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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용철, 대추리, 한미FTA...당신을 잊지 않겠다

[특별기획 : X맨은 바로 너!](1) - 노무현①

피보다 붉었던 광주의 5월. 27주년을 기념하는 그곳에서 노무현은 두 무리의 의미 있는 사람들을 피했고 그리고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 만나서 이야기하자” , “당신이 애국자인가, 우리가 애국자인가”, “연설만 하지 말고 우리하고 얘기하자” 이들은 5.18정신계승과 한미FTA저지 결의대회를 마치고, 기념식장을 찾아온 광주전남지역 농민, 노동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만난 것은 물론 경찰이었다. 경찰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이는 동안 노무현은 대간첩작전을 방불케하는 방법으로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노무현은 다음날 오전 광주, 전남지역 시민사회 인사 30여 명과 함께 무등산에 나타났다고 한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지지자 350명을 만나, 이들을 상대로 약 40분간 즉석 연설을 했으며, “지난 10년 동안 역사가 뒤돌아 가고 있느냐. 제자리 걸음 하고 있느냐. 진전의 속도가 느린가”라고 물었다 한다. 그러자 지지자들은 일제히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한다. 1988년도의 청문회장에서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 앞에서 명패를 던졌던 노무현이 맞다면, 그는 무등산이 아닌 망월동에서 자신의 지지자가 아닌, 삶의 벼랑 끝에 놓인 이들을 만났어야 한다. 이날의 노무현을 있게 만들어준 광주 민주화의 빚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다면, 그러는게 옳았다.

지난 대선, 그가 대통령이 되길 바랬다

진보정당을 지지하지만, 이회창이 아닌 노무현이 되길 바랬던 나는 대통령 선거가 있던 7시간 전, 정몽준의 후보단일화 철회소식이 놀라웠고, 불안했다. 그때의 두려운 심정은 어느 평범한 직장인들의 휴가 길을 돌려 투표장으로 이끌었고 서울서 창원까지 투표하러 내려가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들은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보다 노무현의 참여정부에 그래서 기대가 많았던 것이다. 쌈지 돈을 모아 희망돼지를 정치헌금으로 보탰던 선량함은 그가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가난하고 못 가진 이들의 편이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청와대로 걸어 들어간 과거의 선배들이 나름 제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하지만 권력의 옷을 입으면 사람은 다만 권력일 따름이었다. 노무현과 그의 동료들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른 대로 정치가의 임무, 통치자의 임무는 ‘일체의 도덕적 구속에서 해방되어 위선적이 되는 것’이라는 원칙만을 철저히 지켰다. 지금 심정은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난 기분일 뿐이다.

미8군의 사열을 받으며 “한국이 공산화됐으면 나와 나의 가족 모두 아오지탄광에서 다 죽었을 것이다”는 취지의 반공맹세를 하며 미국 땅을 밟았던 그는 혈맹의 예를 갖춰, 한국군을 이라크 땅으로 보냈다. 국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파병의 명분으로 삼았다. 김선일씨가 노무현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를 살려달라고,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내지 말라고 울부짖을 때, 노무현은 한국군 추가파병이라는 공식 답변을 들려주며 무장단체를 자극했다. 결국 김선일씨는 그토록 그리던 고향 하늘을 보지 못하고 이역 땅에서 참수된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틀치 사용하는 무기 값만으로 전 세계 어린이 백신 비용을 댈 수 있는 그 전쟁에서 작년 집계만 보더라도 65만 명이 사망했고, 난민이 된 이라크인이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전투병을 파병한 노무현, 김선일을 살해한 노무현은 무등산 지지자들 앞에서 이런 변명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여러분들이 의문을 갖고 있는 것들이 있다. 이라크파병에 대해서 변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만 명이 아니라 3000명이라는 것. 전투부대가 아니라 재건부대이고 이라크 국민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이라고, 그의 지지자들 중에 그런 면피라도 세울 자들이 아직도 있기는 하나보다.

이런 그에게 평택 대추리 노인들이 935일 밝힌 촛불을 내려놓으며 통곡보다 독한 슬픔을 삼켰던 그 마음이 보이기나 하겠는가. 고작 "용산 미군기지가 서울을 떠납니다. 진보진영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의 일부는 평택기지 건설을 반대해 정부를 곤경에 몰아넣고, 이를 지원했습니다. 주한미군 나가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타당한 일이고 가능한 일입니까”라고 지껄이기나 할뿐. 그는 전략적 유연성의 대가로 더 많은 국민들을 김선일씨와 윤장호 병장과 같은 불귀의 객으로 만들기 위해, 타당하고 가능한 한미동맹에만 열심히 매달리고 있다. 그는 이미 한미FTA 체결 전부터 미국의 마름짓에 바빠, 국민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살인의 추억은 경찰방패에 숨어

5.16쿠테타 주역의 정치적 후계자들과 정적 관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아직도 자신이 민주주의의 계승자라고 착각하고 있다. 마침 610항쟁 20주년이라고 떡 벌어진 잔치상도 있겠다, 민주주의는 저잣거리에 뒹구는 우스개와 같은 꼴이다. "저는 흔히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우리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 불만을 가진 표현이라고 생각하여,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어떻든 이것은 이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우리 나라 진보진영이 보기에는 이 모두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입니까?”라는 방식으로 말이다. 당연히 노무현이 던져준 민주주의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집회를 하려면,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으며 평화시위를 위한 양해각서를 쓰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방패에 두들겨 맞아 죽어야 할텐데. 전용철, 홍덕표, 하중근...그들이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맛봐야 했던, 공포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는데, 도대체 무슨 의미를 찾으란 말인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TV광고를 불허하고 집회 참석을 막기 위해 공항의 비행기를 멈추는 가공할 능력의 대통령 눈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민주주의로 보이는가, 생각할 뿐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민중의 갈망을 훔쳐 사유재산의 욕망을 채웠던 부르주아들의 역사가 인권의 역사로 덧칠돼있듯이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민중들의 희망을 훔쳐서 얻은 신기루일 뿐이다. 물론 노무현의 엘리트들과 경제관료, 이건희에게는 화려한 봄날일 것이다.

경찰들이 데모 진압 쫓아다니느라, 촌마을의 여성들을 지키기 못했던 80년대의 추억, 다시 화성에서 치안부재에 여성들이 떨고 있다. 대추리 조그만 마을에 2만 명의 경찰을 보내고, 농민들의 집회마다, 거리 곳곳에 바리게이트를 치느라 소비되는 경찰들이 그녀들을 지켜 줬다면, 살인은 정말 추억거리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찰보안수사대는 쓸데없이 세금을 축내는 게 미안하다고 곳곳에서 국가보안법으로 사람들을 가두고, 정작 필요한 때만 되면 무능해지는 노무현은 국가보안법 하나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지 못한 주제에 민주주의를 아직도 떠들고 있다. 도대체 무슨 민주주의가 전두환이나 노태우 때 보다 낫다는 것인지, 자신감의 근저에 단지 박근혜가 박정희의 딸인 이유 말고 무엇이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한미FTA, 배반의 결정판

그는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 질서로 완벽히 개편시키고 떠날 작정이다. 한미FTA체결로 90%는 득이고, 10%만 손해라고 생각하는 노무현은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들이 ‘눈앞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이고 자신은 ‘역사의 대의를 좇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미FTA가 미국계 초국적 금용자본의 지배를 강화하고 한국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을 위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너무 근시안적이라 생각해서인지, 공공서비스 부문이 모두 해체되고 사회적 혜택이 축소되고 사회를 버티고 있는 중소자본과 영세자본, 노동자와 농민이 모두 파탄 나리라는 경고를 전혀 믿지 않고 있다. 애써 보여준 멕시코의 예는 물론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카길과 타이슨푸드, 콘아그라의 미국 농․축산물을 먹고 광우병, 유전자 조작식품에 의한 질병으로 죽어갈 국민의 건강권도 그에게는 모두 10%의 손해에 불과할 뿐이다.

어쩌면 노무현 그도 억울해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불평등의 심화, 빈곤의 가속화, 권력의 시장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책임을 왜 모두 자신이 져야하는 지 억울할 수 있겠다 분명. 사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시대, 일개 국가권력과 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자연사적 과정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가 한 모든 행위와 실수, 정책마저 프로그램 수행자로써 매트릭스 안에 있었을 뿐인데, 역사의 짊까지 모두 지고 가라고 하니, 조중동하고도 싸우기 힘든 판에, 힘도 없고 버릇도 없는 농민이나 노동자라는 것들... 경찰을 동원해 두들겨 패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돌이켜 보면 그는 정권초기부터 거대자본이나 제국주의에 굴종하면서, 이들을 위한 정책만을 일관되게 펼쳤다. 그들의 몰락이나 민중의 생존에 복무할 의지를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다. 그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슬픔에, 대추리 할머니들의 눈물에, 전용철, 홍덕표, 하중근 열사의 억울한 죽음에, 김선일, 윤장호의 외로운 넋에 함께하지 않았다. 허세욱의 희생에 조의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며 광우병으로 인한, 가난으로 인한, 무수한 재앙과 불안, 공포의 시대를 살아야할 이시대의 어린이들에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항쟁의 무덤 앞에서 정권 재창출의 바쁜 꿈만을 꾸는 그, 권력은 짧고 역사는 길다는 것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미련과 욕심이 너무 깊어 쉬이 알지는 못할 듯하다. 그런 이를 한때, 희망으로 품었던 많은 사람들의 선량함이 다치기 않기를 바랄뿐이다.
덧붙이는 말

박진 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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