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현지시각) 미국 상원을 통과한 금융개혁법안은 21일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공식 발효될 예정이다.
이 법안은 대공황 직후 1933년에 제정된 글래스-스티걸 법 이후 가장 강력한 금융규제를 담는 법안이라고 알려져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법으로 금융위기를 촉발시키는 데 일조한 어두운 거래들이 중단될 것이며 금융기관들의 책임을 육성하고 소비자를 보호할 것”이라면서 법안 통과를 반겼다.
이 법이 발효되면, 지금까지 밀실에서 행해져 온 수 조 달러의 장외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암시장’으로부터 밝은 세상으로 끄집어 낼 수 있다. 또한 은행뿐 아니라 신용카드나 모기지(주택융자) 회사에 대해서도 어려운 감시 체제가 생긴다. 파산하는 금융기관을 규제 당국이 청산하는 권한도 확대된다. 공적자금에 의한 대기업 금융기관의 잇단 구제를 가능하게 해 온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연방 준비법도 구제를 어렵게 할 방향으로 수정된다.
하지만 미국의 금융개혁법은 수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으로 법안이 23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이지만 줄줄 세고 있다는 것이다.
구멍 숭숭 금융개혁법, 금융자본의 이해 반영돼
상원에서 이 법이 통과될 때 공화당 의원 3명이 이 법안에 찬성했다. 그중 상원의원으로 가장 젊은 매사추세츠 주의 스콧 브라운 의원이 주목받고 있다.
[뉴스위크]는 이 법안이 ‘도드-프랭크 법안’이 아니라 실제로는 ‘도드-프랭크-브라운 법안’이라고도 불러야 할 판 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운의 목적은 단지 현지에서 가장 유복한 유권자인 금융 대기업에 간단한 선물을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었다고 강하게 질타하고 있다.
브라운 의원은 은행의 자기 자본에 의한 투기적인 거래를 금지하는 ‘볼커 룰’의 핵심 골자를 뺐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를 통한 위험거래 금지조치 대신 자본금의 2%이내라면 인정한다고 하는 제안을 관철시켰다 (그 후, 민주당의 도드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이 관대하게도 상한을 3%까지 끌어올렸다). 게다가 금융기관의 파산 처리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 민주당이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던 5년간에 190억 달러의 은행 특별과세도 철회하게 했다.
이렇게 브라운 의원은 현지 보스턴의 주요 신탁은행인 스테이트 스트리트 뱅크와 기업 투자신탁회사인 피델리티 인베스트의 이익을 교묘하게 지켰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테드 카우프만 상원의원은, “부분적으로든 은행이 고위험 투자를 계속하게 된 것은 큰 문제다”라며 가장 큰 책임이 브라운에 있다고 했다. 덕분에 브라운 금고는 그에게 감사하는 금융기관들로부터의 거액의 헌금들로 흘러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마 불사’, 원칙은 지켜진다
금융개혁법의 핵심은 금융위기의 원인이 된 대형 금융사들의 무분별한 파생상품 거래를 규제하고 파산시 손실을 최소화 하며, 금융감독체계를 강화하자는데 있다. 한마디로 월스트리트의 활동을 규제하고 금융투자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다.
법안의 쟁점 중 하나는, 금융기관이 자기자본 거래로 인한 손실을 제한하기 위해서 스왑(swap) 거래를 (자본 관계가 없는) 별도의 회사로 분리하도록 의무화 하자는 것이었다. 논란 끝에 이 부분은 금리, 외환 스왑 및 금, 은 스왑 거래는 대형 금융기관에 남기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조치로 파생금융상품 거래의 80~90%를 금융사들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장의 95%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JP모건, 골드만 삭스, 시티 그룹, BOA 메릴린치, 모건 스탠리 등 5대 대형 금융사다.
이 조치는 대형 금융기관이 파생금융상품 거래에서 대부분의 기존 사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 금융개혁법으로 인해 파생금융상품 거래에 대해 다른 금융사들의 신규 참가 장벽을 높였다. 결국 금융 위기에 가장 관련 깊은 JP모건, 골드만삭스, BOA메릴린치, 모건스탠리, 시티 그룹 등 5개 금융사와 웰스파고를 더한 6개의 거대 금융기관만이 파생금융상품 거래를 계속할 수 있고 파산의 위협에서도 정부의 보증으로 지위가 한층 더 강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프레디 맥이나 페니메이 처럼 정부가 금융기관 6개를 새로이 설립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법안에서는 파생상품 거래를 상대매매가 아니고,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 청산 기관을 통해서 실시하는 일도 의무화 하고 있다. 문제는 청산 기관의 독립성이다. 스티븐 린치 하원의원은 금융기관 각사가 청산 기관의 주식의 합계 20% 이상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법안에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이 규제안은 최종 법안으로부터 삭제되었다. 대신 모두 규제 당국의 판단으로 넘어 갔다. 이번 법안에서는, 이 밖에도 금융기관의 간부 직원에 대한 보수 지불 방법 등을 어떻게 규제할지도 당국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규칙 제정만 243개 필요...로비스트들의 로비가 시작되다
2300쪽의 방대한 내용의 금융개혁법은 적어도 11개의 연방기관에 243개의 새로운 규칙의 제정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규제방식에 대해서 규제당국의 판단으로 넘기면서 각 기관의 규칙 제정으로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불충분한 규제로 금융 위기를 불러 온 요인이 된 증권거래위원회(SEC)만으로도 95개의 새 규칙을 작성해야 한다. 새롭게 설치되는 소비자금융보호청(CFPA)과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는 각각 24개와 56개의 새 규칙 제정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것들은 모두 1페이지로 끝나는 내용이 아니다. 은행원이나 헤지펀드 매니저, 금융 파생상품 트레이더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을 할 수 없는가를 상세하게 규정한, 미 관보에 적어도 수백 페이지에 걸쳐서 게재되는 내용이다.
새 규칙의 시행 스케줄을 나타낸 플로차트(flow chart)만 26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1년반 이상 규칙 작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규칙이 제정되어도 단계적으로 도입되기 때문에 마지막 규칙은 12년 지나 간신히 도입이 시작될 예정이다.
그 결과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을 하면 로비 활동이 한층 더 격렬하게 늘어날 뿐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법안은 복잡하고, 애매한 부분이 상당히 있어, 많은 규칙이 도입될 때까지 명확하게는 안 된다. 또, 규칙 도입 후에도 연방의 관계당국과의 협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가 여전히 많이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것은 대형 금융기관은 처벌될 것도 없으며, 억압될 것도 없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가장 우수한 로비스트가 승리해, 규모가 작고 역사의 얕은 기업은 항상 패배를 피할 수 없는 정치의 세계에서 주요 금융기관과 정부와의 관계가 한층 더 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업계가 규제 내용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제도에 따르고 이익을 올리려고 하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중소 규모의 기업이다.
대공황에 맞먹는 위기, 그러나 미치지 못하는 금융규제개혁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상원 통과 직후 “금융개혁법안은 최근 금융위기의 재연을 막기 위해 가장 멀리 내디딘 발걸음”이라 평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대공황 당시 은행과 증권의 분리 등을 정한 글래스-스티걸 법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법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이 완전히 변하였다. 또한 금융기관의 형태도 바꿔 놓았다. 반면, 이번 금융개혁법안은 위기를 초래한 금융구조를 바꿔 놓은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기존의 대형 금융기관을 지키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에 대해 현지 언론들도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4일 사설에서 “이 법안을 뛰어난 법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면서 “금융개혁법에 의해 고용이 창조되는 것은 정부 기관과 (로비스트가 득실거리는) 법률사무소 뿐”이라고 꼬집었다.
[뉴욕타임스]도 16일 “개혁법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월가는 돈벌 궁리만 하고 있다”면서 “앞선 금융규제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엔 월가가 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의 재정위기로 확산되고 중국의 경기침체 우려도 확대되는 가운데 세계경제의 더블 딥 위기가 상존하고 있다. 그러나 구멍 숭숭 뚫린 금융개혁법으로 미국이 경제위기 탈출의 발판을 마련할 거라는 시각은 오바마 정부 외에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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