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포항에서 죽은 노동자, 아직 평택에도 서울에도 있다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 9월 전국행진을 앞두고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FTA 협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해석을 수용함’을 분명히 했다. 발언의 전후 맥락과 상관없이 ‘국가’라는 집합체의 정점에 위치한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어떠한 문제의 본질에 대해 이토록 적나라한 표현을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평소 노무현 대통령이 기묘한 언어조합을 통한 도발을 즐겨왔으며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미덕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다.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죠’, ‘좌파 신자유주의’, ‘친미 자주’ 류의 도저히 웃지 않고는 못 버티는 허무한 말장난 개그를 즐기던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들어 한계를 느꼈는지 악랄한 자학 개그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지금 폐지 직전까지 몰린 개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도는 9.9%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지지도가 취임 이후 꾸준히 추락했지만 어느 순간에도 반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눈을 부벼보니 벼랑끝이지만 돌아보니 노무현 대통령에겐 처음부터 길이 없었다. 길을 내겠다는 악다구니와 복받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의 길이 외로웠던 건 그와 청와대가 ‘골수’와 ‘꼴통’들에 의해 겹으로 포위되어서가 아니며, ‘개혁’의 길이 원래 고독하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그가 외로웠던 건 ‘신자유주의 개혁’이라는 로드맵을 따라 방패로 농민과 노동자를 때려죽이며 길을 뚫고,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목소리를 불법으로 규정지어 구속하고, 반대자의 걸음을 전경 버스로 가둬두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그런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의 종반, 마지막 갈림길 앞에서 다시 한 번 무조건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기 위해 기본적인 삶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길로 나설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들을 최루액으로 상대하며, 전쟁이 아닌 농사를 요구하는 이들을 강제집행하기 위해서 과감한 군사작전을 감행하려 하고 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라는 분열적 통치를 자행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열적 통치의 정점에 한미FTA가 있다.

노무현에겐 경제가 미국이라는 부동의 상수를 매개로 ‘서비스업의 성장=일부 산업의 피해 상쇄, 국가 경제 전체의 이익’의 공식으로 딱 떨어지고, 한미FTA를 통해 미국으로부터 포괄적인 정치․군사․안보의 보장을 받는 것이 크나큰 정권의 과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국 국민 전체의 삶을 담보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리사채를 빌리고 채무의 능력을 보증하기 위해 집문서까지 내놓는 일의 다름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격적으로, 윤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완전히 파산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포기하고 대통령으로서의 품위와 체면을 내팽겨 친 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마지막 길을 뚫고 있다. 마지막 길이다 보니 조롱은 사정없이 악랄해지고 폭력은 극단적 최후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것은 정치가 아니고 통치의 모습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 자신에 맞서는 이 누구와라도 한 판 붙어보겠다는 정념에 불타고 있다. 정말이지 싸워보고 싶다. 국민의 삶이 어떠한지, 그 질감에 무감한 대통령의 꼬라지를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분노를 배우는 일이었다.

지난 겨울에는 농민이 죽었고, 이번 여름에는 포항에서 노동자가 죽었다. 노동자를 때려죽인 전경(1077, 1078부대)들이 지난 5월 4일 대추분교를 철거했던 이들이라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허무하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모두가 전경의 방패 끝에서 죽을 것이다. 결코 허망한 망상이 아니다. 그간 참여정부는 무수한 살해를 통해 정권을 유지해왔다. 오늘의 노동 현실이 1970년 피복공장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절규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갔으며, 신개발주의의 포악한 사냥에 뭍 생명은 절멸하고, 새만금과 천성산은 살해당했다. 미국의 패권적 헤게모니 유지와 부시의 더러운 욕망을 위해, 그 찌꺼기를 나눠먹기 위해 이라크 땅에 막사를 짓고 있는 자이툰 부대는 참여정부의 비열함과 야만성이 회복 불가능의 수준임을 분명히 한다. 강제철거를 앞두고 평택에서는 덤프운송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밑밥으로 던져지고 있다. 평화적 생존의 권리을 요구하고 있는 주민들의 삶을 철거하기 위해 덤프 운송 노동자들의 노동 기본권을 활용하는 극악한 잔머리가 행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이것은 최소한의 국가도 못된다. 상식의 전복과 권리의 약탈이 자연스런 이곳은, 전쟁터 일뿐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의 권한을 악용하여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군사작전을 일으켰다. 헤아리기조차 힘든 숱한 싸움들이 있었고, 그 절박한 승리의 요구들이 노무현을 겨냥해왔다.

누군가 우리에게 완강한 투쟁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그것을 성사시킬 열정과 의지가 있다면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과 신념의 차이를 넘어 연대해야 한다. 편리로서 정치를 택한 이들을 끌어내리는 것, 그것만이 현 시점에서 ‘금융과 군사의 세계화’의 완성편을 위해 노무현을 앞세우고 있는 신자유주의 자체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다. 조건없는 경쟁, 예외없는 개방, 시장 우위의 사회가 복음처럼 메이리칠 때 노동자는 결코 자신의 밥그릇을 지킬 수 없다. 반평화적인 협박과 재제, 반인권적인 굴복과 종속을 어쩔 수 없는 힘의 논리로 인정하는 한 평택의 투쟁은 끝날 수 없으며, 전략적 유연성은 ‘광주-군산-오산-평택-수원’으로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실체를 갖게 될 것이다.

남루하고 초라한 정치를 끝장내자. 도대체 언제까지 그 패악질들을 지켜보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타령만 반복할 것인가, 지금 이 시간에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투쟁을 전국화해야 한다. 물론 전국적 투쟁, 그 정치적 행동의 최종 도착지가 어디인가를 합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는 도착지 타령은 변명에 불과하며 도착지를 모르면 출발할 수 없다는 것은 일리는 있으되 철저히 비겁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전국적인 투쟁의 바람을 통해 하나의 투쟁이 다른 투쟁을 고립시키거나 혹은 압도적 공세속에서 투쟁이 압살당하는 각개격파, 해체의 양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상투적 연출이 아닌 창조적 기획, 운동의 관성을 뛰어넘는 운동적 실천, 오늘의 일정이 아닌 내일의 삶을 전망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포항에서 데모하다 맞아죽은 노동자 아직 평택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다. 더 이상 앉아서 잠재된 죽음을 기다리거나 혹은 컴퓨터 앞에서 죽음의 분노를 규탄하기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너무나 소중하고 유의미했던 많은 싸움들을 잃어버린 채, 그 유의미들의 당위와 명분에만 연대해왔던 것은 아닐까? 노동자․농민이 정권의 방패 끝에서 생을 마감하고 황새울 너른 들판이 강제집행 당하는 이 상황에서, FTA라는 괴물이 총체적 약탈을 감행하려는 이 상황에서 행동을 준비할 수 없다면, 과연 그 운동의 ‘무의미’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는 9월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와 한미FTA 협상 저지를 위한 전국행진’을 제안하고 있다. 제안된 시점이나 행진의 규모에 비해 준비가 많이 부족하고,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과의 논의가 원활치 못해 전망이 순탄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행진은, 완강한 하반기 투쟁의 실현은 유의미하다. 노무현과 같은 하늘을 두고 살아갈 수 없다는 누군가들의 분노를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과 비로소 직접 연결해내는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점진적 개량 혹은 타협으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최소한의 동력도 발생시킬 수 없다는 각성이 필요하다. 금융 자본과 군사 패권의 전지구적 지배속에서 노동자․농민은 유민이 되고 약탈은 보이지 않지만 일상화되고 있다. 포항이, 평택이, 그리고 이름도 얻지 못한 전국의 수많은 삶터와 싸움들이 지금 그걸 뜨겁게 증명하고 있다. 앗, 뜨거~
덧붙이는 말

완군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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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군의 글은 정말 힘이 넘치고 읽는 이를 뜨끔하게 합니다. 오늘의 일정이 아니라 내일의 삶을 전망하는 투쟁을 하자는 말이 가슴에 와닿네요. 그렇습니다. 종착역에 대한 논쟁에 앞서 전국적인 투쟁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번 동감! 저 위압적인 자본의 위세에도 틈새는 있다는 사실! 위세에 압도당해 한숨은 많이 쉬었으니 이제 진정한 한발짝을 내딛자는 평범한 진리!

  • 정말

    상투적 연출이 아닌 창조적 기획, 운동의 관성을 뛰어넘는 운동적 실천, 오늘의 일정이 아닌 내일의 삶을 전망할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이 부분이 정말 가슴에 와닿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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