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게임을 엎어버릴 시간이 남아 있다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 <블루마블>과 <모노폴리>

딱 사나흘 남았다. 희대의 재앙을 희망의 도래라 노래부르던 역설의 대통령, ‘좌파 신자유주의자’는 마지막 사나흘의 긴장과 조바심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시기에 외유를 떠났다. 초조함인지 제 버릇 개 못주는 습성인지 중동에서조차 그도 걸프협력기구(GCC : Gulf Cooperation Council,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 6개국)와의 FTA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게 동네, 아무리 크게 잡아도 한․중․일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던 우리네 놀이의 스펙타클을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대시킨 기념비적인 게임인 <블루마블(Blue Marble)>이 처음 등장한 것이 지난 1982년이었다. <블루마블>은 지구를 하나의 푸른 구슬로 이해하고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만큼 지구를 따먹고 각국의 수도에 부동산을 올리는 신세계의 차원으로 놀이를 확대시켰다. 그것은 사소한 변화였지만 머잖아 세계관의 지평이 바뀌게 될 것임을 예견한 사건이었다. 그 무렵부터 세계와 경쟁하라는 전지구적 상상력이 사회 곳곳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던 우격다짐의 질서들은 차츰 정교한 계약과 수학적 계산으로 대체되었다. 물론, 이 혁신적 게임은 철저한 모방이었다. 우리가 <블루마블>이라 부르는 게임의 원형질은 1934년 미국에서 출시된 <모노폴리(Monopoly)>란 게임이다.

보드게임의 고전으로 불리며 버전만해도 100여 개가 넘는 <모노폴리>는 우리가 아는 <블루마블>과 거의 유사한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다는 점에서 핵심적 가치를 달리한다. 보드게임 전문사이트 다이브다이스는 <모노폴리>를 설명하는 핵심적 슬로건이 “Everything or Not"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모든 것을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없다. <모노폴리>에 관한 리뷰는 간결하고 강렬하다.

“...(중략) 단지 파산뿐... 이 게임은 제목답게 특정 색깔의 지역들을 독점해야 합니다. 모노폴리가 부루마블보다 잔혹한 것은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된다는 것이죠. 독점해서, 한 지역을 점령해서, 건물을 지으면, 정말 확실한 지뢰밭의 구축이 가능해 지죠. 주사위의 야료가 존재하는 게임에서 그 날 운 나쁘게 흩어진 땅들만 구매한다면, 그날 게임은 종친다고 봐야하는 거죠....”

그나마 <블루마블>이 승자의 일방적 질주를 막는 3회 휴식(무인도), 특정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우주여행), 사회복지기금(비주권지역), 기회의 균등을 위한 황금열쇠 등의 제도적 상상력을 통해 전지구적 상상력의 횡포와 편향을 막고 질서를 유지하여 게임의 주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달리, <모노폴리>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자산을 확보하여 상대방을 파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직선로 이외의 설계가 없다. 그렇다. <모노폴리>의 주제는 ‘완전한 독점에 의한 철저한 파산’이다.

우리는 자신감이 있으니 어서 FTA라는 주사위를 던지고 전 지구를 향해 뻗어가자는 막가파식 행패에 집착하고 있는 노무현을 바라보는 심정이 딱한 이유는 그의 정체가 문제의 본질과 복합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낭만적 믿음과 자기 확신으로만 행동하는 유아기의 사회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FTA를 추진하며 다양한 사회적 접촉을 통해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태도를 일찌감치 배제했고, 오히려 문제의 본질과 복합성을 인식한 자들을 인신공격하며 정리해왔다.

노무현은 <블루마블>을 수행할 정도의 능력(종속이론, 사회구성체이론, 민족경제론, 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등)은 자신도 있다며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분명히 말 하건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게임은 <블루마블>이 아니다.(미국은 <블루마블>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지난 1년 2개월 동안 벌어졌던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노폴리>였다.

따라서 이 게임의 결과는 너무도 당연히 “Everything or Not”의 완성일 수밖에 없으며 일말의 제도적 상상력도 발휘될 여지가 없다. 독점(Momopoly)이란 게임에서 미국계 초국적자본에 의한 새로운 독점자본주의(Momopoly Capitalism) 이외에 다른 결론은 없다. 시간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이다.

노무현식 생때의 잔재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암운을 드리우고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기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임은 종료하지 않았고 사나흘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 게임이 <블루마블>이 아닌 <모노폴리>라고 수백 번 말해왔건만, <블루마블>의 신세계가 제공하는 휘황찬란함에 넋을 나간 노무현은 이대로 게임을 끝내려하고 있다.

현실적 한계와 논리적 핑계를 뛰어넘는 전설, 추억, 낭만이 살아있어 한결 풍취가 호혜롭던 시절의 열정과 방식으로의 사나흘을 상상하자. 충분친 않겠지만 28일에는 촛불문화제가 있고, 30일 오전에는 서울공항으로 노무현이 돌아온다. 게임을 엎어버릴 시간이다.
덧붙이는 말

완군 님은 문화연대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완군(문화연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