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훈] 변호사

헌법권력을 민중에게

[특별기획 : 개헌,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5) - 87년헌법의 한계

87년 헌법 체제의 성립

모름지기 혁명 상황이 와서 민중 투쟁이 거세게 타올랐다면 그를 잠재우는 것은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하였던 대중의 요구는 무엇이었을까. 그때 가장 많이 외쳤던 구호는 전두환의 호헌 선언(전두환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금지하는 호헌조치를 한바 있다.)에 맞선 “호헌 철폐, 독재타도”였다. 호헌 선언을 철폐하고 독재정권을 타도하여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던 것이다. 그런데 “직선제 쟁취”가 모든 것을 무마하였다.

그토록 거대한 싸움을 이끌고 독재정권이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써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전두환, 노태우의 기만적인 ‘629 민주화선언’에 민중 투쟁은 일순간에 사그라졌고, 혁명 상황을 더 밀고 나가려는 세력은 자유주의 세력으로부터 배척받았다.

당시 6월 항쟁을 신민당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세력과 이에 빌붙은 세력이 주도한 결과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이때부터 진군하기 시작하였다. 서구 유럽의 부르주아혁명을 노동자계급이 밀어붙였듯이 6월항쟁으로 열려진 공간에 노동자계급은 거침없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미 직선제로 ‘모든’ 것을 타협한 자유주의 세력과 독재정권 세력은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진출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결국 7월과 8월의 역사적인 파업 투쟁을 정점으로 하여 9월 들어 급속도로 노동자계급은 퇴각하였고, 헌법 개정 문제는 민중은 배제된 체 오로지 여야 대표 각 4명으로 구성된 “8인 정치회담”에서 다루어졌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87년헌법 문제의 시작점이자 한계이다. 민주주의 투쟁은 있었으나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다. 87년헌법이 전두환 쿠데타 정권의 80년헌법에 비해 더 나아간 것은 대통령을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뽑던 것을 직선제로, 7년 단임제를 5년 단임제로 하고 대통령의 비상식적 권한 일부를 축소한 것 이외에 바뀐 것이 거의 없다.

노동자계급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라고는 일반적인 단체행동권의 제한 규정을 삭제하고, 국가․지방자치단체․국공영기업체, 공익사업체 등의 노동자들에 대한 단체행동권 제한 규정을 삭제한 것뿐이었다. 물론 노조법으로 단체행동권을 심하게 제한한 것은 전혀 풀지 안했다.

노무현정권의 개헌 논의에 대해 왈가불가 말이 많다. 헌법이 너무 많이 바뀌느니, 5년 단임제는 더 시행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 대선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정략적 개헌 논의이니 등 개헌 논의에 부정하는 말들이 지배적인 담론인 것 같다. 필자는 노무현 정권의 개헌논의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다만 헌법에 무슨 내용이 담아져야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굳이 현재의 개헌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자면 4년 연임제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을 바꾸려면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못해도 87년 6월항쟁의 민중의 요구는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기껏 대통령 임기제 정도를 개헌한다고 하여 무슨 변화가 있을 리 만무한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 헌법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87년 헌법의 한계 문제를 총론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남과 북의 헌법 성립

남에서는 매년 7월 17일을 제헌절이라 하여 국경일로 기념하고 있다. 남이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절차로서 1948년 7월 12일 국회를 통과한 헌법을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이 공포하여 (지금 헌법은 대통령이 공포하도록 되어 있다.) 제헌헌법이 시행된 날이다. 당시 제헌 헌법 제1조와 제2조는 각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되어있다.

그리고 북에도 정부가 수립되기 직전인 1948년 9월 8일 인민공화국 헌법이 공포된다. 그 헌법에도 마찬가지로 제1조와 제4조에 각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체 조선 인민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있다. 근로인민은 자기의 대표기관인 최고인민회의와 지방 각급 인민회의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남과 북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서 “민주공화국”과 “자주적인 사회주의국가”로 규정하면서도 모든 권력의 원천에 대해서는 “국민”과 “근로인민”이라고 거의 동일하게 규정을 하고 있다.

헌법 제정권력자로서 국민과 인민

헌법학자들도 헌법제정권력론을 말하면서 헌법제정권력은 오로지 '국민'(또는 인민)에게만 있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바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남의 48년헌법을 기초한 사람들이 친일파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더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할 가치도 없다. 북의 경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가 있으나 1998년 9월 5일 개정된 헌법 서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령도를 구현한 주체의 사회주의조국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자이시며 사회주의조선의 시조이시다. (중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민’이 헌법을 만든 것이 아니라 김일성 ‘수령’이 헌법을 창조한 것이라고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영토의 조항의 폭력성

대한민국 헌법에는 조선인민공화국 헌법에는 없는 독특한 조항이 하나 있다. 바로 48년헌법부터 존재하였던 영토 조항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라는 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국가보안법의 성립 근거로 활용되는데 북 지역은 미수복 지역일 뿐이며 북 지역 역시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므로 북 정권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하나의 정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에 불과하며 북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항은 아예 북 정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현실 착오적이며 매우 공격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조항을 근거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만든 후에는 엉뚱하게도 남한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인사들을 수도 없이 감옥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도구로 사용하였고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몇 년 전 송두율 교수가 학자적 양심에 근거하여 학문 연구를 한 결과물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으로 단죄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져 국제적인 조롱을 당한 것이 이 땅의 헌법 현실이다.

경제 조항의 반 민중성

남한의 48년헌법 제84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87조로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까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한다. 공공필요에 의하여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둔다”고 되어 있다. 지금의 헌법 제119조에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다. 중요 산업에 대한 국영 또는 공영 규정은 삭제되어 있다.

단박에 보아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8년헌법은 북에 사회주의 정권이 성립하고 남의 노동운동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자 그 타협점으로 이른바 사민주의 경제 정책 강령을 헌법 조항에 삽입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6.25전쟁으로 거의 궤멸되고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통해 집권하고 난 뒤에는 바로 이 규정으로 바뀌어서 지금까지 한국 경제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이 조항은 어쩐 일인지 다른 헌법적 조항들은 모두 장식적 의미로 격하되었는데 반하여 금과옥조로 받들어져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였고 현재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헌법적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중요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것이 그것 자체로는 사회주의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48년헌법도 중요 산업에 대해서는 국유화를 규정하고 있으나 이승만정권 시대를 사회주의 사회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오로지 정권의 성격과 결부되어서만이 판단될 수 있는 것임을 알 수가 있다. 참고로 북 헌법에서는 “제20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생산수단은 국가와 사회협동단체가 소유한다. 제21조 국가소유는 전체 인민의 소유이다. 국가소유권의 대상에는 제한이 없다. 나라의 모든 자연부원, 철도, 항공, 운수, 체신 기관과 중요 공장, 기업소, 항만, 은행은 국가만이 소유한다.”라고 하고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의 허구성

대한민국 헌법 제4조와 제8조 제4항은 매우 재미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통일 추진”(제4조)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제8조)라고 하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헌법적 질서에 맞지 않은 정당은 강제적으로 해산하겠다는 것이고 자본주의적 통일 방식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이 조항들에 대해 대부분의 헌법학자들은 방어적 민주주의로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는 허용되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 규정을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자본주의이지 민주주의가 아님에도 이들은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을 기본적인 헌법 원리라 하고 양심의 자유와 복수 정당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적인 헌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르주아 헌법의 자가당착적인 설명이 그 가면을 벗고 솔직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조항이다. 위와 같은 조항이 있는 것이 독일헌법인데 이 조항으로 인해 실제로 로자룩셈부르크가 조직한 독일 공산당이 1956년 위헌 정당이라는 심판을 받고 강제로 해산된 적이 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라면 당연히 이런 조항들은 삭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정당을 인정하고 자본주의적 통일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민주주의 요체인 것이다.

민중에게 헌법권력을

대한민국의 헌법 제정과 개정의 변천 과정은 철저하게 민중이 배제되어 온 채 당시의 지배권력이 민중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또는 어쩔 수 없이 밀려서 약간 양보하는 수준에서 제개정되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87년 6월항쟁의 주도 세력들은 순차적으로 이름만 달리하여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다. 이들 집권세력들은 7,8,9 노동자 대투쟁 세력에 대해 무한한 적대감을 표현하고 있다. 농민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버려진 계급이 되었고, 70-80년대 노동자 대다수가 그야말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노동을 했듯이, 지금도 불안정한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 탄생한 노동계급인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 사회의 ‘자유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87년 6월항쟁이 자유주의 세력에게 헌법권력을 안겨 주었다면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민중에게 헌법권력이 돌아와야 한다. 이것은 역사 발전의 필연적 법칙이다.
덧붙이는 말

박훈 님은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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