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 우롱, 생색내기 - ‘장애인 지원 종합대책’

[기고] 새로운 것도 실질적으로 늘어난 것도 없는 생색내기에 불과

풍찬 노숙에 들어간 장애인들 Vs 멋들어지게 차려 입은 기자회견실의 정부 관료들

지난 9월 4일, 이 땅의 장애대중들은 여전히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느라 바빴고 또 고달팠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열 받으면서 마무리된 하루였다. 필자도 열 받은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어, 군데군데 말이 좀 거칠더라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8월 30일에 있었던 '기만적인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화 획책하는 보건복지부 규탄 및 대정부 투쟁 선포 결의대회'에서 공권력은 장애인 64명을 포함하여 장애아동을 둔 부모, 영상 취재팀까지 총 92명의 집회 참석자들을 무차별 연행하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다. 오전에는 관할 경찰서였던 종로경찰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이 있었고, 또 오후에는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새롭게 농성에 돌입하였다. 하도 깨 부시고 잡아가고 돈도 없는데 벌금 때려대니까, 치사하고 더럽고 아니꼽지만 비바람 가릴 천막도 못치고 또 다시 풍찬 노숙을 시작했다.

  지난 4월 27일 중증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 맨몸으로 한강대교를 건너는 장면. 중증장애인 30여 명은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건너 서울시가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노들섬까지 기어서 행진했다.

그렇게 장애인들은 이리 저리 들이 박고, 구호 외치며 싸우고, 결국 스티로폼 몇 장 깔고 노숙에 들어간 그 날,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정부중앙청사에서는 “장애인의 삶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며 「장애인 지원 종합대책」이라는 게 발표되었다. 국무조정실, 교육인적자원부, 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여성가족부, 건설교통부, 기획예산처, 국정홍보처, 방송위원회 등 10여개 정부 부처가 합동으로 머리를 맞대어 만들었단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장애인 복지를 위한 획기적 발전 방안”의 발표를 위해 국무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이 직접 나서 부산을 떨었는데, 우리나라 최대 포털사이트에 톱기사로까지 떴으니 일단 홍보와 생색내기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그 주요 내용과 실상은? 살펴보니 아래와 같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그리고 장애인 우롱하기

이번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먼저 2007년부터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장애수당을 월 7만원에서 13만원까지 인상하고, 장애아동부양수당은 월 7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한다. 또한 차상위계층 장애가구에 대한 지원을 신설해 중증장애인에게 월 12만원을, 중증장애아동에게는 월 15만원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 예산은 어디서 나오나? 정부가 2006년의 경우 2,700억 정도를 들여 지원하던 장애인차량 LPG 보조금제도를 내년부터 왕창 축소하고 2010년 완전히 폐지하면서, 이 예산을 전용하여 실시하는 것이다. 장애인계로부터 ‘조삼모사(朝三暮四)’,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상태인데, 이게 첫 순서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정부 입장에선 제일 그럴듯한 정책인가 보다.

사실 새롭게 뭔가 나왔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가장 먼저 살펴보았던 건, 최근 죽도록 투쟁하고 있는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와 관련된 부분이다. 2005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일상생활에 있어 타인의 보조가 ‘대부분’ 또는 ‘거의 모두’ 필요한 장애인은 34만 명 정도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인원은 저소득 장애인 1만 3천 365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장애인단체와 함께 구성한 ‘활동보조지원제도 도입을 위한 TFT’ 자료에 따르면 2007년도에 국고 예산 105억, 지방비를 포함해 140억 정도를 활동보조인서비스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시간당 단가 5,000원(서비스 전달기관 운영비 포함)을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장애인 1인당 월 평균 17.5시간의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제공 받는 셈이다. 하루에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이다. 장애인들은 아침에 눈떠서 씻고, 볼일 보고, 옷 갈아입고, 휠체어에 앉고 나면 활동보조인과 ’내일 또 봅시다‘하고 인사하며 헤어져야 할 판이다. 이게 뭔가? 장애인들이 목숨 걸고 반대하는 수용 시설을 지금보다 두 배쯤 늘리겠다는 망나니 같은 계획에는 2006년 한 해에만 770억 원을 투입한 놈들이, 장애인을 우롱하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들이 피 터지게 싸워 만든 성과로, 예전에 했어야 하는 것으로 생색내기

건설교통부가 담당하는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2013년 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30~50%를 저상버스로 교체하고, 2008년까지 지하철 역사마다 엘리베이터 등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한다는 계획이 마치 새로운 정책이라도 되는 양 들어가 있다. 그런데 저상버스 도입은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이 2001년부터 4년간 정말 온몸을 바쳐 싸운 이동권 투쟁을 통해 2004년 말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작년에 이미 50%로 명시되어있던 저상버스 도입 비율이 이번 발표에는 30~50%로 애매하게 설정되어 있는데, 또 무슨 꼼수를 부리고 있는 건지 오히려 확인하고 따져야 할 일이다.

모든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는 또 어떤가. ‘교통약자의이동편의증진법’제정 이전인 1998년 4월부터 시행된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에 의하면 공공시설의 편의시설 설치에 대해 2년~7년까지 유예기간을 두었는데, 그 7년의 유예기간을 최대한 적용받은 것이 도시철도(지하철) 및 철도의 역사이다. 즉 7년의 유예기간을 다 쓴다 하더라도 2005년 4월까지는 이미 설치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직무 유기를 해도 한참을 해놓고는 그걸 2008년까지 한다고 생색을 내다니, 더구나 완전히 엉망진창인 철도 역사에 대한 계획은 왜 또 쏙 빠져 있는 건가? 지하철 선로 점거하며 싸운 것처럼, 철도도 선로를 점거하고 싸워야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셈인건가? 이것도 오히려 확인하고 따져야 할 일이다.

공교육 보장을, 의무교육을 민간 자본을 통해 하겠다고?

다음으로 눈에 띠는 것은 2010년부터 장애인 교육에 있어 유치원과정과 고등학교 과정까지 전 교육과정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실시한《2005년도 특수교육실태조사서》에 따르면 142개 특수학교와 4,676개 특수학급, 그리고 그냥 일반학급에 재학하고 있는 장애학생까지 다 합쳐도 그 수는 58,362명인데, 이는 학령기 장애아동의 추정 인구 230,045명의 25.4%에 불과한 수준이다.

즉, 장애아동 4명 중 3명은 교육기관이 없어서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2005년을 기준으로 특수교육 대상자수를 93,339명으로 ‘임의적으로’ 추정하고 교육 수혜율을 62.5%라고 얘기한다. 현재는 70.2%라고 하는데, 이건 정말 아무 근거도 없이 우기는 수준이다.) 따라서 이 많은 학령기 장애아동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려면 2010년 전에 엄청난 수의 특수학급을 증설해야 하고, 따라서 상당한 양의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얘기하고 있는 계획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민간자본’(BTL) 유치를 통해 특수학교 14개교, 특수학급 950개를 증설하겠단다. 일단 이거 가지고 양적으로도 턱도 없다. 더구나 교육 기관 증설을 민간자본을 유치해서 하겠다고? 민간자본 유치가 안 되면? BTL은 Build Transfer Lease의 약자로 민간자본이 시설을 지어 정부해 임대해주는 방식이다. 정부는 2005년 1월 기존의 ‘사회간접자본시설에대한민간투자법’을 ‘사회기반시설에대한민간투자법’으로 개정하면서, 민간투자대상시설에 학교를 포함시켰다. 그러나 기본적인 공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보장하는데 정부 예산이 아닌 민간자본 유치를 통해 하겠다는 것은, 그 발상부터가 틀려먹었다.

구색 맞추고 역설 해봤자, 엉터리고 기만일 뿐이다

위에서 설명한 4개 사업 외에 정부의 보도 자료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주거 지원 확대, 장애인 등록 판정 및 서비스 전달체계 개편(이상 보건복지부), 고용체계 혁신(노동부), 청각장애인을 위한 TV자막 방송 확대 실시(방송위원회), 정보통신 보조기기와 컴퓨터 보급(정보통신부), 폭력예방 및 피해자 보호 강화(여성가족부),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 등 11개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이건 종합대책을 발표하려고 하니 뭔가 ‘종합적’으로 보이기 위한 구색 맞추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예산이 뒷받침된 실효성 있는 정책 임을 역설”했지만, 이것 역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2007년부터 4년간 1조 5천억 원이 추가 투입한다고 하여 ‘조’ 단위가 들어가니 뭔가 있는 것 같지만, 이를 4년으로 나누면 3천 7백억 원 수준이다. 그런데 기존에 2천 7백억씩 들어가던 LPG지원금에 얼마간 덧붙여 시행하는 소득보장 사업(장애인 수당과 장애아동 부양 수당)이 3천 3백억을 잡아먹으니 남는 건 연간 4백억 뿐. 이거 가지고는 나머지 사업들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당장 활동보조인서비스에만 모두 털어 넣어도 정말 턱도 없는 예산이다.

2004년부터 대폭 축소되어 중증장애인 노동권을 고사 지경에 몰아넣은 장애인고용장려금이나 겨우 원상회복시키면 딱 맞을까? 알맹이도 없이 고용체계 혁신은 무슨 놈의 고용체계 혁신인가? 그런데 기자회견 이후 “고용 부분이 원론적이고 미흡한 것 아니냐, 예산은 어떻게 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노동부 차관의 답변이 가관이다. “장애인 지원 종합대책 중 노동 부문의 예산은 노동부의 장애인고용촉진기금에서 상당 부분 충당할 것”이란다. 장애인 의무고용 안 지킨 기업들이 내는 벌금 모은 게 고용촉진기금이다. 정부 예산은 쓰지 않고 그 돈만 가지고 땜빵하려니 고용장려금이 축소됐는데, 새로운 대책을 얘기하면서 그런 말이 나오나? 뭘 충당해? 이미 모자라 죽을 지경인데?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을 위해 장애인계와 심도 있게 논의하겠단다. 올해 5월 3일에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문병호 의원(당시 제5정책조정 위원장,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 現 원내부대표 겸 제1정책조정 위원장)은 한 장애인 단체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하여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과 관련한 사회적 비용이 1천억 원 미만으로만 소요된다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킬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고 했다. 대략 그 정도 예산은 있어야 실효성 있는 최소한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쩔 건가? 논의만 할 건가?

더 얘기 해봤자 더 열만 받고,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겠다. 마무리 하련다. 이번 대책은 지난 4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장애인들 불러다 놓고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함께 관람하고 박수치며 노래도 부른 후 획기적인 장애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에 따른 조치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딱 한 가지 면에서는 정말 획기적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몇 개월 만에 후딱 이것저것 끌어 모아 뭔가를 발표는 했다는 것. 그러나 구색 맞추고 역설 해봤자, 엉터리고 기만일 뿐이다. 이런 「장애인 지원 종합대책」에 대해 정부한테 하고픈 말은 딱 이렇다. 젠장, 장난 하냐?
덧붙이는 말

김도현 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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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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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승객

    거칠고 논리에도 안 맞다.
    또 대규모 폭동 일으킬 참인가?
    민중언론 참세상과 장애인 당신들이야말로 우라질 장난하냐?!
    나가 죽어, 이 조센징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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