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택] 참세상 논설위원

너무 늦은 사회주의 공론화

[기고] 사회주의노동자연합 기획 수사를 대하며

그렇다. 벌써 일어났어야 할 사회주의 공론화 작업이 그동안 너무도 오랫동안 지체되었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의 자유주의 정권 10년 동안 한국의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정치세력, 사회주의 운동은 정치적 시민권을 획득하는 일에 너무도 안일했으며, 너무도 힘을 쓰지 못했다.

그랬었다.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노동자 민중들과 정치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배세력과 맞서 싸우는 일에 내내 머뭇거리거나 망설였다. 힘의 역학상 사회주의를 전면화, 공론화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거나,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대체할 대안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사회주의자, 사회주의 정치세력, 사회주의 운동을 너무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이번 이명박 정부와 공안세력의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기획적, 의도적 침탈은 바로 ‘어이없는 일 vs 예상된 일’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공론화 작업이 지체된 것에 대한 일종의 역사의 복수라는 측면도 함께 담고 있다.

‘아직도 사회주의냐’라는 비난과 조롱은 논외로 치더라도, 사회주의는 지난 10년 동안 진보의 그늘막에 갇혀 있었으며, 진보의 주변부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처지에 머물러 있었다. 진보도 힘겨운데 사회주의는 더더욱 어렵거나 안 된다는 기류가 암묵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모든 운동은 현실이라는 괴물 앞에서 그저 사안별 대처를 하기에 급급했으며 그마저도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따라서 단 한 번도 현실이 된 바 없다. 사력을 다해 현실을 쫓으면 쫓을수록 현실은 신기루 마냥 하염없이 흩어지거나 사라지곤 했다. 아무리 현실을 쫓고 현실을 짝사랑해도 그 현실은 늘 우릴 비켜서거나 배반했다. 하지만 현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현실은 스스로 능동적일 수 없으며, 주체가 될 수는 없다. 현실은 언제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한낱 역사의 산물일 뿐이다. 바로 그 현실을 있게 한 데 우리 역시 한 몫 거들었다. 우리 역시 오늘의 현실을 낳게 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에 대한 탄압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것이 어이없는 현실이든, 예상된 현실이든, 아니면 역사의 복수이든 간에 이미 엎어진 물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금부터는 피차일반이며, 피차 마찬가지다. 벌어진 현실을 누가 담아낼 것이며, 누가 차지할 것인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먼저 맞았다고 계속해서 맞아야 할 이유는 없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북의 체제’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적용이 틀렸다는 말은 반만 맞다. ‘북의 체제’에 대한 정치적, 사상적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이를 이유로 범죄시하거나 처벌을 하는 것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촛불 집회에서 특별하게 도드라진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논리도 맥락상 위험할 수 있다.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은 그 연원과 관계없이 자신들을 분명한 사회주의 정치세력으로 천명하고 있으며, 촛불 집회에서도 최선을 다해 개입하고 참여했다. 그것이 왜 문제가 되며, 더구나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이명박 정부가 공안탄압을 저지르고 있으며 공안정국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신권위주의’의 도래, 또는 ‘5, 6공’으로의 회귀라는 주장도 할 수는 있다. 특히나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까닭에 이른바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조차도 위협받고 있으며, 어느 활동가의 말마따나 이번 사건을 대하는 데 무슨 “높은 정치의식과 복잡한 사고가 필요치 않은” 것도 맞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은 ‘5, 6공’ 시대와는 너무도 다른 정세이다. 대중적 노동운동이 성립되어 있는 것은 물론 ‘진보세력’이 의회에 진출해 있고, 시민사회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한국 민주주의 또는 국내 지배세력의 후진성과 폭력성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런 만큼 한국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한국 사회는 이미 충분할 만큼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한 전형에 속한다. 이번 사건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가 부족해서 발생한 측면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성숙이 낳은 결과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 아래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과 형태를 띠고 있다. 지난 대선, 총선 과정과 결과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끝없는 갈구가 결코 인류의 미래일 수는 없다. 위기로 치닫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더 이상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도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 또는 반자본 운동이 더 이상 한낱 개념이나 구호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왜 가장 현실적이며, 그것이 왜 가장 빠른 방법이며, 그것이 왜 가장 옳은 길인가를 놓고 이제 정면 승부, 정면 돌파를 해야 할 때이다. 아직 준비가 부족하고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그것대로 과제이다. 그렇지만 그 과제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서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세우고 하는 과정에서 단련시키고 다듬어가야 한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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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탄압 , 사노련 , 사회주의노동자연합 ,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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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남대문 시장에 가면 "검은 선그라스"는 얼마든지 살수있다.
    검은 선그라스 가격은 몇 천원짜리에서 부터 가격은 다양하다.
    검은선그라스의 용도는 햇빛을 가리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경제와 정치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검은선그라스의 용도가 다양화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검은색 선그라스로 햇빛을 차단하면 세상은 검게 보인다.
    그 검은세상이 잠시 정치와 경제의 위기에 검은선그라스가 활용될수도 있지만 오래 쓰게되면 눈을 버리게 되고 결국 실명하여 세상을 볼수없음으로 과속의 질주는 죽음의 운명으로 나갈 뿐이다.

    지금 검은 선그라스의 용도는 정치와 경제의 위기에서 정권이 필요할 것이다.
    "타이밍"이다.
    타이밍이 적절한가?
    여기에서 사회주의자는 너희가 타이밍이 정치경제적이라면 우리도 타이밍이 주체적이다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는것 같다.

    솔직히 검은선그라스와 용도에서 이것을 기획한 현실을 보면 좀 코메디 같은 느낌은 지울수 없다.
    이명박정권이 이렇게도 다급한 처지에 있다는 말인가?

    사회주의자는 원래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민중들의 현실에서 정치와 경제의 민주주의가 오히려 권력을 위한 자본의 기득권을 위한 역사에서 그는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의 죽음으로 부터 진실을 보게되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길은 사회주의도 정치운동과 제도에서 자유로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론에 대하여 명확히 비판하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 그 폭력의 야만성을 정치문화에서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동시에 반민주적인 요인은 지양해야 한다는 신념인듯 하다.

    이것이 그의 사회주의론의 전제이면 그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정치 활동은 공개적이며 민주주의의 바탕에서 대중적 신뢰로 한국사회의 정치경제의 민주주의 모순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보며 이러한 자신의 정치철학의 믿음과 대중들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은 자칭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그들의 정치모임 활동단위가 이전의 비인간적인 조직활동의 문화와 이런것을 동시에 비판하는 자세로써 공개이며 그래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사회에 이성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말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천박함들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자신들의 과거에 대하여도 그 천박함의 역사적 성찰을 동시에 고하며 새로운 사회주의자로써 진실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길을 찾아나서고 있는것 아닐까?

    그렇다면 사회주의자가 주장하는 이러한 고뇌의 맥락은 우리사회가 어떤 정치와 민주주의 길에서 이들과 진보적 담론을 비판적으로 제기하고 새로운 정치활동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가?

    보수정치권도 마찬가지인데 무조건 분서경유의 시대의 복고풍은 우리의 민주주의 현실의 역사수준을 볼때 검은선그라스의 기획은 한마디로 코메디라고 사회가 풍자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상의 진보와 보수가 민주주의에서 어느정권은 보장하고 어느정권은 그것을 탄압하면 세상은 과히 탄압하는 정권의 정치 철학의 빈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모르겠다.댓글을 달아 보았지만 사회주의자가 외치는 진실에 대하여 우리사회가 얼마든지 그것을 수용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하며 정치경쟁의 민주주의 길에서 상식적으로 인정될수 있는 것을 족쇄 채우는 현실에 대하여 이명박정권의 정치수준을 각성하는 계기가되는것 같으며 합리적인 정치경쟁 보다 종교적 신앙의 믿음이 정치를 예속하게 되면 우리사회는 불행이며 그는 결국 머지않아 불행을 맞게될 것이다.

  • 김정구

    우리나라 헌법에 우리는민주공화국이다 라고 명시되어있는데 사회주의 연합 노동뭐라고 하는 것이 벌써 나라를 망치려는 세력아닌가 그렇게 사회주의가 하고싶으면 헌법을고쳐라 누구를위한 사회주의인가 성공한 사회주의는 어느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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