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공공노조

참 특별한 대통령 후원자

[기고] 이대로 묻혀질 여객기 만취난동자와 대통령의 아찔한 과거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은 언론에 늘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로 등장한다. 그 밖에 이름이 알려진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는 이기명, 문성근, 명계남 등이 있다. 두 영화배우 빼고 이기명은 라디오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를 만든 KBS 작가였다. 이 드라마는 1964년 4월부터 무려 30년 동안 매일 낮 12시 55분부터 5분간 KBS 제1라디오 전파를 탔던 대표적 반공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북한 사람들은 자주 누런 이빨에 뿔이 달린 괴물로 묘사했고, 대부분 강냉이 죽으로도 끼니를 때우기 어려운 사람들로 그렸다. 그런 이기명은 80년대 후반 KBS 노조에 강연 차 들른 노무현 의원의 언변에 반해 후원자를 자처했다. 그 덕분에 기자들은 참여정부 방송계 인사철마다 이기명의 입과 행동을 주목했다. 이야기가 많이 옆으로 샜다.

[출처: (왼쪽부터) 한겨레신문 2007년 12월 5일 12면, 조선일보 2007년 12월 5일 만평]

요즘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하면 단연 박연차 회장이다. 박 회장이 지난 3일 또 사고 쳤다. 술 취한 채 부산서 김포 가는 국내선 비행기에 타서 승무원에게 폭언과 고함을 지르는 난동 끝에 강제로 끌려 나왔다. 비행기는 박 회장 때문에 계류장으로 돌아가 허비한 기름을 다시 채우느라 1시간 늦게 이륙했다. 대통령 후원자라는 권력의 힘은 그 다음부터다. 박 회장은 경찰서 유치장이 아니라 김해공항 의전실에서 2시간가량 머물다 승용차로 공항을 떠났다. 항공안전법에는 이런 경우 경찰이 조사하도록 돼 있다. 경찰은 의전실에 찾아가 “화를 삼키시라”고 박 회장을 달래기에 급급했다. 박 회장은 김해공항 홍보대사다.

박 회장의 원래 주특기는 ‘술’이 아니다. 필로폰 환각상태에서 그룹섹스가 주특기다. 90년 2월 7일 부산일보 14면에는 <마약섹스에 중독된 스타의 윤락>이란 기사가 실렸다. ‘재벌2세와 연예인 환각 매춘 충격’이란 작은 제목의 이 기사는 관련 구속자와 수배자들의 얼굴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위로부터 전모, 임모, 이모 여성 연예인 바로 다음에 박연차 회장이 나온다. 이들은 호텔 등을 돌며 필로폰을 투약한 채 그룹섹스를 즐겼다. 이날 바로 옆 15면엔 <재벌 2세-연예인 ‘히로뽕 매춘’ 9명 구속>이란 기사가 있다. 기사의 작은 제목들은 이렇다. 일본까지 원정 가서 매춘하고 화대로 3백만-천만원까지 주고 받았다. 백화점 사장, 여배우, 탤런트, 광고모델 등이 어울려 ‘쾌락파티’를 벌였다. 일자표 연대 이정식 대표와 태광실업 박연차씨는 수배중이라는 거다.

박연차 회장은 2주 뒤 잡힌다. 조용히 숨어 지냈으면 안 잡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수배 중에도 호텔서 환각난동을 벌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검거된다. 역시 부산일보 90년 2월 21일자 14면에 경찰에 붙잡힌 박 회장이 나온다. 박 회장 얼굴 옆에는 “해운대구 한국콘도 1607호에서 난동을 부린 후 환각상태에서 웃옷을 벗은 채 잠을 자다 경찰에 검거됐다”는 사진설명이 붙어 있다. 기사의 작은 제목은 <수배 박연차씨 검거와 부산에 코카인 쇼크>다.

[출처: (왼쪽부터) 부산일보 90년 2월 7일 14면, 부산일보 90년 2월7일 15면, 부산일보 90년 2월 21일 14면]

박 회장은 참여정부 초기에도 언론에 오르내렸다. 동아일보가 취임 석 달도 안 된 노무현 대통령 일가의 땅 투기 혐의를 취재하면서 1800여 평의 거제도 땅을 발견한다. 동아일보는 제법 잘 물고 늘어졌다. 대통령 형 건평씨의 부동산 투기의혹을 본격 제기했다. 당시 노건평씨 처남 소유였던 이 땅은 이후 박 회장이 사들였다. 동아일보는 이때 박 회장의 셋째 딸이 집권 초 청와대 국정상황실에 8급으로 채용된 사실도 밝혔다. 나는 그때 동아일보의 실력에 놀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90년 초 박 회장의 마약복용을 더 캐면 대통령의 아찔한 과거가 드러날 걸로 봤다. 이 정권이 좌초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파이팅은 거기서 끝이었다. 여기까지 읽은 참세상 독자들은 “그래서 박 회장이 우리 진보진영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고 항변할 거다.

박연차라는 이름은 부산에서 80년대 노동운동을 했던 이들은 모두들 악몽으로 기억한다. 박 회장은 삼형제다. 이들은 80년대 부인들까지 합쳐 부산에서 제법 큰 고무공장의 하청회사를 상당 수 운영했다. 그 하나가 박 회장 동생 박연록이 운영하던 아폴로제화다. 이 회사에 노동조합을 만든 이들은 백주대낮에 구사대에게 얻어맞고 장애인이 되거나 우울증에 시달렸다. 아폴로노조의 간부였던 우상태 동지는 아직도 악몽을 꾼다. 가장 악질로 민주노조를 탄압했던 이들 삼형제의 이야기는 세월에 묻혔다. 인권변호사 대통령은 그런 박 회장을 이번에 북한 갈 때 특별수행원으로 동행시켰다.

90년 박 회장의 환각파티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소금꽃나무를 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물어 보시라. 김 지도위원은 천하의 악법 제3자 개입금지 위반으로 부산구치소에 수감돼 박 회장과 함께 잡힌 여배우들과 한 방에서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온갖 난교를 다 들었다.
덧붙이는 말

이정호님은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교육선전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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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 김진숙 , 박연차 , 정재계 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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