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군]의 토마토 던지기

노무현 신자유주의 끝장내는 ‘사회운동의 열정’을

[특별기획 : X맨은 바로 너!](3) - 노무현을 넘어

임기를 7개월여 남긴 노무현 정권이 일부 수구언론과의 감정적 대립을 모든 언론으로 확대하는 방침을 ‘전격’ 단행했다. 대통령을 대리한 국정홍보처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조치에 애당초 최소한의 형식적 절차와 민주적 참여는 배제되었다.

민주화 세력 집권 10년,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구체적 실체가 되어 민중의 밥상 자체를 엎어버리고 있고, 권력은 하늘에 닿을듯 찬란하다. 이 모두를 집행하는 청와대는 임기가 줄어들수록 분노로 자글거리고 있다. 왜일까, 어쩌다 이렇게까지 오게 된 걸까? 노무현을 넘어 신자유주의 지배권력을 끝장내보자는 취지의 글을 밀어 올리는 동안에도 여전히 노무현이 모든 미디어의 1면을 독차지하고 끌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낭만적 회고와 뒷담화가 줄을 잇고 있다. 오늘의 민주주의가 질식사 직전의 상황에서 갸날픈 숨을 몰아쉬고 있지만, 민주화 운동을 기념한다는 이들은 87년 6월 항쟁 20주년을 상징적 정치효과를 선점하기 위한 생난리 굿판에 여념이 없고,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원 포인트 개현이 유예되긴 했지만 87년 헌법 체제에 대한 논란 역시 정치적 메아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어떤 이는 닳고 닳은 미디어 이벤트로 기획된 현장 순회를 보며 96년 겨울, 너무도 아름다워 기억마저 흐릿한 총파업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거짓말처럼 단순한 결론이지만,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혹은 경향을 가속화하는 유일한 지배체제가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명확한 개념이 아니기에 엄밀히 정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해와 오해가 겹쳐져있는 신자유주의가 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이 우문이라면 오늘의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바로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것은 현답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연금개혁이 신자유주의다. 3불 폐지가 신자유주의다. 영리 의료 법인을 합법화가 신자유주의다. 평택,제주,군산에 설치되는 군사기지가 신자유주의다. 사회적 합의주의가 신자유주의다. 무이자, 무이자를 외치는 대부업 광고가 신자유주의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신자유주의다. 참평포럼이 신자유주의다. 중도개혁이 신자유주의다. 일상적 구조조정이 신자유주의다. 비정규직을 당연시하는 정서가 신자유주의다. 누군가의 희생이 도저히 불가피해진 오늘의 현실이, 구조적인 사회적 배제로 인해 집단의 분화가 자연스러워지고 주변에 대한 공격에 무감하도록 황폐화된 우리의 정서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그래서 노무현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너무도 새삼스럽고 당연한 귀결이지만, 우리가 신자유주의를 끝장내기 위해 노무현을 쪼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벌써 ‘예정된 결론’으로 달려간다고 지레짐작하지 말자. 일찌감치 포기하고 도망간 쥐새끼들을 제외한다면 학습된 무기력을 넘어 신자유주의를 쪼개 나갈 수 있는 무지개를 찾기 위한 오랜 논쟁이 있어왔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 질서에 관한 입장 전개의 맥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장, 지역, 소수자 등등 실천의 양상도 다극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너무도 새삼스럽고 당연한 귀결이어서 체감되지 않는 역설에 현실적 영감을 불어넣기 위한 바로 그 하나의 한 순간의 한 지점의 무엇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입장의 모호함을 위장하는 애매모호한 말 돌리기를 관두자. 사회운동의 목표는 자본주의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반대란 다른 것이 아니다.

생산양식(생산,소유관계의 복합적 사회화와 지속가능한 경제로의 전환)과 주체양식(구성원 전체의 문화정치적 역능의 증대)의 동시적 변화를 추구하며 경쟁 대신 연대, 불평등 대신 평등, 획일성 대신 다양성, 위계와 차별 대신 자율과 호혜, 생태 파괴 대신 생태적 균형을 우선적 가치로 삼는 사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오늘도 자본주의의 진화는 계속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신자유주의 질서 재편 역시 긴 흐름에서 자본주의의 순환적 흐름의 일환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움직임 그 자체로 충분히 반동적이고 유일한 극복은 그 자체를 폐기하는 반자본주의 운동뿐이다. 자본주의 진화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개량적 방식으로는 자본주의의 진화 속도를 늦추는 것 이상의 성과를 결코 조직할 수 없다.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은 일상적 생동감을 잃고 박제화 된 철없음이 되어버렸다. 왜일까? 반자본주의 운동이 무참해진 이유는 물리적 억압이 강고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억압은 세련된 방식으로 연성화된 것이 문제였다.

억압은 정제의 과정을 거쳐 구조적 폭력의 코드가 아닌 체계적 욕망으로 탈바꿈되어 물매를 치고 있다. 노무현이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노무현이란 인물이 한때나마 누군가에게 희망의 이름이었다는 현상이 중요하고, 노무현의 포지션이 민주주의를 상징했다는 의미화가 중요하고 그런 노무현이 실체적으로 저지른 일들이 중요하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지만 ‘근대화 이후의 신자유주의’ 또는 ‘개발 자본주의 이후의 개방 자본주의’가 훨씬 정확하다. 지금도 많이 늦었다. 노무현에 반대하는 투쟁,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자. 노무현 퇴진 운동본부 조직을 꾸리거나,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 분담금을 내거나, 시국 인식에 대한 공동성명에 연명하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공간의 희망으로 노무현, 신자유주의 끝장내는 진짜 ‘사회운동의 열정’을 조직하자. 그런데 새로운 시․공간의 희망이 어딨냐고? 어디긴, 바로 당신의 몸 뚱아리다.
덧붙이는 말

각주)자세한 내용은 <코뮌적 생태문화사회의 필요조건 : 생산양식․주체양식의 공시적 변화, 심광현, 문화과학>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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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롤

    부적절한 예시가 있습니다. 교육정책은 노무현이 가장 반신자유주의적인 신념을 투철하게 지키고 있는, 그래서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라기보다는 이념이 잡탕된 짝퉁 진보주의자가 아니냐는 분석을 낳는 분야입니다. 3불은 노무현이 꼴통세력의 전방위 압박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지키고 있는 정책기조입니다. "3불 폐지가 신자유주의다. (중략) 그래서 노무현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말이 안 되는 것 같군요.

  • 로이엔탈

    몇년전 씌여진 글이지만. 거참 민망하네요. 신자유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는 좋으나 그래서 노무현이 신자유주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고 했나요? 정말 ㅋㅋㅋㅋㅋㅋ 또 다시 ㅋㅋㅋㅋㅋㅋ 군요. 뭐 몇년전 씌여진 글에 이제 시비걸자는건 아닙니다. 걍 한번 웃어보자는 거지요. 이명박 목소리로 한마디 해주고 싶네요.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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