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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진보 100대 과제 만들자

[박래군의 진보기획] -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3)

박래군 인권활동가가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을 던졌다. A4 18장 분량의 이 글에서 박래군 활동가는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이 왜 필요한가를 묻고, 진보운동의 상황 진단과 함께 진보운동의 새로운 흐름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진보운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공세와 한반도 평화의 문제, 그리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과제 등을 어떻게 풀어갈 지를 짚었다.
또한 2007년 권력재편기에 진보운동이 무엇을 할 지, 그리고 한국 사회 진보의제 설정하기와 전국적 네트워크 구성 제안도 담고 있다. 2007년 한해 정세가 큰 변화를 예고하는 가운데 인권활동가의 한 주체로서 박래군 활동가가 작성한 글 ‘진보운동의 새로운 기획’은 진보운동의 과제를 정리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을 세 차례에 나눠 게재하며, 본문은 글의 마지막 부분이다.
- [편집자 주]


5. ‘진보운동의 새로운 구상’을 제안한다.

이제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왔다. 이 새로운 운동은 물론 진보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일컫는다. 진보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어떻게 가능할 것이며, 그 방향과 내용은 무엇이고, 조직은 어떤 경로를 거쳐서 구체화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도록 하자. 이는 제안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진보운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활동가들과 토론한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1) 진보운동의 새로운 구상의 가능성과 방향

앞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진보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체나 모임은 주로 ‘생태, 인권, 여성주의, 평화, 지역’ 운동을 하는 단위들이다. 이들 중에서 지역운동은 다른 세 영역과는 성격이 다르다. 왜냐하면 생태, 인권, 여성주의, 평화가 진보운동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를 중심으로 나뉘는 영역인 반면에 지역운동은 그 안에서 이들 운동들이 구현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즉 지역운동이면서 생태운동일 수 있고, 지역운동이면서 인권운동, 평화운동일 수 있지 않겠는가. 또 생태, 인권, 여성주의, 평화운동이 지역 풀뿌리 운동과 결합하여(이는 구체적인 생활을 하는 대중과 결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굳건하게 자기 운동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다르다.

이들 운동들은 개별 영역에서는 주류 운동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두면서 독자적인 운동력을 보여 왔고, 어느 운동들보다 보다 근본적이어서 타협적이지 않다. 생태주의 운동은 성장과 개발만능주의, 과학만능주의에 반대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한다. 인권운동은 민주주의의 기초이면서 원리이기도 하고,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다는 운동적 원칙은 진보운동의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다. 여성주의 운동은 군사적, 가부장적 질서에 반대하면서 젠더에 기초한 다양성, 다름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평화운동은 전쟁, 구조적 폭력, 군사주의에 반대하면서 이를 해체하며 인간의 상호존중을 통한 비폭력적 방식의 운동을 추구한다. 이런 네 영역의 보편적인 가치들은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새로운 진보담론을 형성해낼 수 있다. 이들 운동은 현재의 국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부르는 끔찍한 파국에 대한 가장 치열한 문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운동들이 서로 간의 대화와 소통을 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이들 운동이 때로는 만나기도 하지만(새만금에서 생태와 인권이, 평택에서 인권과 평화가, 이라크 파병반대 투쟁에서 4자가 연대한다) 본격적인 만남은 이루어진 적이 별로 없다. 따라서 이들 운동영역 간의 대화와 소통은 꼭 쉽지만은 않다(가령 평화와 인권 간의 대화와 소통은 쉬울 수 있으나, 인권과 생태 간의 대화와 소통은 그리 간단치 않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의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새로운 진보담론이 형성될 가능성은 충분하며, 이를 통해서 각각의 운동이 갖는 한계들도 보완될 수 있다. 그래서 각자의 문제의식은 더욱 풍부해지는 가운데 새로운 질의 진보담론의 형성을 이룰 수 있다.

아울러 이들 운동이 갖는 속성상 비폭력 불복종운동과 같은 운동의 저항의 방식은 서로 관통한다. 비폭력 불복종운동이 부분적으로 실천된 적은 있지만, 이들 운동의 결합에 의해 전면적이고 중심적인 방식으로 사고되고 제시된 적은 없다. 비폭력 불복종운동은 단지 운동의 방식만이 아니라 이들 운동영역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들 운동이 택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위의 투쟁이다(물론 이 다음 단계인 저항권의 발동 단계도 포함하여 사고할 수 있다). 이런 운동방식은 대중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고, 대중에게 호소력 있는 실천이 될 것이므로(물론 대중은 쉽게 식상하므로 늘 새로운 운동방식을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안세계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그를 통해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는 운동들은 이전의 진보운동의 이념과 단절되어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는 없다. 기존의 노동해방(자본주의적 질서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이념을 통칭해서 말한다.)의 지향을 실현하는 운동이 갖는 역사성과 긍정성을 인정하고 그 위에 이들 보편적 가치들을 녹여내면서 진보운동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노동해방의 지향과 이들 보편적 가치들이 상호침투하면서 재구성되는 것이어야 한다. 한국의 진보운동의 역사는 1990년대 이후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자발적인 운동그룹을 성장시켰으며, 이들 운동이 가진 긍정성에 동의하는 대중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새로운 운동은 기존의 진보운동을 부정하지 않는다. 민중운동은 민중운동대로 시민운동은 시민운동대로 자신의 역할과 실천이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대오는 강고하게 계급의식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 반대운동을 완강하게 전개하면 이 새로운 운동은 이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옹호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게 된다. 때로는 같은 사안과 목표를 설정하고 역할을 달리하여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보운동은 기존의 운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운동을 자극하면서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 ‘새로운 운동’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앞서 민중총궐기 시기에 우선 진보활동가들이 비폭력 비합법운동을 선도적이고 완강하게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것은 아무리 새로운 운동이라고 해도 당면한 정세에서 진보운동에 요구되는 투쟁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고, 두 번째로는 그를 통해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을 선전하고 이후를 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어떤 경로를 밟아서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조직할까?

(1) 제안

민중 총궐기 투쟁 진행 과정에서나 종료 후에 이에 대한 평가 모임과 함께 이후 논의를 제안한다. 제안은 진보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공개적으로 할 수 있으며, 개별 활동가들에게 비공개적으로 제안할 수도 있다. 핵심은 전국에서 생태, 인권, 여성주의, 평화, 지역운동을 고민하는 진보 활동가들이 이 제안에 얼마나 많이 호응할 수 있느냐이다. 이를 위해서 초기 제안자 모임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민중운동 활동가들이나 시민운동 활동가들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 그들 중에서도 기존의 운동이념이나 운동방식, 운동조직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고 이를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고 느끼는 활동가들의 의외로 많이 있다. 진보운동을 새로 세우자 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제안 대상이며, 이후 논의와 실천을 함께 해나갈 사람들이다.

(2) 한국사회 진보의제 설정하기

조직을 꾸리기 전에 먼저 우리 사회 진보의제 설정을 위한 합의회의를 수차례 개최한다. 각 운동영역별로(소주제로 나누면 훨씬 더 많은 영역으로 분화될 수 있다.) 자신들의 운동 내용과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고, 이를 통합하기 위한 논의들을 전개한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 합의되는 부분들로 예를 들어 진보적인 한국사회를 만들기 위한 100대 과제를 설정할 수 있다. 매번의 회의에서는 운영자도 호선하여 진행하고, 가장 민주적인 방식의 토론으로 진행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각자 운동의 장단점을 서로 인식하게 되고, 서로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확인하게 된다. 이때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미합의보다는 합의 부분을 존중하는 기풍을 형성하여 향후 네트워크 운영에서도 이 기풍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한다.

정세를 공유하는 외에 누군가 먼저 정리된 진보운동의 이론이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없다. 각자 자신의 운동에서 실천하면서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과제들을 제출하고, 그것을 공통으로 검토하고, 종합해내면 된다고 본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각각의 운동들이 추진해왔던 운동의 과정과 성과들, 논의주제와 그 내용에 대해서 존중하는 기풍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껏 진보운동진영은 외부의 상대와 싸우기 보다는 내부의 상대를 제압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왔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의 논의들을 집중적으로 전개하지도 못했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래서 각각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그 차이들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는 진보의제를 합의해 갈 수 있는 중요한 요소다. 차이로부터 배우고, 그 차이를 자신의 운동에 접목시킴으로서 진보운동의 풍부화와 다양화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3) 전국적인 네트워크 구성

합의회의를 통해서 설정된 진보의제를 대중적으로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에 동의하는 개인과 모임, 단체들에게 제안하여 향후 네트워크를 구성할 준비를 한다. 이 네트워크는 무슨 진보적인 담론을 형성하기 위한 논의단위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 과제들을 운동으로 풀어내려는 실천단위임을 분명히 하자. 네트워크에는 연구자, 전문가, 활동가가 모두 자연스럽게 모일 수는 있으나, 이 안에서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원칙이 관철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네트워크를 구성해가는 과정이 새로운 운동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과정임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다. 이미 형성된 어떤 것에 누가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고 함께 세워가는 과정을 제대로 밟아야만 이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주체성을 최대화할 수 있고, 이 운동을 자기 것으로 소중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이 운동의 주인은 이에 자발적으로 결합하는 모든 구성원들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개인과 모임, 단체들이 모두 포괄될 수 있어야 하며, 모두는 동일한 자격과 권리를 갖는다. 다만 네트워크의 운영을 위해서 소수의 운영단위를 설정한다.

전국적인 단위의 단일한 네트워크로는 우리가 목표하는 운동을 만들어낼 수 없다.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구성되는 지역위원회는 이 네트워크의 근간이 된다. 서울지역의 활동가들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서울을 철저하게 지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중심은 지역이다.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진보의 가치를 실천하고, 추구해야 한다. 대중들을 진보운동에 끌어들이고, 그들이 주체로 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4) 운영

네트워크의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운영위원회를 둔다. 이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해서 네트워크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는 기간 동안에 일상적인 운영을 책임지고, 회원들에게 진행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신속하게 소통하는 책임을 진다.

항상적인 소통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하며, 운영위원들은 운영위원들의 정모, 일반회원들까지 참가하는 정모를 설정하여 운영한다. 이를 통해 합의된 운동이나 투쟁은 전체회의에서 합의된 것과 같은 효력이 발생하게 하여 회원들의 자발적인 제안을 추동한다. 여기서 인터넷은 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이 운동을 조직하고 확장시키는 중요한 매개고리 역할을 한다. 수시로 이 공간에서 토론이 이루어지고, 합의가 이루어지며, 실천이 결의되고, 과제가 제시되어야 한다. 대중의 역동성을 자극하는 인터넷을 통한 운동질서를 우리는 이틀 통해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진보운동의 발전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시기에 당면한 정세를 파악하고, 이를 사업으로 외화하여 실천하기 위해 정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 정책위원회는 정책을 제시할 뿐 아무런 권한이 없다. 정책위원회는 진보정책 생산을 위해 진보운동 진영의 타 정책 단위들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처음에는 네트워크의 대표는 설정하지 않겠지만, 이후 네트워크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대표를 세우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 대표는 전적으로 대표성을 위임받는 자유위임의 형태는 아니며, 다만 대변인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명령위임적인 대표여야 한다.

(5) 보완

이후 보다 문제점들을 꾸준히 보완하면서 합의과정을 다시 거쳐 높은 질의 네트워크(다중심)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 간다. 2007년 상반기에는 이 새로운 운동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대중에게 비칠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이 시기 비폭력불복종운동 과제를 합의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준비하자. 아울러 이 운동과정에서 생기는 벌금을 해결하기 위한 재정위원회도 별도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모든 네트워크 참여 단위들에는 운동의 대중화, 지역화를 실천하도록 권유하고, 그에 대한 실천계획을 공유하도록 한다. 아울러 매 시기 제기되는 투쟁에 조건에 맞게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서로를 독려한다. 그럴 경우 기존의 진보운동의 이념을 계승한 새로운 진보담론이 실천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다. 진보담론이 어느 날 똑똑한 연구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활동가들의 실천과 성찰 속에서 세워질 것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원리를 구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네트워크는 지역주민들과의 또 다른 차원의 네트워크를 촘촘히 형성하여 한국사회의 너무도 다양하고 풍부한 진보운동 진영을 새롭게 만들자는 것이다.

3) ‘새로운 운동’ 흐름은 진보운동가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야 가능하다

모두 진보운동의 위기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진보운동의 위기를 넘기 위한 토론과 실천은 이른바 ‘새로운 진보운동’의 주체들인 진보운동의 활동가 사이에서는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이 제안자로 하여금 이런 제안 글을 쓰게 만들었다.

사실 새로운 운동에 대한 제안이랄 것도 없는 것일지 몰라도 어쨌거나 제안자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런 방식의 운동 흐름이 형성되고, 실천되어야만 할 때가 왔다 싶었다. 언제까지 각자 열심히 각자의 위치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각자의 좁은 영역 안에 머물면서 사회 전체의 진보를 위한 전망은 남의 손에 맡겨놓을 것인가?

사회의 진보는 진보운동가 전체의 책임이고, 전체가 나눠 가져야 할 운명이다. 이에 대한 대안 또한 같이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진보는 지배자들이 끊임없이 사상누각 안에 가두어 두려는 희망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그 과정은 지배세력에 대한 배신이고, 해방의 무기를 스스로 벼리는 과정일 것이다. 이런 민중의 역사를 통해서 재정립된 진보, 모든 주체들이 소외됨 없이 주체로 나서서 만들어가는 진보여야 한다.

지구화 시대의 운동의 특징은 분절적이라는 데 있다고 한다. 지구화의 다양한 측면에서의 공격에 대해 각자 영역에서의 방어도 힘에 겨운데, 어떻게 단결과 연대를 꾀할 수 있냐는 한탄이 배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진보운동의 새로운 흐름은 기성의 운동조직 내에서는 탄생될 수 없다는 것, 전혀 새롭게 출발하여 이만큼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자생력 높은 이 운동들이 연대하고, 소통할 때 가능하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정치적 대격돌기에서 우리 사회 진보의제 설정으로부터 진보운동의 새로운 흐름을 위해 나서자. 자신의 좁은 울타리 안에 자신의 열정과 전망을 가두지 말고, 함께 만들어내는 진보의 지향과 실천 속에서 운명을 같이 나눌 때 진보운동은 위기를 넘어 새로운 대안으로 서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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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

    먼저 이런 훌륭한 제안을 해주신 박래군 씨게 깊은 감사를 드리고, 정말 많은 부분을 공감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만 지적을 하고 싶은데, 그 중 하나는 '비폭력 불복종 노선'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합의에 중심을 두자는 것'입니다. 비폭력 불복종 노선은 아시다시피 이론의 여지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폭력의 문제는 앞으로 진보진영 내에서 상당히 논의되어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논의를 개방시키는 것이 급선무이지 어느 하나로 닫는 것(그것이 비폭력이든 대항폭력이든 아니면 반폭력이든)은 잘못일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문제는 한 번도 이 주제에 관해서 제대로된 치열한 논의가 진보진영 내에서 없었다는 점 아닙니까? 대항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만큼이나 비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쪽도 자신의 정당성만을 바라봤을 뿐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진시키지 못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지금 박래군 씨가 주장하듯이, 이제 비폭력 노선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독선적일 수 있고, 또 민주적인 논의구조의 마련이라는 취지에도 별로 맞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벌써 브래이크가 걸리듯, 합의와 차이의 문제도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합의만을 존중하는 경향으로 가는 것은 본의 아니게 차이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서로가 가진 차이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동의할 수 있으나 그러기 위해서는 차이가 무엇인지가 서로 일치하는 지점만큼이나 많이 논의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제안은 합의를 존중하는 기풍을 만들자는 것보다는 네트워크의 성격이 실천쪽으로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실천은 이론과 완전히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무게 중심을 실천 쪽으로 싣는다는 것은 곧 이론적인 입장들이 실천적인 계획들로 언제나 구체화되어 나올 수 있어야 하고 그 속에서만 이론적 논의들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개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합의를 존중하는 기풍을 세우는 일보다는 '실천'을 존중하는 기풍을 만들고 그 속에서 합의와 갈등을 항상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는 민주적 토론의 기풍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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