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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평화조항 개정강화, 진보적 개헌의 최소의제

[특별기획 : 개헌,반신자유주의 정치논쟁으로](6) - 영토-평화조항

개헌 - 꼭 필요한 일인가? 당연히 꼭 필요한 일이다. 1987년 헌법은 그 자체로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1997년 이후의 사회변화를 예비하고 있지 않았다. 여기서 국민의 권리를 넘어서는 세계시민적 권리관에 입각한 보충을 거론하는 것은 이미 사치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1987년 헌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 원 포인트 개헌 - 과연 꼭 필요한 일일까! 천만에, 정반대로 그것만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한꺼번에 뽑는다면, 게다가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 어떠한 변화도 없다면, 그것은 일당의 독식체제로 귀착될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 원 포인트 개헌 - 과연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의제”이며 “셈을 정확하게 하면 모두에게 이익만 있을 뿐, 누구에게도 손해 가지 않는 일”인가! 여기에서, 원내 양대 정당의 셈법이 어때야 하는지에 관하여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원 포인트 개헌 - 그것은 “셈을 정확히 하면” 진보정치 세력을 죽이는 개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원 포인트 개헌 - 그것은 과연 “국민적 합의 수준이 높고”, 적어도 절차적인 측면에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국민적 최소의제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1987년 헌정질서의 절차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은 당연히 대통령 결선투표제의 도입이나 국회의원 비례대표제의 확대 등이 될 것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1987년 헌정질서는 국민주권 원칙을 명백히 위배된다.

1987년 헌정질서의 통치구조상의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그것은 대통령의 정당이 당연히 의회다수당일 것이라는 전제 아래 내각제를 흉내 내었지만 이원집정제도 아닌 어정쩡한 형태의 국무총리제, 걸핏하면 국무총리 서리라는 위헌체제를 생산한다는 문제점일 것이다. 원 포인트 개헌 - 그것은 1987년 헌정질서의 절차적인 측면에서의 문제점과 관계없다. 그것은 오직 최소 4년 독재의 집정관 체제와 관련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던져야할 질문은, 현 시점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의제로서 진보적 개헌의 과제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이는 바로 영토조항의 개정과 평화조항의 강화일 것이다. 1987년 헌법은 제반 사회적 권리 및 환경권 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만 현재의 사회변화에 조응할 수 있다는 점은 물론 명백하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 이전에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의제로서 진보적 개헌의 과제는 영토조항과 평화조항에 관한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우선, 영토조항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부 극우보수파들은 지금도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을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핵심조항인 양 생각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의 핵심은 민주공화주의적 주권원리를 표현하는 헌법 제1조와 헌법 여러 곳에 등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적 기본질서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침해로부터 인권을 보장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원리와 다른 한편으로는 주권은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실현된다는 공화주의적 정치원리일 따름이다. 어느 경우에도 영토조항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적 헌법조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중세 세계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단순한 영토국가가 아니라 시민혁명 이후의 역사공간에 존재하는 엄연한 헌법국가이기에,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영토조항은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헌법들은 영토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해방의 역사적 경험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영토조항을 둘 근거 또한 충분하다. 영토조항은 통일 이후의 영토범위를 확정함으로써 한편으로 통일 과정에서의 영토주권 침해에 대처하고 다른 한편으로 통일 이후의 영토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역사적 경험, 이에 덧붙여 통일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영토조항을 둘 이유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우리가 던져 보아야 할 질문은 현재의 영토조항이 과연 그러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의 영토조항이 수행하는 기능은 그저 북한을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법원(대판 2004. 7. 22. 2002도539)과 헌법재판소(헌재결 1997. 1. 16. 92헌바6)는 일관되게 국가보안법의 합헌성을 헌법 제3조 영토조항에서 찾아 왔다. 현재의 영토조항은 그저 북한을 평화와 통일의 상대방이 아니라 수복해야 할 영토로서 간주하게 만드는 조항, 극우보수파들의 금과옥조일 따름이다.

북한 핵 폐기에 관한 2.13 합의 이후, 한나라당조차 대북관을 전향적으로 재정립하겠다고 말하는 시점에서 과연 현재의 영토조항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영토조항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동북아 평화체제의 정착과정에서 한국이 수행해야 할 적극적인 역할을 가로막는 것은 아닐까! 영토조항을 개정할 경우에만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한 것 아닐까!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1987년 헌법의 개정과 관련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최소의제는 영토조항의 개정일 것이다.

제3조 영토조항은 “통일 이후”라는 시간규정을 삽입하여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로 개정되어야 한다. 현행 조항을 그대로 두고 “단, 통일을 이룰 때까지는 잠정적으로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서 허용된 관할구역으로 한한다”(박명림,「헌법개혁과 한국 민주주의」,『헌법 다시 보기』, 창비 2007, 86쪽)와 같은 단서 조항을 추가하는 것은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여야 할 과제와 연관하여 생각하자면 적절하지 않다. 게다가 이와 같은 단서조항으로써 북한이 국가적 실체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단서조항은 영토조항 본문의 실현을 가로막는 실효지배 영역을 헌법조문에 명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은 여전히 헌법상의 영토를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로 판단될 수 있다. 그래서 개정은 단지 “통일 이후”라는 시간규정을 삽입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시간규정의 삽입은 일단 통일 이전의 영토를 명시 않음으로써 북한의 국가적 실체의 문제를 열어두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헌법 제3조는 전문 및 제4조와의 관계 속에서 합치적으로 해석되어야 하기 때문에 북한은 결국 국가적 실체로서 인정되게 된다. 통일이란 국가와 국가 간의 통일이기에, 북한은 국가적 실체로서 인정되게 되는 것이다.

“통일 이후”라는 시간규정의 삽입을 통하여, 북한은 국가적 실체로 인정되며, 나아가서 동북아 평화의 중요한 당사자로서, 그리고 한반도 통일의 유일한 당사자로서 인정된다. 영토조항의 개정이 헌법 전문 및 헌법 제4조에서 강조되고 있는 평화통일조항과의 헌법적 합치의 문제도 해결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은 국가보안법의 근거로, 반면에 헌법 제4조 평화통일조항은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의 합헌 근거(헌재결 1993. 7. 29. 92헌바48)로 각각 인용되는 상태는 ‘북한정권의 이중성론’과 같은 파행적인 해석을 낳을 따름이다. 어디 이중적으로 접근해야 할 국가가 한국에게 북한뿐이겠는가! 어떠한 해석론도 현행 헌법의 제3조와 제4조의 합치를 충분히 설명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영토조항의 개정은 대한민국 헌법의 진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전문과 제4조 평화통일조항 이외에도 1987년 헌법은 그 밖의 평화관련 조항들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48년 헌법 이후로 꾸준히 헌법조문으로 표현되어 왔던 제5조 1항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를 들 수 있다. 영토조항 개정처럼 대다수 국민의 동의를 얻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반수 이상의 국민이 동의할 의제는 헌법상의 평화조항의 개정 강화이다.

비록 헌법 제5조 1항이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5조 2항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는 안전보장의 개념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따라 해외파병을 정당화하는 조항이 될 수 있으며, 게다가 제60조 2항의 “국군의 외국에의 파병”이라는 구절로 인해 현행헌법에서 제5조 2항의 국군의 의무는 국토방위의 의무만 수행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으로 해석될 수 없게 한다. 이라크 파병과 관련된 국민여론을 고려한다면, 제5조 1항을 엄격히 하는 방향으로 관련조항을 개정하는 일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제5조 2항의 “국가의 안전보장”이라는 구절과 “제60조 2항의 “국군의 외국에의 파병”이라는 구절을 아예 삭제하는 적극적인 방식이 있을 수 있고,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적어도 안전보장이나 해외파병과 관련된 국회의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는 제60조 1항과 2항을 뒷받침해 줄 파병절차법을 제정하는 소극적인 방식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파견부대 규모 300명 이하에 한하여 국회에 통보한 후 파견할 수 있고, 국회가 5개월간 이의제기를 하지 않을 경우 동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을 포함하여 헌법상 보장된 국회의 동의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국군부대의국제연합평화유지활동파견에관한법률안’(일명 PKO법)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에서, ‘국군 및 경찰의 해외파견 절차에 관한 법률’(약칭 파병절차법)과 같은 법률을 제정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거기에는 i) 여론수렴 및 공론화 절차를 규정함으로써 정부가 국회에 파견동의안을 상정하기 전에 충분한 국민여론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밟도록 하며, ii) UN의 파견요청 공문, 구체적인 파견지역, 임무, 피해 및 위험 가능성의 정도, 파견 소요 예산, 부대편성, 무기체계 등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 및 자료를 국회에 제시하며, iii) 국회는 파견지역에 대한 철저한 조사 및 검토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며, iv) 국회가 파견지역에서의 임무 수행을 충분히 보고받고 평가하도록 하며 v) 파견 임무의 변경에 관한 사항은 사전에 국회의 동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며, vi) 파견연장 동의안의 통과 절차도 파견동의안의 절차와 동일한 과정을 밟도록 할 것이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파병절차법의 제정은 차선일 뿐이며, 한국이 국제적인 무장갈등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최선의 선택은 평화헌법으로의 개정, 즉 우리 헌법의 평화주의적 요소의 강화일 뿐이다. 그러나 파병절차법이라는 차선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기 위해서는, 1987년 헌법을 평화헌법의 방향으로 개정하고자 하는 운동이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할 것이다. 평화헌법과 관련하여 잠재적인 지지층은 이미 두텁게 형성되어 있다. 단지 이를 공론화하는 실천이 부족했을 따름이다. 제3조 영토조항의 개정 못지않게 많은 지지층을 얻을 수 있는 헌법개정 운동은 분명 평화조항에 관한 것이다.

헌법개정 -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분명 현재의 정치구도를 바꿀 수 있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개정안은 국민 다수의 관심과 동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대통령의 개정안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의제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원 포인트 개헌 - 그것은 거대 정당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사안이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저 그 일을 대통령이 주도하는 것은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러나 헌법개정안을 통한 정치로 국민 다수를 움직이고자 했다면, 개정의 방향은 거대정당들끼리 그들만의 셈법을 통해 그들 중 누구에게도 손해가지 않을 룰을 정하는 방향일 수 없다. 즉 전혀 다른 방향, 즉 평화와 통합을 절실히 요구하는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방향에서 국민적 최소의제를 발견했어야 한다.

영토조항 개정과 평화조항 강화 - 그것이야말로 국민 다수를 움직일 수 있는 최소의제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은 이 문제를 잘 알면서도 회피했을 것이다. 대통령은 오히려 보수 세력이 기꺼이 수락할 수 있는 의제, 거대정당의 권력욕망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개헌의제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이제 진보세력이 영토조항의 개정을 출발점으로 하여 평화조항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평화헌법을 수립하는 일련의 진보적 개헌의제를 추동함으로써 국민 다수를 움직여야 한다.
덧붙이는 말

금민 님은 한국사회당 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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