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파렴치한 대선후보들에게

[김규종의 살아가는이야기] 신간서적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을 읽고

글을 시작하면서

2007년 11월 하순 ‘역동적인 대한민국’은 비상이다. 나라의 기강은 땅에 떨어졌고, 다수 민중은 각자도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선을 눈앞에 둔 정파들은 사생결단의 자세로 두 눈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어떤 방송사도 단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지 못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각박하고 모진 세상이 되었는지, 안타깝고 우울하다.

정윤재 비서관을 필두로 한 권부의 비리는 변양균-신정아 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뒤이어 폭로된 ‘삼성’ 비자금 사건은 부의 부도덕한 대물림에 관대한 남한사회의 어처구니없는 허점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비리 백화점’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공당의 후보가 40%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자랑하는 지구 유일의 반주변부 국가.

그런 후보를 맹공하면서 틈새시장을 노리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차떼기’ 원조의 비리 수괴인 이회창 후보의 등장은 차라리 희극이다. 하지만 그가 출마의 변으로 밝힌 대목 하나는 폐부를 날카롭게 찔러온다. 법치가 땅에 떨어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려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경고가 그것이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의 출간배경과 구성

1995년 보스턴과 뉴욕에서 출간된 웹스터 사전의 ‘culture’ 항목 제4번과 5번에 ‘교양’에 관한 설명이 있다. “교육을 통하여 사회적, 도덕적, 지적인 능력을 발전시키는 행위.” 그리고 “미학적 훈련으로 형성된 고도의 세련과 취향.” 전자는 교육에, 후자는 훈련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교육과 개인적인 노력의 중첩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교양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국내에 출간되어 경종을 울리는 서책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은 다채로운 문제제기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이 서책에는 세 사람의 공동저자가 있다. 재일조선인 2세이며 동경 경제대학교 교수 서경식. 시카고대학교 인문학부 동아시아 언어학과 교수 노마 필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왕성한 문필활동을 자랑하는 카토 슈이치.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은 2004년부터 동경 경제대학교에서 마련한 ‘21세기 교양 프로그램’의 일부로 구상되어 빛을 보았다. 그것의 취지를 머리말에서 서경식은 “공생과 공존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인문교양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그것을 위하여 노마 필드와 카토 슈이치를 초청하여 특별강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서책은 그런 연유로 세 사람의 생각을 중심으로 엮인 셈이다.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은 제1부 ‘왜, 지금 교양인가’, 제2부 ‘교양의 재생을 위하여’, 제3부 ‘전쟁과 교양’, 제4부 ‘교양은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 제5부 ‘현대의 교양이란 무엇인가’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순서와 무관하게 교양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관점을 중심으로 서책을 살펴보도록 한다.

서경식이 바라보는 교양

<교양, 모든 것의 시작>을 구상하고 펴낸 인물은 서경식이다. 그는 1980년대 야만적인 전두환 정권시절 간첩으로 몰려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고 투옥되어 죄 없이 옥살이해야 했던 서준식과 서승의 동생이다. 그는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로 국내에 머물면서 집필과 강연에 몰두하고 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디아스포라 기행> 등의 저술을 남겼다.

제1장과 5장을 집필한 그는 교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인간의 기계화와 야먄화의 속도가 파죽지세로 질주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는 교양을 통한 인간의 저항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저항은 단지 승리만을 지향하는 저항이 아니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다.

“인간은 승산이 있을 때에만 저항하는 존재가 아니다. 승산 없는 저항이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도 아니다. 저항이 목적이고, 저항을 통해 스스로를 인간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저항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12쪽)

그는 지는 것이 예정된 투쟁이라 하더라도 순순히 복종하는 인간이 아니라, 끝까지 분투노력하는 인간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가치와 존엄성을 높이는 투쟁과 저항이야말로 인간을 풍요롭게 하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진행 중인 과도한 비인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주창하는 것이다.

“자유인이 되기 위하여 교양이 필요하다”면서 서경식은 교양의 뿌리와 넓이를 통찰한다.

“타자의 시선을 통해 부단히 자신을 반추하는 반복 속에서 교양이 벼려지고 배양되는 이상적인 모습을 현대의 인문교양에서 찾고자 한다. 교양은 남보다 더 많은 밥을 차지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받고 있는 고통을 보다 크고 넓은 세상과 역사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교양이란 내가 처한 위치를 폭넓게 파악함으로써 안팎을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181-208쪽)

그는 지금과 여기에 함몰되지 아니하고, 통시적이며 공시적인 역사 안에서 자아와 세계를 살피는 강력한 도구로써 교양을 설파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근본적인 목적과 생활방식에 대한 문제를 던지며, 그것에 대한 답변을 촉구한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고 제어하는 능동적이며 주체적인 운전자로 자아를 설정하도록 인도하는 교양 말이다.

카토 슈이치가 생각하는 교양의 의미

카토 슈이치는 1919년에 동경에서 태어나 1943년 동경의대를 졸업했다. <일본 문화사 서설>로 유명한 그는 거의 모든 부문에 대한 비평가이자 작가로 이름이 높다. 리쓰메이칸 대학의 국제 관계학부 객원교수인 그는 <전후세대의 책임>, <시대를 읽는다: 민족, 인권재고>와 24권의 <카토 슈이치 저작집> 등을 남긴 다작의 저술가이기도 하다.

오늘날 고전에 기초한 인문교양이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그는 그 까닭을 두 가지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첫째로, 고전은 직업이나 기술에 직접적이고 실용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다. 고전은 요즈음 일종의 사치로 간주되어 유한계급의 지적인 도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둘째로, 민주적이고 선진적인 나라들에서 대중화된 고등교육이 교양주의를 무너뜨리도록 작동한다. 구체적인 직업과 직결된 실용적인 능력을 연마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40-43쪽)

목전의 이해관계와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고전과 인문교양은 설 땅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을 사유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가 치달려가는 능률과 성과 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살풍경한 결과다. 따라서 과학적 성과에 비하여 현저하게 떨어지는 인문학의 성과와 그에 따른 예산축소가 인문교양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런 사유에 기초하여 카토 슈이치는 교양인으로 갖추어야 할 몇 가지 화두를 말한다.

“첫 번째는 자유. 자유가 없다면, 책임도 성립하지 않는다. 시민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유와 책임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상상력. 1968년 프랑스 5월 혁명의 구호는 ‘상상력에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없애야 할 화두는 차별. 나는 능력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차별에는 철저하게 반대한다.” (50-55쪽)

명치유신의 일본헌법에서 개인은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었다. 신민에게는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는 신민은 복종만 있을 뿐 책임은 없었다. 신민은 교양인이 될 자격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보편적 이성, 인권, 휴머니즘과 같은 가치를 견인하지 못하는 교양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115쪽) 라고 주장함으로써 교양의 보편적 가치와 유용성을 주창한다.

노마 필드는 교양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서책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를 통하여 한국 독자에게도 이미 친숙한 노마 필드는 수잔 손탁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 지성인이다. 그녀는 1947년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일본문화와 문학 전문가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미국이 도발한 각종 전쟁에 대한 강력한 반감을 조금도 감추지 않는다. 그녀는 대놓고 말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미국 교양교육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65쪽)

시카고 노숙자의 75-80%가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재향 군인들이고, 요즘 노숙자들은 걸프전에 참전한 병사들이라고 노마 필드는 말한다.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격렬하게 반대한 이면에는 중산층 출신 대학생들이 대거 징집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그녀는 오늘날 중산층에 속한 미국인들의 조급하고도 불안한 일상을 선명하게 각인한다.

“언제나 불안에 쫓기고 시달리면서 더 빨리, 더 멋있게, 더 많이 무엇인가를 가지지 못하면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하며 초조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중산계급의 현실이 아닐까?” (80쪽)

이런 정신적인 불안과 공황을 극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그녀는 교양을 제시한다. 정신생활과 물질생활을 어떻게 하면 창조적으로 관계 맺게 할 수 있을까, 바로 그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고 노마 필드는 힘주어 말한다. 다채롭고 풍부한 교양의 구체적인 일상화와 실천만이 물질 제일주의와 시장 만능주의의 견고한 벽을 돌파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이다.

글을 맺으면서

<교양, 모든 것의 시작>에서 지은이들이 말하는 현대사회의 위기는 비단 미국이나 일본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각종 비리와 문제로 얼룩진 우리사회의 어두운 모습들과 대면한다. 그것의 본보기를 들자면 한이 없을 게다. 그런 문제는 어쩌면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일 터다. 그런 까닭에 교양의 의미와 가치가 더 빛나는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제왕보다 훨씬 커다란 물질적 편의와 배부름을 누리고 있다. 한겨울에 반팔 차림으로 아파트 거실을 오가고 있는 당신 모습을 생각해 보시라. 따뜻한 욕조에서 편안하게 반신욕을 하고 있는 당신은 세종임금보다 큰 호사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하여,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대한민국과 분단된 민족의 장래를 ‘지금’과 ‘여기’라는 시공간 속에서 지탱하고 있는 21세기 초 우리를 돌아보자는 말이다. 나와 가족의 범주만이 아니라, 이웃과 세상이라는 넓은 울타리를 떠올려보면 어떤가. 단돈 5천원 벌이를 위하여 한겨울 거리로 나가서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을 보시라. 그리고 삼성에서 정기적으로 뇌물 받은 검사들을 생각해 보시라.

이것은 또 어떤가! 수많은 비리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너도나도 대통령 하겠다고 큰 소리 치는 기막힌 세상이라니. 그런 자들을 떠받들고 지지하는 우리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소박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을 꿈꿔보면 안 되겠는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이 주인 행세하는 뒤집힌 세상과 이제 그만 작별하면 어떻겠는가!

<교양, 모든 것의 시작>, 서경식-노마 필드-카토 슈이치 공저, 이목 옮김, 노마드북스, 2007년.
덧붙이는 말

김규종 님은 경북대 교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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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대선 ,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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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급좌파

    눼~^^* 잘읽었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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