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이메일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여 파장이 일고 있다. 검찰은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한 이유에 대하여 이메일 내용이 광우병 보도에 있어 "왜곡" 의도를 추정할 만한 "중요한 자료"이고 "공소사실에도 이 부분이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대한민국 검찰이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을 공표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보인권 활동가로서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한 검찰에 대한 적개심이 하늘을 찌를 정도다.
수사기관이 수사나 기소 과정에서 이메일을 증거로 사용하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그것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완전히,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11조 "비밀준수의 의무"에서는 "통신제한조치의 허가·집행·통보 및 각종 서류작성 등에 관여한 공무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자는 직무상 알게 된 통신제한조치에 관한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를 위반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해진다.
그런데 검찰이 이메일 내용 공개를 두고 회의까지 했다더니 자신들에게 통신비밀보호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나 보다. 문제의 이메일은 "감청"한 것이 아니라 "압수"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지적되어 왔듯이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압수수색되는 과거의 이메일을 보호하지 못한다. 통신비밀보호법이 만들어졌던 시기에 '통신'이란 현재나 미래에 전화를 거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저장매체가 크게 발달하면서 이메일, 메신저, 심지어 유무선 전화까지 모든 통신 내용이 저장매체와 연동되어 상시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저장되는 일이 흔하게 되었다. 수사기관이 저장된 내용을 "압수"하여 마음대로 활용해도 이에 대해 아무런 제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주경복 서울시 교육감 후보 사건처럼 수사 내용과 무관한 이메일을 무려 7년치나 압수해 가는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이메일에 대한 보호가 현행 법률의 사각지대라 하여 통신의 비밀을 보호한다는 헌법 취지가 사라질리는 만무하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의 맹점을 이용하는 꼼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법에서 통신의 비밀을 보호하려는 취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통신비밀은 헌법 제18조에서 명시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공적인 이유로 수사기관이 그 비밀을 침해하더라도 그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메일 언론공개 불가피했다면 증거가 부족한 부실 수사 의미
무엇보다 이메일 공개로 검찰이 입증하고자 하는 점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라니 섬뜩할 뿐이다. 청와대는 검찰의 발표 내용을 받아 제작진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다며 환영 논평을 냈다. 그러나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전체 프로그램을 좌우했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일 뿐더러, 대통령을 미워하는 것을 범죄라고 볼 수 있는가? 이 세상 누구나 정치적 성향을 가지며 그 정치적 성향에 따라 투표도 하고 대통령도 뽑는다. 양심과 신념의 자유는 헌법에서 특별히 보호하고 있는 권리인데 이를 문제로 삼는 것은 사상 검증과 다를 바 없으며, 사상 검증이 백주대낮에 발생하는 나라를 도저히 민주국가로 볼 수 없다.
검찰이 피의자의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정녕 불가피한 일이었던가? 그것이 불가피했다면 그 이외 증거가 부족한 부실 수사라는 의미일 것이다. 재판 과정과 별도로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피의자를 여론으로 먼저 재판하려는 정치적 의도일 뿐이다. 생뚱맞지만 2006년 신정아 사건이 떠오른다. 그때도 사적인 이메일 내용이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검찰의 여론 재판에 이용되었다. 미네르바에 대해서는 어떠했는가. 1심 재판에서 미네르바는 무죄로 풀려났지만 검찰이 수사 내용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학력과 직업을 언론에 공개하여 무고한 개인을 사회적인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이번엔 검찰이 개인의 신념에 대한 내용을 문제삼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과 신념은 당신들의 정치적 무기도, 사상 검증의 대상도 될 수 없다. 검찰은 그 몹쓸 버릇을 당장 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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