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김규종의 살아가는이야기] 권력자 논리가 의연하게 대한민국을 지배하지만

올겨울은 여느 해보다 따뜻할 거라는 기상청 예보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서운 추위가 반도를 감싼다. 이상기후로 세계 시민들이 같은 고통을 경험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릇된 기상예보의 질타를 회피하려 함은 얕은 수작일 터. ‘747공약’을 내세워 국민을 호도한 정당과 대통령의 시도 때도 없는 분탕질도 같은 맥락이다. 무슨 할 일이 그리 없어서 ‘4대강’이니 ‘세종시’니 하여 ‘종합짜증세트’를 신년 벽두부터 들이대는 그들의 얍삽한 낯짝을 보는 건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신역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잠시잠깐 스치듯 본 글에서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문구를 보았다. 야릇하기도 하고,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뭔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그랬다. 어떤 고통스러운 일도, 아름다운 추억도, 영광과 오욕의 순간도 결국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는 것은 없다. 불멸한다는 영생불사의 존재인 신 또한 인간의 지구 거주가 소멸하는 날, 동반사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신들만의 공동체는 얼마나 스산하고 쓸쓸하겠는가, 생각한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의 공허에 우뚝 솟아 있는 누천년의 거대한 ‘앙코르와트 유적’을 떠올려보시라.

하지만 삶에 허여된 시간을 생존과 가치에 투사해야 하는 인간이 지나쳐서는 아니 될 것이 있다. 당연히 ‘그것 또한 지나가리라’가 아니라, 그것을 결연히 지나가지 못하게 해야 마땅한 것이 있다는 말이다. 장자연 사건이 그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이미 망각된 여인 장자연. 2009년 3월 7일 자살로 스물아홉 해의 짧은 생을 마감한 장자연. 그녀의 죽음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현주소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물음표이자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다.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육신과 성공을 향한 열망 밖에 없었던 여인. 세상 남자들은 그런 여인을 노류장화의 노리개처럼 놀렸다. 방송사 피디, 언론사 사주, 정보 통신업체 사장 등과 같은 권력자 손아귀에서 그녀는 싸늘한 주검으로 화하였다. 126일에 걸친 장기간 수사와 수십 여 명의 인력을 동원한 경찰의 사건수사 결과발표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경찰이 사건관련자 12명 대부분을 무혐의 처리하고, 소속사 전 대표와 매니저만을 불구속 기소하여 사건을 종결했기 때문이다.

사건에 커다란 관심을 가졌던 대중은 시간과 더불어 시나브로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었고, 관련 언론사도 바라던 대로 세상의 눈길에서 멀어져갔다. 장자연이 일급 여배우였거나, 돈과 배경이 탄탄한 가문 출신이었다면, 혹은 해당 언론사가 지방의 소규모 언론사였다면 어찌 됐을까. 그래도 세상과 대중은 그토록 빠르고 차분하게 사건을 망각하는 길로 치달아 갔을까, 묻고 싶다. 누구도 세상에 대놓고 까발리지 않는 이런 사건들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치명적으로 발생하는지, 누구도 모르고, 누구도 알려하지 않는다. 권력자들만의, 권력자들만을 위한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노태우 일당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면서 검찰 권력이 세상에 유통시킨 기막힌 명제다. 그들의 논리는 오늘도 의연하게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성공한 자들은 - 성공의 방식과 수단은 누구도 묻지 않는다! - 영구적인 면책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과 명성을 얻으면 그뿐, 과정과 방식에는 물음표를 던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중은 그런 자들의 돈과 권력과 명성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정통성과 명예를 부여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부자가 대접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인 까닭은 거기에 있다.

출세가도를 향한 피나는 질주와 속임수, 음모와 패거리 짓기가 기본원리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성공은 야비한 인간들의 종점이다. 킬리만자로의 ‘고독한 표범’이기보다는 썩은 고깃점으로 배를 채우려는 ‘하이에나’들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21세기 대한민국. 고귀하고 거룩한 그들만의 원칙 아닌 ‘원칙’을 성경구절 암송하듯 뇌까리는 권력자들과 그 하수인들의 썩은 피에 젖은 입술을 보면서 절망한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거두어들이고, 손바닥 뒤집듯 거짓을 일삼는 자들이 권부의 핵심에 자리하는 한 그 사회는 전진할 수 없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과 죄의식을 가지고 과거와 현재를 응시하면서 미래전망을 가져야 그나마 어렴풋하게 가능한 것이 역사의 진척이기 때문이다.

장자연은 죽어서도 편하지 않을 것이다. 한 맺힌 세상과 저주 받아 마땅한 인간들에게서 죽음으로 벗어나려 했던 젊은 육신과 영혼은 오늘도 영면하지 못하고 있다.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고 어쩔 수 없이 먼 길 떠나야 했던 장자연. 또 다른 장자연을 만들지 않으려면 우리는 보다 용감하고 솔직하고 당당해야 한다. 치열하고 준엄하게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고, 권력자 하이에나들에게 자꾸만 물어야 한다. 과연 그러 하냐고! 너희들 권력은 영원할 것이냐고! 그것이 그토록 대단하고 힘 있는 것이냐고!

다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라고. 747이든, 세종시든, 4대강이든 그 모든 것은 지나갈 것이라고. 하이에나들의 각축장이 평화롭고 정의로운 인간들의 한마당이 될 것이라고. 결과보다 과정과 방식이 존중받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세상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와 억압과 수탈이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날이 우리 곁을 찾아올 것이라고 다시 한 번 희망하는 것이다. 아릿할 만큼 싸늘한 냉기를 꿋꿋하게 버티면서 하늘로 몸을 열려는 매화와 산수유 서늘한 그늘 아래서 봄의 전령을 기다린다. 어차피 우리의 우울하고 차운 겨울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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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 대한민국 , 권력자 , 747공약 , 세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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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헛되이 지나치는 삶의 끝들이 얼마나 많겠는가?...가신 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 엘자

    눈물로 쓰셨나요? 슬프고도 고운 진심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측은지심이 드셨나요? 장자연님도 위로를 받겠네요....
    그래도 우리 이렇게 하이에나들의 더러운 짓거리를 기억하잖아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누구 좋으라고 잊으렵니까?
    더러운 투표는 더러운 대통령을 낳습니다. 더러운 투표의 업보는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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