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천지에 생동감이 넘쳐난다. 목련과 개나리, 벚꽃과 진달래 사이사이에 민들레와 제비꽃이 앙증맞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에도 작은 이파리들이 하늘로 손가락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의 봄은 오고야 말았다. 유난히 매서웠던 지난겨울 한파를 이겨내고 당도한 봄의 선물은 사뭇 풍요롭다. 그것은 자연의 위대한 경이다. 누구의 개입이나 작용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것이 ‘자연’이다.
태곳적부터 인간은 자연을 경배하였고, 다른 한편 자연을 개척해왔다. 경배의 결과가 낳은 것이 토테미즘과 애니미즘 같은 원시종교다. 원시종교에서 기원한 신화와 전설이 모여 기록으로 전승되고, 그것이 고도의 논리로 정비되어 고등종교로 진화한다. 개척은 자연파괴와 도시화 같은 물화된 세계상을 결과했다. 과학적 발견과 문명화를 기치로 내걸고 근대를 태동한 유럽의 등장은 자연을 수탈과 개척의 대상으로 본 결과다. 따라서 양자를 거칠게 이항 대립하면 종교(경배)와 물화(개척)는 양립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천안함 사건,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 봉은사 명진 스님 문제, 검찰의 정치칼춤, 남북관계 악화와 교착상태... 이러고도 인구 5천만 가까운 나라가 유지되고 있다는 게 마냥 신기하다. 어째서 이런 혼란과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는 것일까. 어떻게 이런 산적한 문제를 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 나라의 명운이 걸린 4대강 사업과 종교문제에 눈길을 던져보자.
홍수를 예방하고, 맑은 물을 공급하며, 필요한 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기획이 정부가 내세우는 4대강 사업의 근간이다. 문제는 이런 외피가 내용과 불일치하거나 오히려 상충된다는 점이다. 잘 살고 있는 4대강과 인근에서 농사짓고 사는 2만 5천명의 농부들을 죽이는 것이 4대강 사업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기 때문이다. 강은 태고 이래로 그 흐름을 자체의 동력에서 확보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강의 흐름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강 또한 스스로 운항하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 취지에 공감한 종교인들이 결집하였다. 천주교와 불교가 앞장서고, 일부 개신교 목회자와 신자들이 동참하여 4대강을 그냥 흐르게 하자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 와중에 봉은사 명진 주지스님을 겨냥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좌파적출’ 발언이 튀어나왔다. 적출(摘出)이란 단어는 섬뜩하다. 골라 따서 내보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사람들을 좌파로 몰고, 그들을 격리하여 세상과 절연시킴으로써 사회비판과 영향력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 문제 삼은 명진 스님은 명망 높은 학승으로 상당한 신망과 덕망을 가진 분이다. 스님은 가난하고 학대 받는 민중의 편에 서서 정권의 부도덕하고 자연 파괴적인 면모를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거기서 터진 것이 ‘좌파적출’ 발언이다.
한반도가 오늘날처럼 자리를 잡으면서부터 강은 유구하게 흘러왔다. 우리 조상들은 크고 작은 강에 기대고, 산에 의지하면서 수천 년 이 땅을 지키며 살아왔다. 2002년 영광과 승리의 시각에도, 1980년 치욕과 절망의 시간에도 강은 언제나처럼 융융하게 흐르고 다시 흘렀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한강에서, 낙동강에서, 금강에서, 영산강에서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보고 배운다. 강줄기 굽이굽이 숱한 사연들이 스며있고, 간난신고로 고통 받은 민초들의 눈물과 땀과 피가 배어있다. 그리고 그곳 어딘가에 성당과 절과 교회가 자리한다. 서로 다른 믿음과 신앙체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생명을 영위한다.
목련과 개나리, 벚꽃과 진달래만이 봄날을 대표하지 않는다. 민들레와 제비꽃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숱한 민초들도 봄날을 대표한다. 그것이 세상이다. 크든 작든, 힘이 세든 약하든, 잘 살든 아니든, 우리 모두가 사람인 이상 어울려 화합하며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불교든, 천주교든, 개신교든, 아니면 무신론이든 모두 존중해야 한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4대강도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 그것도 아주 오래도록, 그리고 아주 융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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