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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역사적 정치현상"

에콰도르 대선 : 라파엘 코레아 승리의 의미

지난 주말인 11월 26일 열린예콰도르 대선에서 야당 조국동맹(Alianza Pais)의 후보인 라파엘 코레아(Rafael Correa)가 57.2% 대 42.8%라는 예상 밖의 압도적 표차이로 승리를 거두었다.(95% 개표결과) 부정개표 시비로 얼룩졌던 지난 10월 15일의 1차투표에서 26.83%의 득표로 1위를 차지한 알바로 노보아(Albaro Noboa) 후보에 이어 22.84%로 2위에 머물렀던 코레아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다.

당초 미국은 남미의 작은 나라 에콰도르의 대선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또한 올해 5월 페루 대선과 7월의 멕시코 대선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았음에도 좌파후보가 패배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선풍은 일단 주춤한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월 브라질에서 룰라가 여유있게 재선에 성공하고, 또 니카라과 대선에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의 다니엘 오르테가 후보가 17년만에 합법적 선거를 통해 승리를 거두면서 상황은 복잡해졌다.

라파엘 코레아 - 좌파후보?

라파엘 코레아는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개인적으로 존 스티글리츠의 제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는 쿠티에레스 퇴진 이후 플라시오 정권 하에서 경제장관을 역임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시기 코레아는 미국이 아닌 베네수엘라로부터 3억달러의 경제원조를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플라시오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었다. 그러나 코레아는 오히려 이점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강점으로 전환시켰다.

에콰도르 제1의 재벌인 알바로 노보아는 코레아를 차베스와 카스트로의 앞잡이로 몰아부쳤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1년에 30만채씩 새로운 주택건설이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서 빈민촌 선거유세에서 500달러까지 현찰, 쿠폰, 밀가루포대, 휠체어, 컴퓨터 등을 뿌려댔지만, 에콰도르 최대의 부자이자 바나나 재벌로서 아동노동과 착취에 기반한 부의 축적에 대한 의구심을 대대적인 선심공세로 막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

에콰도르 민중은 억만장자 노보아 대신에 경제학자 라파엘 코레아를 선택했다. 미국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라파엘 코레아는 2009년 만타의 미군기지 재사용 계약의 거부, 에콰도르 석유에 관한 초국적자본과의 재협상, 미국과의 FTA 거부, 차베스와의 동맹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지역블록 등 명확한 반미-반신자유주의 기조를 대선공약을 통해 표현하고 있지만, 과연 그가 진정한 좌파후보로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존재한다.

비록 대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그가 주도한 조국동맹이 의회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았고, 비록 알바로 노보아가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의회와 정치권에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어서, 과연 그가 좌파적 공약을 실천할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에콰도르 민중투쟁과 원주민 운동

남미의 반신자유주의 좌파바람 현상을 몰고온 민중투쟁의 시발점 중의 하나가 바로 2000년 에콰도르 원주민 봉기였다. IMF와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에 맞선 에콰도르 원주민운동은 2000년 봉기를 통해 정권을 퇴진시킨 투쟁의 선두에 섰다.

그러나 봉기에 동참했던 군부가 정권장악을 거부하자, 봉기세력은 민중권력 수립을 포기한 채 제도권의 일정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열린 2001년 대선에서 봉기의 지도부이자 군출신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원주민운동의 전폭적 지지 아래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이어, 최근 정치적 좌파선풍의 본격적 시작이었던 중요한 승리였다.

그러나 구티에레스는 당선 이후 국제금융기구와 초국적 자본,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선거운동 당시의 공약과는 달리 미국과 IMF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와 정치적 타협을 추구했다. 더불어, 부패문제와 맞물리면서 2005년 4월 거센 민중봉기(?) 앞에 퇴진해야 했다.

그러나 이 당시 반정부투쟁을 주도했던 중산층과 광범한 빈민층 간에 갈등이 존재했다. 구티에레스를 지지했던 에콰도르 빈민층 일각에서는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중산층이 하야시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 독자적으로 출마한 루시오 구티에레스의 동생 힐마르 구티에레스가 1차 투표에서 탈락했지만, 15~16%의 득표를 얻었던 데에서도 정치적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CONAIE(원주민민족총연합)로 대표되는 2000년 봉기의 주역인 원주민운동은 2004년 봉기를 주도한 코레아 후보의 공조제안(부통령직 제안)을 거부하고 1차투표에 정치조직 파차쿠틱(Pachakuntik)의 독자적 원주민후보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을 둘러싼 원주민운동이 분열된 가운데 대선투쟁의 결과는 2.4%에 지나지 않았다. 후보 ***은 "우리는 구티에레스를 잘 몰랐다. 우리는 라파엘 코레아를 잘 모른다."라고 말함으로써 라파엘 코레아와 기층 민중운동 간의 미묘한 긴장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대선의 의미와 향후 전망

이번 에콰도르 대선은 일차적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반미블록을 고립화시키려는 부시정권의 대외정책이 니카라과 대선에 이어 또한번 좌초시켰다. 이는 부시정권의 정치적 패배이다. 따라서 미주기구(OAS)를 통해 라틴아메리카를 자신의 세력권 아래 두려는 미국의 전략은 사실상 실패한 셈이다. 또한 베네수엘라에 이어 남미 제2의 석유수출국인 에콰도르에서 좌파정권의 출범은 부시의 전지구적 석유지배전략에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다음으로 라틴아메리카 자체로서는 이번 선거의 또다른 승자는 바로 차베스였다. 페루와 멕시코 대선에서 여당후보들은 차베스를 "악의 화신"으로 묘사하는 선거전략으로 성과를 챙겼다. 페루의 오얀타 우말라 후보와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는 각각 승리가 유력했지만, 차베스의 앞잡이란 악의적인 선전공세 앞에서 다잡은 승리를 놓쳤다. 그러나 에콰도르의 경우, 유사한 사태를 우려하여 차베스 자신이 자제했음에도, 오히려 라파엘 코레아의 공세적인 친차베스 선거운동이 막판 뒤집기를 가능하게 했다.

이로써, 멕시코와 페루에서 야비한 선거운동으로 좌파의 진출이 막혔음에도 니카라과와 에콰도르에서 다시 좌파후보들이 승리를 거둠으로써, 라틴아메리카의 반신자유주의 좌파블록의 강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번 에콰도르 대선의 결과는 에콰도르에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15년간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단 한명이었고, 지난 10년간 8명의 대통령이 권좌에 올랐지만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 3명이 불명예 퇴진해야 했던 정치적 역정을 속에서, 제도정치 부패의 사슬을 끊어내고 인구 1300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한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거대한 과제가 승자인 라파엘 코레아의 어깨 위에 주어지고 있다.

현시점에서 에콰도르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벌어진 새로운 정치적 변화의 핵심적 문제는 과연 대중적 반신자유주의를 어떻게 정치적 대안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이다. 물론 지난 10월 재선에 성공한 룰라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더 강한 압박을 받을 것이다. 비록 대륙적 수준에서 보다 비타협적인 차베스-모랄레스 블록과 타협적인 룰라-키르치네르 블록 간에 차이와 갈등이 일정하게 존재하지만, 새로운 대안창출의 과제는 이들 좌파정권 모두에게 힘든 과제임에 틀림없다. 기존의 온건한 제도정당들이 중도좌파적 타협에 머문다면, 이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방향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최근 연이은 선거에서 좌파의 승리는 21세기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새로운 역사적 정치현상이며, 그 동력은 2000년 에콰도르 원주민봉기, 2002년 아르헨티나 봉기, 2003년과 2005년 볼리비아 민중봉기 등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이다. 20세기 1970~73년 칠레 아옌데 민중연합 정부의 비극적 정치실험에서 드러났던 정치적 패배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단계의 정치적 실험이며, 근본적으로는 선거정치는 대중적 계급투쟁의 정치적 표현일 뿐이다.
덧붙이는 말

원영수 님은 국제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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