위기 극복의 길이란 아랫돌 빼내 윗돌 괴듯 노동자민중의 삶의 위기를 제도화, 보편화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양성평등문화 확산을 위해 포스터와 홍보물을 제작, 배포하기 이전에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조직·지원하고 연금 개악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운동은 오늘의 선택이 1998년 노사정위원회의 ‘사회적 합의’의 과오를 반복하는 역사적 퇴행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협약> 주요내용
덧붙이는 말

최예륜 님은 사회진보연대와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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