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부는 비윤리적 정책 실험 그만두어야

[기고] 의료급여 수급권자 증언대회에 부쳐

이제는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초국적 제약회사 임상시험의 비윤리성이다. 작년에는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가 세인의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초국적 제약회사가 자신들이 개발한 신약의 임상시험 대상으로 제3세계 여성, 어린이, 구금시설 생활자 등을 이용한다는 사실은 몇몇 예들이 폭로됨으로써 가상현실이 아님이 증명된 바 있다. 이들이 실험 대상자로 이러한 이들을 선호하는 까닭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3세계의 인권 표준이 낮기 때문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이들이 임상시험 대가로 지불되는 공짜 약이나 돈에 현혹되기 쉬울뿐더러, 자신의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7년 한국사회에서 인권침해적인 임상시험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그 주체는 초국적 기업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이며 대상은 한국의 의료급여 수급권자이다. 기업의 인권침해적 행동을 감시하고 제어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인권침해의 주체로 나서고 있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지난 7월 1일 정부는 많은 시민사회노동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한 ‘정책 실험’을 강행하였다. 실험의 주내용은 그동안 의료기관 외래 이용 시 본인이 내야하는 돈이 없었던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도 돈을 내라는 것과, 의료급여 수급권자 중 의료기관을 너무 자주 이용하는 이들은 특정 병의원만을 가도록 강제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 시행이 ‘정책 실험’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제도가 제도 도입의 효과는 전혀 증명되지 않은 반면, 오히려 제도 도입의 부작용은 여러 측면에서 증명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여러 번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반박한 것이고, 그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정책의 인권침해적 성격과 차별적 성격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 제도는 우리가 지적한 그 제도와는 다른 것이라고 강변하며 정책 실험을 강행하였다. 제도 시행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보완장치가 과연 현실에서 작동할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제도 시행 이후 3개월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서 정부가 강행한 비윤리적 ‘정책 실험’의 부작용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들 중에 본인이 내야하는 돈의 부담 때문에 의료 이용을 기피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과는 달리 특정 병의원만을 이용해야 하는, 다른 병의원에 가려면 꼬박꼬박 진료의뢰서를 발급받아야 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의 불만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 정책이 급증하는 의료급여 재정을 합리화하고 환자들의 의료오남용을 제어하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보자. 한국의 의료 재정 증가와 환자들의 의료 오남용 현상이 비단 의료급여 환자들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이는 현재 한국 의료 시스템의 고질적 문제 중 하나이고, 한국 의료의 질적 도약을 위해 해결해야 하는 근본적 문제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시스템을 개혁해서 해결할 문제를, 여론 선동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잘못으로 왜곡하며,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지엽말단적 제도 도입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권리를 보장해야 할 정부가 할 짓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비윤리적인 정책 실험을 감행하였다. 가난한 이들이 만만하다고,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강행하였건, 아니면 실제로 그들이 가난한 이들은 ‘도덕적 해이’가 심한 이들이라고 생각하여 밀어부쳤건, 정부의 이번 실험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제도 개악에 대항해 문제점을 알리고 직접 행동을 기획해 왔던 우리 ‘의료급여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은 제도 시행 3개월여를 맞아 이번 주간을 집중 선전 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행동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가난한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소리 높여 주장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여 이와 같은 정책 실험을 감행한 이상, 우리는 가난한 이들도 자신의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정부의 비윤리적 정책 실험을 폭로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상윤 님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의료급여 개혁을 위한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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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 의료급여 , 선택병의원제 , 본인부담금 , 기초생활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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