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운동"에서 후퇴하는 현장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후 불과 두세 달 동안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느낌이다. 진보신당이 만들어지는가 싶더니, 이 당의 재창당 파트너로 "노건추"가 등장한다. 노동자의 힘은 노동자계급정당(추)을 내년 초까지 건설한다는 방침의 안을 총회에서 결의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을 위한 토론을 제안하고 있다. 해방연대(준)는 민주노동당을 집단탈당하고 사회주의정당을 건설하자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각자가 서로를 비판하는 모습을 보면 모두가 함께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니, 이대로 각 정치세력들의 정당준비과정이 ‘성공’한다면 남한의 노동자계급은 자신을 위한, 혹은 자신의 당을 대여섯 개는 갖게 되는 셈이다. 이들 중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거나 혹은 가입 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져야 하나?
역설적으로, 현장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완전한 혼란에 빠져있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조합원이나 현장활동가들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정당의 가입원서도 내밀기 힘든 회의와 불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미래를 전혀 낙관할 수 없다. 심지어 분당과 탈당을 주도한 진보신당 쪽 노조 집행부들도 조합원들에게 민주노동당 탈퇴를 조직할 수는 있었지만 진보신당 가입을 조직하는 데는 벽에 부딪혀있다.
말하자면 진짜 문제는 그럴듯한 강령과 조직을 갖춘 어떤 정당이 없다는 것 이전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런저런 이름의 노동자계급정당 혹은 사회주의정당을 준비하는 활동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 빨리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서 현장 노동자에게 다가가자!"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미 노동자들의 냉소가 커지는 속에서, 현장의 정치운동이 소진되고 경제주의로 후퇴해가는 과정에서, 그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자신만만한 태도다. 현재 상황을 보면 노동자정당은 더 분할될 것으로 보이고, 그것은 대중운동과 대중조직의 분할로 연결될 개연성이 커 보인다.
논쟁에 임하는 방식
기왕 정당 건설을 주장하는 공개적인 제안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논쟁이 시작되었으니, 정치세력 간에 논쟁은 책임있고 치열하게 진행되어야 마땅하다. 논쟁은 단지 하나가 아닌, 다양한 쟁점으로 진행될 것이고 무엇보다 정치세력들 사이의 차이는 물론 하나의 세력 안에서도 존재해왔던 모순을 드러낼 것이다. 모두가 자신들에게조차 얼마나 솔직할 지가 궁금해진다. 다 언급할 수는 없으니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예를 들어 노동자의 힘이 제기하는 당의 성격은 무엇인가? 어떤 문서를 보면 볼셰비키 모델에 가까운 중핵정당으로 보이고, 어떤 문서를 보면 이념은 급진적이지만 혁명가의 중핵정당은 아니었던 60~70년대의 이탈리아공산당과 같은 유로코뮤니즘 정당을 떠올리게 한다. (지역운동과 결합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정당,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정당 등의 상도 제시되는데, 그런 정당이 노동자의 힘이 제안하는 "정파들의 연합"으로서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 경로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지는 토론이 필요한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사실상 다른 모양의 당들을 "노동자계급정당"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왔다면 그러한 모순을 생산적으로 작동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보신당을 보자. 이분들은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편에서 민주노총 산하의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노조 상층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노건추"가 추진되고 있다. 배타적 지지 방침 폐기와 함께 "민주노총당" 극복을 주장하는 진보신당은 노동조합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국민정당화"한 영국의 신-노동당과 같은 방향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스타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신당의 미디어 정치와 결합되어 노회찬 씨나 심상정 씨를 남한의 토니 블레어로 만들어갈 수 있다. 민주노총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변혁적이고 사회운동적인 방향으로 "민주노총 혁신"인가, "탈(脫)-민주노총"인가라는 선택이 문제일 텐데, "과감하게도" 진보신당은 후자를 주장한다. 이런 와중에 또 한편으로는 민주노총에 기반하는 "노건추"와 연대를 시사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런 눈에 보이는 명백한 모순들도 봉합만 하고 가서는 앞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이런 조건에서도 이석행 위원장의 민주노총 집행부는 민주노동당과 함께 이미 붕괴한 배타적 지지방침을 막무가내로 강변하는 중이다. 이로서 집행부가 앞장서서 오히려 모든 종류의 노조의 정치운동을 우스운 것으로 만들고 대중조직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노건추만의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과 연관되어, 위에서 언급한 모든 정치세력이 언급하는 쟁점이다. 그런데 배타적 지지 방침은 노동조합의 공식조직이 노동자정당 운동에 결합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이러저러한 정당 건설운동에 대해서 노조를 모두 분할해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그거야 노동조합 집행부들이나 신경 쓸 문제라고 치부하거나 혹은 노조의 공식조직은 관료화되었으니 현장활동가들만 조직하겠다고 말한다면 쟁점 자체가 의미가 없겠지만 말이다.
정당들의 분할, 노동자운동의 분할
그래서 문제는, 정당들의 분할이 노조, 그리고 노동현장을 분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지금같이 서로 비판 혹은 비난하기 바쁜 구도에서는 분할은 가장 손쉽게 자신의 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이미 각 정치세력이 제안하는 정당 건설의 경로와 방식이 "정치세력간 논의"를 주되게 상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혹시나 통합하려하더라도 일단은 "세"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게 될 공산이 크다.
이 대목에서 요즘 상황에 시사적인 글 하나를 인용해보자.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알튀세르는 1970년에 쓴 <재생산에 대하여>(동문선)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은 첫 번째 사건(노동자 정당들 사이의 정치적 통일)이 터지면 '경계 태세'의 수위에 도달한다. 두 번째 사건(노동조합들 사이의 조합적인 통일)이 터지면, '긴급태세'의 수위에 도달하고 세 번째 사건(다수의 노동자 및 그 지지자들의 경제적·정치적 계급투쟁의 통일성)이 터지면 '계엄령'의 수위에 도달한다. 왜냐하면 이처럼 단계단계로 갈 때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부르주아 국가자체이기 때문이다. (196쪽)
재치있는 이 문장은 불행히도 우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마주친 상황은 이렇다. 첫 번째 사건의 반대방향이며, 더구나 더욱 좋지 않은 점은 두 번째 사건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전개될 우려가 대단히 큰 데다가, 결국은 세 번째 상황은 아예 불가능하도록 현장에 불신과 패배감이 만연하게 만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운동의 단결과 재건, 대안사회 이념의 재건
현재 우리에게 없는 것은 성장하고 단결하는 대중운동, 그리고 이미 패배하고 만신창이가 된 20세기의 그것을 넘어 재구성되는 대안사회 이념이다. 대중의 정치적 단결과 진출을 위해 꼭 필요한 이 두 가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정당 건설의 시도는 어느 시기보다 활성화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내리막길의 대중운동을 다시 분할하고 사회주의 이념의 재건이 아니라 교과서 논쟁 혹은 변혁 이념의 청산으로 나갈 판이니, 이 악순환의 장면 앞에서는 우울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오히려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대중운동의 부활을 위해서 이명박 정권의 형태에 대해 벌써부터 폭발 조짐을 보이는 대중의 불만을 조직하고 투쟁할 수 있는 정치적 전선을 설치하고 운동의 단결을 조직하는 방식. 이를 위해서는 예컨대 사노련이 제안하는 "자동차산업 주간연속 2교대 투쟁 및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투쟁"도 투쟁과제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의 약점을 찌르고 대중을 결집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현장의 경제적 쟁점만이 아니라 (다시!) 한미FTA 반대 투쟁, 쇠고기 수입반대, 대운하반대투쟁과 같은 투쟁을 주도할 수 있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계획하는 "공공 공투본"이나 "국민연대"를 경유하든, 아니면 휴면상태에 있는 "한미FTA반대 범국본"을 재조직하든 대중투쟁의 전선을 시급히 복구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NL정파조직으로 전락한 "한국진보연대"를 민주노총이 강조한다면 그때는 전선체를 앞세워 투쟁전선을 파괴하는 유례없는 희비극이 연출될 것이다.) 이런 투쟁 과정을 공동으로 전개하는 과정을 통해서 대중운동, 대중조직이 다시 정치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과 함께 대안사회의 이념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들 사이의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되어야한다. 가장 강력한 대안사회 이념이었던 역사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이 불명예스럽게 몰락한 상황에서 한편에서는 '교조의 고수'가, 한편에서는 '완전한 청산'이 일반적인 입장이다. 그러나 변혁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역사적 운동을 평가하고 20세기 초의 금융화된 제국주의가 아니라, 21세기 초의 신자유주의 금융-군사세계화에 맞설 수 있는 이념을 재구성하는 것이 문제이다. 다만, 이러한 논쟁을 정당 건설 경로에서 필요한 하나의 사업과 같은 것으로 배치해서는 어떤 생산적인 이념의 재건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히려 이러한 대안사회 이념의 재건을 통해 좌파 자체가 새롭게 재건될 수 있을 것이다. 각 정치세력이 추진하는 분열적인 정당건설 일정보다는, 이러한 대안사회 이념의 재건을 위한 공동의 토론과 실천과정에서 지도력을 갖춘 좌파집단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정당들과 정치세력, 대중운동들을 관통하면서 말이다.
각자 자신의 정치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실천을 하는 것은 각 조직들의 당연한 권리다. 그런 각자의 활동을 통해서 운동전체의 총합이 커진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활동 방식들이 어떤 정세에서는 서로 충돌하거나 운동을 분할,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노동자의 힘과 사회주의노동자연합, 해방연대 등의 여러 정치운동세력들은 그 규모와 성격이 모두 다르지만, 우리 운동의 훌륭한 공기(公器)라는 점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치 운동이 크게 후퇴했다는 점이 확인되는 지금 같은 시기에 선 우리가 부르주아들을 떨도록, '계엄령'의 공포에 내몰기 위해서는 좀 더 긴 과정, 실천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 실천 속에는 지금 각 조직이 제안하고 논쟁하는 정당 건설의 일정과 방법만이 아니라 다른 과제들이 또 있다. 예컨대 내가 제안한 것과 같은 대중운동의 단결과 재건, 대안사회 이념의 재건이 그렇다. 이미 각 정치세력들이 정당건설을 위한 논쟁을 제기한 상황이니, 아마 이후의 상황은 상당부분은 "자동으로" 진행될 것 같다. 그러나 정당건설을 추진하는 동지들에게나 동참하지 않는 동지들에게나, 운동 공동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자세가 우선되는 것은 엄혹한(어느 때 보다 이 표현은 '수사'가 아니라 현실자체다) 2008년의 정세를 돌파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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